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돌 위에 나의 시간을 얹다

by 귀리


산과 바다, 그리고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평범한 돌과 나무, 해초와 바람.

누군가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그저

무엇이 되기 이전의 재료들.


조금씩 파헤쳐지고 먼 길을 떠나온 조각들이

도시와 건축,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새로운 생(生)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구의 몸은 점점 줄어들고

그만큼 커져 가는 도시와 빌딩의 실루엣.


우리가 마주하는 이 모든 풍경은 결국

지구의 일부를 떼어내어 만들어진 필연의 결과물이다.


때로는 뜨거운 연료, 차가운 유리.

때로는 굳건한 기둥, 안을 여는 문.

때로는 온기 어린 식탁, 몸을 뉘는 의자.

때로는 향긋한 와인, 생을 잇는 음식.


긴긴 세월과 무수한 이야기를 품은 채

내 앞에 도달한 돌과 나무를 바라본다.


이 무명의 조각들이 지나온 길,

그 궤적을 쫓는다.


# 01 재료 이전의 재료들, 일대기의 시작


무엇이 되기 이전의 재료에 대한 인식. 바로 이곳 존재의 뿌리로부터 재료의 실체를 찾아가는 나의 추적이 시작된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자원에 대한 인식이 싹트던 시절, 인류는 이미 세밀한 관찰자였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에너지를 주는 것과 아닌 것. 생존에 유용한 실마리들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구분해 나갔을 테다. 도구를 손에 쥐며 발굴과 가공의 능력을 갖춘 인류에게, 재료는 이제 무명(無名)의 조각에서 벗어나 아주 중요한 ‘이름’이 되었다.


지금의 세상이 되기까지 소용되어 온 재료들의 행방을 뒤쫓으려 한다. 재료가 되기까지의 시간, 그들의 숨겨진 여정이 궁금해졌다. 바닥에 깔린 화강석을 보며 문득 “어디에서 온 돌일까” 묻게 되고, 식탁 위 커다란 원목을 보며 “어떤 숲에서 자라던 나무일까” 상상한다. 집을 한 바퀴만 돌아보아도 각자의 출처는 모두 다르다. 멀리서 돌고 돌아, 수많은 손을 거쳐 이곳으로 모여든 존재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만약 모든 사물에 그것이 지나온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면, 우리는 좀 더 특별한 마음으로 일상을 대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거실 원목 테이블에 이런 이름표가 삶의 이력처럼 적혀 있다면 어떨까.


나이 50세의 블랙 월넛. 북미 아이오와 근방 숲 출신. 2012년 4월 벌목. 해상 컨테이너와 트럭을 통한 장거리 이동. 3년의 기다림(건조). 00 제재소 재단. 00 목공방의 샌딩과 천연 오일 마감.


이런 기록을 읽는다면 매일 손으로 정성껏 쓰다듬고 오일을 먹이며, 작은 흠집이라도 날까 다듬어 오래도록 곁에 둘 것 같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적어놓은 일대기 같아서, 그 삶에 온전히 이입하게 된다. 재료들이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의 세월과 거리. 그들이 감추고 있던 역사를 가늠해 보고 싶어, 천천히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 흔적들을 더듬어 본다.



# 02 돌과 나무의 암호, 시간의 지문


사물을 만지는 일은 그 안에 잠든 결을 깨우는 행위다. 켜켜이 묻어 나오는 기억과 시간. 마모된 모서리와 긁힌 표면마다 누군가의 손길과 세월이 스며 있다. 나는 묻는다. 자연으로부터 온 이 재료들 속에는 대체 어떤 시간이 숨어 있는가.


억겁의 시간을 몸 안에 압축해 새긴 돌의 무늬를 추적한다. 돌은 지구상에서 가장 정직하게 시간의 퇴적을 증명하는 물적 증거다. 태어난 장소와 깊이에 따라 그들의 표정은 이미 결정된다. 광활하게 파헤쳐진 노천광산의 낮은 곳, 혹은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수직 갱도의 깊은 어둠. 그 사이에서 돌은 각기 다른 밀도와 고독을 입는다.


열과 압력을 견디며 스스로를 변모시켜 온 시간들. 그 흐름과 힘의 흔적은 고스란히 무늬가 된다. 화석처럼 층층이 새겨진 지구의 시간 사이로 재료들은 각자의 길을 걷는다. 어떤 것은 인류의 동력이 되고, 어떤 것은 도시를 지탱하는 뼈대가 된다. 인간의 집요한 시도로 추출된 다채로운 질감들이 풍경을 채운다. 세상은 온통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기술이 정교하게 수놓은 거대한 ‘재료의 패치워크’가 된다.


석회암 동굴에 갔던 어느 여름의 기억이 안개처럼 밀려든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피부에 닿던 서늘한 공기.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석순을 만들고, 다시 석주가 되는 과정. 그것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시간의 건축'이었다. 한 줌의 석순이 수백 년 동안 자라나는 속도. 너무 느려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지구가 자라는 장면’을 목격한 듯한 전율을 느꼈다.


이제 시야를 넓혀 지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땅이 기록한 암호가 돌이라면, 하늘을 향해 써 내려간 기록은 나무다. 매일의 호흡으로 기록된 시간을 나이테에 새긴다. 자작나무, 소나무, 참나무... 그들은 뿌리를 함께 내린 숲 안에서도 저마다의 시간과 결을 고집스럽게 간직한다. 때로는 기둥과 종이로, 때로는 가구와 소품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든다. 인간의 삶에 비하면 압도적인 그들의 세월 앞에 경외심과 함께 말간 미안함이 밀려온다.


