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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첫사랑도 아니고

by 우수진

나는 첫 문장에 전혀 공을 들이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지면으로 옮겨지는 첫 지점일 뿐이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제 있었던 특이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한다. 유행하는 주제에 도전하지도 않는다. 내 글의 질을 높여줄 적절한 인용구가 있을까 찾아보지 않는다. 이런 인용구가 될 만한 명언 같은 것들은 좀 똘똘 뭉친 짱돌 같은 단단함이 있다. 자기 혼자서도 어디든 집어던지면 창문을 깨뜨릴 것 같은 이런 짱돌은 자칫 잘못하면 내 글을 전부 집어삼킨다. 글을 다 읽고 나서 글을 쓴 사람의 이야기는 하나도 남지 않고, 어디서 빌려온 그 명언만 독자의 머릿속에 덩그러니 남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한참 내 생각을 신나게 쓰고 있을 땐, 이런 생각을 하면 맥이 뚝 끊긴다.


‘글쓰기 할 때 추천 : 밑줄을 그을 만한 완성된 한 문장을 쓰세요. 그러면 그 문장이 SNS를 타고 널리 널리 퍼지면서 내 책을 알리는 좋은 거리가 된 답니다.’


아, 그렇죠. 정말 좋은 조언이다. 그런데 나의 글쓰기 스타일과는 잘 맞지 않는 충고다. 밑줄을 그을 만한 좋은 한 문장을 뽑아내기 위해서 애를 쓰면, 도통 다음 문장을 쓸 수가 없다. 다음 날 일어나서 애써 공들여 쓴 밑줄 그을 만한 한 문장을 보면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게 과연 밑줄 그을 만 한가부터 시작해서 이게 최선이 야하고 자기 검열이 시작된다. 멋진 문장 하나를 남기자 같은 마음은 글을 쓰고 고치는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글을 써내는 일과 멋을 내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머리를 요구한다.

내 첫 에세이집을 읽고 난 후 한 지인이 이렇게 후기를 보내왔다.


‘아니 시작 부분들이 다 좋아요.’


아무래도 이런 반응이 오는 건 내가 어떤 얄팍한 계산을 하지 않고 어떤 유혹도 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이지 나로선 깊은 계산으로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첫 문장을 써내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멋을 내면 낼수록 그게 겉멋밖에 되지 않아서 역효과를 불러온다. 혹은 글을 쓰다 보면 성격상 본론부터 먼저 첫 문단에 꺼내놓고 쓰다 보면 중간에 서론 같은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중간에 써놓은 문단을 맨 앞으로 다시 옮기면서 한 중간에 있던 문장이 첫 문장이 되기도 한다. 첫 문장은 첫사랑이 아니다. 어떤 첫사랑을 하느냐가 다음에 하게 될 사랑에 영향을 크게 미칠지는 몰라도 글의 첫 문장은 딱히 그런 끗발은 없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첫 문장 아무거나 돼라. 첫 문장 아무거나 써라. 첫 문장 될 대로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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