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가 원망해서 미안해

8-3. 사랑하는 아빠에게

by 지지

어린 시절 아빠는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었다. 일례로, 에버랜드에서 기념품을 고르라는 아빠의 말에 미피 캐릭터를 통째로 계산대에 쓸어담는 바람에 아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저학년이던 나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보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도 따라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당사자인 아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돈에 대한 개념을 배우고 내가 그때 얼마나 사치스러운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빠는 대개의 일에 그랬다. 내게 너그럽고 화내지 않았다. 혼낼 법한 일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다. 시중일관 내 편을 들어주고 내게 애정을 거리낌없이 표현했다. 본인도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내가 너를 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잖아. 아빠는 내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건강뿐이라고 했다. 내가 아프게 태어났으니 그 이상으로 바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아빠와 갈등한 기억이 적다.


기묘하게도 나는 내가 아프게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아빠에게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언니나 엄마에게는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정작 내 치료비를 대느라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빠에게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처음 깨달았다. 왜일까.


아빠는 나에게 있어 늘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아빠는 소방관이었고 그에 걸맞는 강한 몸을 갖고 있었다. 여름이면 아빠는 으레 웃통을 벗고 소파에 기대어 나와 함께 텔레비전을 봤는데 그때마다 선명하게 복근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그걸 신기해하면서 손으로 푹푹 찔러대서 아빠가 힘주고 있을 때 찌르라고 조용히 한마디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수술하고 난 뒤 걸음걸이가 안 좋을 때, 아빠는 나를 업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내 키가 좀 컸고, 중학생일 무렵이었다. 다 큰 애를 뭘 업고 걷느냐는 주변 사람의 말에도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등에 익숙하게 기대어 있었다.


아빠는 내가 기댈 수 있는 강한 사람이었다. 엄마와 언니는 내가 볼 때 너무 연약하게만 보였다. 건방진 소리지만 내가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사람들. 하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아빠는 나에게 약한 소리 한 번 한 적 없었다.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유쾌하게 웃고 큰 손으로 장난스럽게 말을 걸고 위로해주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아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네가 날 원망했었다고. "왜 날 이렇게 낳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내가 평생 그런 원망은 하지 않고 살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아빠에게 그런 말을 했고, 아빠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빠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다가 어느 조용한 날 나직하고 무심하게 툭,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왜 아빠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아픈 건 아빠의 탓이 아니었는데 왜 나는 아빠에게 그런 큰 상처를 주었을까.


사랑한다는 것은, 의지한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너무 사랑하고 너무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우리는 쉽게 상처줘버리고 만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아껴줘야 하는 사람들인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행동은 정반대로 해버린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들 중 가장 의지하는 아빠에게 그런 말을 했던 건, 내가 세상에 느낀 억울함과 슬픔을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빠는 내게 안전한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나를 내 자체로 포용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 그게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내 원망에도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배변실수를 하고 비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울며 자퇴를 결심했을 때, 아빠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아빠는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내게 전화 걸어 말했다.


아빠는 학교가 정말 싫었어. 아빠 때는 체벌하는 교사도 많았고, 선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도 너무 많았거든. 그래서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네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 무얼 하든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사랑해.


나는 그 말을 아빠가 만들어준 벙커침대 위에 누운 채 들으며 울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내밀한 진심을 말해준 것은 또 처음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자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끝까지 학교를 열심히 다니겠다고. 아마 그때 아빠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학교를 자퇴했었을 것이다. 아빠의 한마디가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랑은 뭘까? 자신의 생일은 중요하지 않다며 묵묵히 지나가면서도 자식 생일은 꼭 축하해주려는 마음으로, 자정 넘어 퇴근해서도 선물 상자와 투박한 편지지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그 마음. 그런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샘솟는 것일까. 아빠는 말한다. "너도 자식을 낳아보면 다르다. 그 마음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일까? 내가 의심할 때면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을 주는 것 같다. 응, 그럼. 당연하지.


지금도 내게 있어 아빠는 듬직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 가족 중에서 혼자서도 우뚝 서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꼽아보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아빠를 말할 거다. 하지만 그런 아빠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다. 이빨도 아프고, 건강도 걱정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아빠는 말한다. "아빠는 잘 먹고 잘 사니까 너나 신경 써"라고.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다 돌려주지 못할 것이다. 생각하면 그게 너무 서러워서 울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언젠가 그랬듯,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겠다고 결심하고 살아가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아빠에게 나는 늘 약하고 아픈 손가락이었지만, 이젠 아니라고 내 스스로 온전히 서서 잘 살아갈 수 있으니 내 걱정은 말라고.


그리고 아빠, 원망해서 미안해요. 진심이 아니었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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