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내가 태어나서 미안했어

8-1. 사랑하는 언니에게

by 지지

언니에게 미안한 감정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철이 들 무렵부터는 아예 박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질병이 없었더라면 언니의 삶이 덜 외로웠을까. 덜 아팠을까. 이분척추증 힐링캠프에서 누군가 말했다. 자신의 병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일찍이 누군가를 챙기고, 덜 관심 받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의 형제에게 너무나 미안하다고. 그 말은 낯설지 않았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했을 것이다.


비장애인 아이가 있는 가정에 장애나 질병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아픈 아이에게 관심이 쏠리게 된다. 그리고 그건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언니는 어린 나이임에도 홀로 집을 지켜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부모님의 소홀한 돌봄 속에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어느 날, 언니와 안방 침대 위에 누워 내밀한 이야기를 할 때, 언니는 내게 말해주었다. 내가 태어난 뒤 다니던 미술학원을 그만두어야 했다고. 그때 미술을 계속하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한으로 남아있다고. 언니는 진로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고 결국 돌고 돌아 미술로 돌아왔다. 예체능 분야가 대체로 그렇듯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언니는 그 일로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부모님의 결정이었고 너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


언니는 좋은 언니였다. 언제나 나를 챙겨주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기념품을 내게 한가득 안겨주었으며, 먼저 살아본 인생 선배로서 실용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언니 덕분에 나는 혼자였다면 훨씬 더 많이 방황하고 고통스러워했을 것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언니에게 좋은 동생이 되고 싶었다. 언니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고, 언니가 하는 일이라면 아낌없이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었다. 이미 나는 존재만으로 언니에게 큰 상처를 남긴 사람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노력하면 내가 갚아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언니를 위해 노력했다고 믿었지만, 우리가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면 언니는 '네가 날 위해서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말로 날카롭게 나를 몰아붙였다. 그때마다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건 단지 내 노력에 대해 언니가 인정해주지 않아서만 오는 고통이 아니었다. 내 사랑이, 내 진심이, 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닿지 않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었다. 우리 사이에 골은 우리의 나이 차이 만큼이나 날이갈수록 깊고 멀어져가기만 했다.


일례로 대학생 때 나는 언니의 조언으로 학교 상담실에 방문했었다. 그때 주로 상담선생님과 나눈 대화 주제는 모두 "언니에게 좋은 동생이 되지 못하는 제가 싫어요"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내 존재가 언니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그렇게 큰 빚을 지고도 언니에게 사랑스러운 동생이 되기는커녕 계속해서 상처만 주는 배은망덕한 내 자신을 웃는 얼굴로, 마치 남 이야기인 것처럼 조곤조곤 말했다. 오히려 내 앞의 상담 선생님이 울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난처한 얼굴로 그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슬퍼하고 아파하기엔,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언니에게 좋은 동생이 되기 위해 노력할수록 나는 점점 나 자신과 멀어졌다. 내가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나보다 언니가 더 소중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건, 마치 죄수가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종신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갇힌 죄수가 매일같이 죄를 후회하지만 그 죄가 있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처럼. 나는 내 삶이 벌처럼 느껴졌다.


언니는 말했었다. 네가 태어나지 않았어도 나는 힘들었을 거라고. 그러니 나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부정적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의 이야기,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른다. 적어도 내 치료 때문에 집에 돈이 부족해져 언니가 미술을 그만두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언니가 혼자 집에 방치되지도 않았을 거고, 좀 더 부모님의 돌봄을 받으며 덜 외롭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서른이 되어서야 나는 언니에게 착한 동생이 되는 것을 삶의 목표에서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것이 십자가인 양 나는 내 어깨에 지고 낑낑거리며 버텼다. 하지만 그건 십자가가 아니었다. 태풍에 쓸려와 어느 날 내 앞에 덜컥 놓인 거칠고 무거운 통나무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걸 내게 내려진 계시나 사명처럼 이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걸 왜 메고 있었지?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간 아파한 시간이 아깝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 모든 시간들은 결국 나를 성숙하게 하는 걸음들이었고, 나는 이걸 메야만 "했었다." 그래야만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집착과 자기혐오를 내려놓지 못한 채 더 오래 방황해야 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어떤 고통들은 필요하다. 무언가를 놓아주기 위해서. 고통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보내줄 수 없다.


사랑한다면 이 오만한 통나무를 멘 채로 거들먹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옳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언니가 내게 준 마음, 그 사랑은 나를 원망하는 마음을 무릅쓰고 준 것들이 아니었다. 언니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고 아껴주었다. 내가 길을 잃지 않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조언해주고자 노력했으며 내가 힘들어할 때는 본인이 더 아파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혹은 비질병인 형제를 가진 장애인·질병인이라면 내가 느끼는 부채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종종 말한다. "질병이나 장애를 지닌 가족과 함께 자란 형제는 더 다양성을 이해하고 더 배려심 깊은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연구결과에도 마음이 복잡했다. 댓글창은 부정적인 여론으로 가득했고 내 생각도 그리로 기울고 있었다. 그 성장을 위해 장애인·질병인의 형제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는지. 그들의 외로움과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그것들은 내가 온전히 보상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모든 마음들을 안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내 형제가 나를 사랑하며 배려해준 만큼, 나 역시도 세상을 더 너그럽게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언니 내가 태어나서 미안했어.

그렇지만 이제 내가 태어난 걸로 언니한테 미안해하지는 않을래.

언니도 그런 걸 바라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사과하면서 살아선 안 되는 거잖아.

대신 내가 더 사랑하며 살게. 사랑해.




안녕하세요, 지지입니다.

『비장애인 코스프레는 그만두겠습니다』를 읽어주시는 브런치 독자 여러분,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신 응원과 공감 덕분에 매주 마음을 다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연재를 토요일과 일요일, 주 2회로 나누어 진행하려 합니다.


다만 이번 주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8-1(토요일 업로드), 8-2, 8-3(일요일 동시 업로드)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각 편의 분량은 이전보다 조금 더 짧고, 읽기 편한 호흡으로 전해드릴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지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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