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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11. 2023

소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여간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보면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있다. 감각이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좋은 방법은 다른 감각을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면 된다.

눈을 감고 귀를 쫑긋하며 감각의 날을 세워보자.

무엇이 들리는가?

[……]

소리들이 차례차례 귀를 통과한다.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복잡한 여정을 거쳐 마침내 우리의 뇌에 도착한다. 우리는 소리의 의미를 완벽히 해석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끼익’ 소리를 듣는 순간 문을 바라보며 그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기다릴 수 있게 된다.

그 여정이 대부분 과학적인 영역일 테지만, 소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우리 각자가 감각하는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고 사적일 것이다. 결국은 내가 만난 세상의 소리들이 당신이 만난 것과 비슷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같지 않을 수 있다. 탐험은 늘 개인의 경험에 따르지만 소리에 대한 탐험은 더더욱 사적인 영역일 것이다.

기억나는 소리들을 떠올려보자. 일상의 사소한 소리도 상관없다. 잊히지 않는 소리도 좋다. 소리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 소리를 쌓다

{작은 공원}+ {키보드, 기타, 루프 스테이션} + {악기들에 둘러싸인 뮤지션} +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비트를 넣어 반복적인 리듬을 만들며 음악을 시작한다} + {그 위에 기타로 베이스를 만들고 반복 재생한다} + {이제 배경에 본격적으로 키보드를 연주해 멜로디를 잎힌다} + {모든 것이 갖춰졌으니 이제 노래를 부른다} + {변주가 필요할 때쯤 배경의 일부를 지우고 새로운 배경을 만든다} + {허밍으로 목소리를 얹는다} + {다시 노래를 부른다}


홍대 앞 작은 공원을 지나다 만난 그는 원 맨 밴드로서는 혼자 할 수 없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루프 스테이션이라는 기계를 이용해 소리를 쌓아가며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째선지 이런 류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겹겹이 층을 이룬 페이스트리 생각이 난다. 빵 반죽 사이에 버터와 공기가 부풀어올라 이스트 없이도 빵이 완성되는 페이스트리 말이다. 겹겹이 레이어가 그대로 남아있는 빵처럼 그의 음악에서도 하나씩 덧대어지는 악기들의 경계는 분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소리를 쌓아 올리며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 내고 있다. 소리는 하나로 용해되지 않고 완벽히 섞이지 않는다. 단지 소리의 합이 하모니를 이루거나 불협화음이 일어나거나 둘 중의 하나로 결론지어질 뿐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소리를 더해 음악을 완성하기도 한다. 3중주(트리오), 4중주(콰르텟), 아카펠라, 합창, 오케스트라처럼. 악기와 사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지휘자의 역량이 중요해지는데, 그는 소리의 합을 조율하는 코디네이터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소리를 통해서도 함께하고 싶을 만큼 삶이 무척 고독한지도 모르겠다. 그런 방식으로 상처 난 마음을 음악을 통해 치유해 나간다.



# 소리로 이루어진 세계

똑똑, 짹짹, 구구구, 쨍그랑, 우르르 쾅쾅, 두두두두, 똑딱똑딱, 후드득, 덜커덩, 끼익, 아사삭, 에취, 콜록콜록, 지글지글, 와장창, 끙, 꺄아악, 앗, 오……


소리들이 귀를 통해 쏟아져 들어온다.

소리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리를 표현한 단어다.

이 단어들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장면은 아니다. 소리를 단어로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단어를 고르고 골라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같은 소리를 듣고도 언어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 걸 보면 의성어는 소리를 흉내 낼뿐 대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딱히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는 이 소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순간 그곳에서 들었던 소리는 판에 박힌 소리가 아닐 텐데. 소리의 뉘앙스와 분위기를 말과 글로 따라갈 수가 없다.

표현의 한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실제 감지하는 소리가 어떤지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추측만 할 뿐 모든 게 안개처럼 뿌연 필터에 가려진 풍경 같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굳이 모든 걸 밝혀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 미지의 것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이고 예술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다. 우리에게 감각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에, 그걸 표현하기 어렵지만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 대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끝내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 끈기에 대해.



# 소리를 낚아 올리다

언제 여름이었나 싶을 만큼 계절이 갑자기 가을로 시간 이동을 한 것 같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조금 차갑지만 시원하다. 자석에 이끌리듯이 햇빛이 있는 곳을 찾아 발걸음이 향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눈을 감는다. 따뜻함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계절의 가운데에 서서 청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을 애써 누르며 귀에 집중한다.


“띠링 띠링.” 자전거 한 대가 벨 소리를 울리며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다. 존재를 알리는 소리, 주의를 요하는 소리다. 길 가장자리로 비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자전거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가볍고 경쾌한 벨 소리가 아주 잠시 내 곁에 머물다 갔다.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좌우를 살피고 건너가 주십시오. “ 초등학교 앞 건널목, 신호음이 울린다. 길을 건너자. 초록 불일 때만 길이 열리는 횡단보도를. 20초 동안 보통의 걸음으로 완주해 길 반대편에 도착했다. 아…… 하필 바로 앞에 공사 때문에 트럭들이 들락날락 길이 어수선하다. 다음 횡단보도에서 건넜으면 좋았을걸……


“드르륵 드르륵” 도로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가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가 난다. 도로면에 일부러 요철을 만들어 나는 소리다. 이곳을 지날 땐 특히 조심하라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다. 속도를 조절하는 소리다. 하지만 바로 그 옆을 걸어가는 사람에겐 뭔가가 갈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음일 수 있는 소리다.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소리가 소음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삐이이이익. 스크린 도어가 닫힙니다. “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힌다…… 려고 했는데 누군가의 난입으로 문이 다시 열리고 닫힌다. ‘이 차를 놓치면 지각이다’ 의지를 담은 필사적인 터치로 지각을 면하게 된 사람의 미래를 담은 소리다. 그로 인해 몇몇은 간발의 차로 환승에 실패해 지각을 할 수도 있는 한숨이 나오게 만드는 소리다. 눈치를 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쳐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똑똑똑.”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세면대의 도기 위를 두드리며 재료와 공간을 암시하는 소리, 미처 완료되지 못한 잠금을 알리는 소리다. 손잡이를 꾹 눌러 잠금을 완료했다.


“쾅쾅쾅.” 벽 위에 못을 대고 망치로 두드린다. 망치와 못이 마찰을 일으키는 소리, 못이 콘크리트 벽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가 합쳐진 소리다. 액자 고리를 못에 걸어 벽 하나를 가족사진으로 장식했다. 언제나 한 세트로 동시에 움직이는 소리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 아이들의 목소리가 동네 여기저기서 튀어 오른다. 저녁 시간이 임박함에 따라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노는 시간을 연장하고 싶은 소리다. ‘밥 먹어’라고 외치는 엄마들의 소리에 오늘의 안녕을 고하는 아쉬움의 소리가 허공 위로 튀어 오른다. ‘아아아아아… 네에에에……’


“씽씽씽“ 한 아이가 줄넘기를 넘고 있다. “통통통통” 배드민턴 공이 오고 간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롤러브레이드 바퀴가 굴러간다. 나는 지금 작은 체육공원을 지나고 있다. 눈을 감고서도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것은 이 장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는 장소를 드러낸다.


“오오 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 오오 오.”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리듬과 음색과 톤이 제각각인 목소리들. 그럼에도 커다랗게 뭉쳐지는 소리다. 조각조각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패치워크가 완성됐다. 마치 소리로 이루어진 돔같다. 아, 야구 정규시즌 우승이다! 뜨거운 눈물을 부르는 소리다.



# 소리 없는 세계

모든 소리가 완벽히 지워진 공간에 있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불안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이륙할 때의 먹먹한 느낌이려나?

문득 소리가 없는 세계를 상상해 보았다.

무음 버튼을 눌러 소리가 들리지 않은 채로 재생되는 영상처럼 공간 속에 소리가 사라져 어딘가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우리가 경험해 왔던 공간과 재료들의 소리가 저장되어 있다가 응당 내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의 낯섦이 있을 것이다. 보여야 될 풍경이 보이지 않을 때의 낯섦처럼.

언제나 당연한 건 없다는 진리를 마주한다.

그래서 나는 감사한다.

소리 있는 세상에 대해.



# 소리를 저장하다

감각을 온전히 저장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지금의 공기, 꽃향기, 햇빛, 친구의 웃음소리를 남겨두었다가 되돌려 기억하고 느낄 수 있을 텐데……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모두에게 이런 바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각 저장을 위한 장치와 기계들이 끝도 없이 리뉴얼되는가 보다.

냄새는 저장할 수 없지만 인공적으로 냄새를 모방해 향수를 만든다. ‘좋은 향기를 늘 낼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풍경은 카메라로 저장하고 재생해 볼 수 있다. 우리의 감각 중에 가장 잘 발달된 것이 시각인 까닭인지 카메라의 해상도와 기능 업그레이드는 멈출 줄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소리는 저장하고 재생해 들을 수 있다. 녹음기, 마이크, 앰프, 스피커로 소리를 데이터로 저장해 듣고 싶을 때 소환할 수 있다.


파도 소리가 바다에 나를 데려간다.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보르도 성당으로 나를 데려간다. 지붕을 두드리는 비 소리가 삼청동 집으로 나를 데려간다. 힘이 빠진 매미의 소리가 어느 해 늦여름으로 나를 데려간다. 닮은 목소리가 나를 추억 속의 엄마에게로 데려간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소리가 어린 시절의 밤으로 나를 데려간다.


나를 우리를 그곳 그때로 데려가지만 아쉽게도 이미 지나간 소리다. 한번 출력된 소리는 되돌릴 수 없고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재생된 소리를 들으며 기억을 더듬고 싶다. 아… 그립구나.



# 소리를 담는 그릇

작업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찾다가 스위스 코스모에서 열린 재즈 연주(Cosmo Jazz 2023) 영상을 발견했다. 재즈 베이시스트 Kham Meslien의 콘서트 장면이었다. 그는 호수 가장자리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무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방사형을 이루며 완만하게 경사진 풀밭 위에 자유롭게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 파란 하늘, 햇빛, 바람, 호수. 소리를 담는 장소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낮고 굵은 베이스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사람들 사이를 떠다닌다. 호수의 수면 위를 미세하게 흔들어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신화 속 생명체를 깨울 것만 같다. 그곳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역시 야외 음악 페스티벌의 매력은 장소에서 나온다.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한 최초의 장소는 광장이나 정원, 숲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밖에서 듣는 음악은 소리부터가 다르다. 장소에 따라 다른 소리가 섞여 들어 음악 자체를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현장감이 주는 극적인 효과는 크다. 로마시대의 야외 공연장은 음향 효과를 위한 공간 설계로 밖에서 소리가 분산되는 단점을 해결해 그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다.

그럼 언제부터 음악이 실내로 들어왔을까? 소리를 더 정확하게, 음악을 더 완벽한 상태로 듣고 싶은 욕망과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소리와 음악은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절제되고 통제된 공간 속으로. 그렇게 공연장이 태어났다. 원곡을 더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들로 채워져 가며 공연장의 공간 설계는 점점 업그레이드되었다. 거기에다가 음악을 녹음해 원할 때마다 재생해 들을 수 있는 기계와 시스템이 구축되어 갔다. 공연장에서 직접 감상하는 것 이외에도 콘서트 실황 녹음, 야외 공연 영상, 스튜디오 녹음으로 우리는 여러 버전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소리를 담고 싶은 지구인의 바람이 이토록 열렬하다.




막다른 골목, 새벽, 안개 약간.

정적을 깨는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바퀴가 돌바닥에 덜그럭 덜그럭 굴러간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조심스레 캐리어를 끌고 다가오고 있다. 새벽에 도착한 비행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캐리어를 들 수도 없고 참 난감한 듯하다. 이러다 온 동네 사람들이 평소보다 이른 기상을 하게 되는 건 아닐지…… 하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 생각을 고쳐먹고는 씩씩하게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향해 나아간다.

마모된 돌 표면 위로 빛이 반짝인다.

돌 위를 거쳐간 수많은 발자국들.

그 위에 스쳐간 바퀴들의 흔적.

하지만 지나간 소리는 사라지고 없다.

지금의 소리가 존재할 뿐.

그렇다고 과거의 소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비해 너무 일찍 사라졌을 뿐이다.


소리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현재성.

지금 이곳에 소리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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