앞에 놓인 테이블 위로 손등을 스치며 무늬를 읽는다. 밝고 단정하게 결을 이루는 물푸레나무의 속삭임. ‘나는 단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뿐.’ 그들은 이토록 무심하고도 투명하다.




지구를 구성하는 조각들

어릴 적,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시멘트 공장 옆을 맴돌며 놀았다. 공장에서 흘러나온 분필 조각들을 주워 콘크리트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집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쓰며 해질 녘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분필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저 하얀가루로 노는 게 즐거울 뿐이었다. 하지만 해마다 공장 뒤 산이 조금씩 깎여 나갔다. 풍경은 해가 바뀔수록 조금씩 달라졌으며, 우리는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다.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어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풍경만 보면, 지구엔 자원이 넘쳐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있는 자원을 탈탈 털어 쓰고, 고갈될 때까지 소비한 뒤, 또 다른 대체 자원을 찾아 지구의 다른 조각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로 인해 누군가가 손해를 보고 있다면, 우리는 책임을 묻고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라는 행성은 말없이 침묵한다. 누군가 간절히 외쳐도, 그 소리는 바람결에 흩어지고, 마치 우리 귀를 지나치지 않으려는 듯 고요하다.

지구를 이루는 모든 것을 '잠재적 자원'이라 규정하고, 쓸모가 입증된 천연자원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발상은, 어딘가 너무 당연한 듯 뻔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용에 대한 규제는 필연적이다. 땅속에 잠든 재료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를 축적하는 일 역시, 지구 전체의 시선으로 보면 매우 불공평하다. ‘이 땅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그 생각은 국경이라는 경계 속에서 자라났고, 전쟁을 통해 땅을 넓히며 지구 전체에 대한 고민을 미뤄온 인간의 오래된 습관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긴긴 세월 동안, 지구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본 존재가 있다면, 우리를 향해 한숨을 내쉴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종의 문명을 찰나처럼 스쳐가는 좌충우돌의 이야기쯤으로 바라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딘가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진다. 나의 직업과 생각이 어딘가에서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땅을 개발하고, 그를 위해 재료를 쓰고, 에너지를 소비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자주 개발의 반대편으로 기울어진다. 기술이나 도시보다, 오래된 것, 되풀이되는 것, 낡았지만 근원적인 것에 더 끌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마음이 이쪽저쪽 흔들리다가도 결국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 03 무명(無名)의 조각들, 존재의 이름을 새기다


나는 이제 이 고요한 증인들을 지나 일상의 더 깊은 곳으로 잠입한다. 땅속의 암호와 숲의 기록은 어느새 식탁 위 한 그릇의 온기로, 바다의 물결로, 허공의 바람으로 그 형태를 바꾼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구라는 거대한 장소 속에 흩어져 있던 이름 없는 무명의 조각들. 그들이 어둠에서 깨어나 ‘이름’을 갖게 된 순간들을 쫓는다.


식탁 위, 길쭉하고 둥글고, 커다랗고 종 모양인 각양각색의 토마토들을 본다. 어느 땅의 흙을 먹고 어떤 볕을 견뎠느냐에 따라 품종마다 색과 맛, 질감이 다르다. 매일 마주하는 식재료는 단순한 생존의 연료가 아니다. 그것은 재료가 품은 계절과 땅의 기억을 통째로 마주하는 일이다. 와인이 '떼루아(terroir)'에 따라 풍미를 달리하듯, 식탁 위 재료들도 시간이라는 양념을 머금은 채 우리 몸속으로 스며든다.


시선을 넓혀 바다를 본다. 거센 파도와 변화무쌍한 조류를 견디며 단단해진 껍질과 그 안의 유연한 살점들. 깊은 수압을 이겨내며 제 몸을 지켜낸 해초의 끈질긴 생명력 안에는 바다가 삼킨 수만 번의 일출과 일몰이 녹아 있다. 우리는 그 치열했던 바다의 시간을 건져 올려 식탁의 풍경을 채운다. 검은 김과 미역의 결에서 아득한 바다의 향취를 맡고, 조개와 소라의 단단한 곡선 너머로 쉼 없이 밀려오던 파도의 숨소리를 듣는다.


고개를 들면 마주하는 하늘은 어떤가. 허공을 가르는 바람과 쏟아지는 태양은 채굴하거나 베어내지 않아도 매일 우리를 찾아오는 가장 정직한 에너지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풍차를 돌리고, 태양은 소리 없는 입자로 대지를 데운다. 땅의 자원이 유한한 퇴적의 기록이라면, 바람과 태양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성되는 미래의 재료다. 보이지 않는 바람과 쏟아지는 태양이 실어 나른 그 정직한 힘은, 지금 어느 집 거실의 전등을 밝히고 우리의 밤을 데우는 따뜻한 빛의 재료로 다시 태어난다.


지구가 자신만의 호흡으로 집요하게 만들어온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무명의 조각들을 건져 올렸다. 우리를 둘러싼 도시와 건축, 그 안의 사물들은 그 오랜 시간 끝에 우리 앞에 도달한 ‘귀한 조각’들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조각한 수석 받침이 떠오른다. 돌의 굴곡에 맞춰 조심스레 깎아낸 그 나무 받침을 매만지면, 나무의 세월과 아버지의 시간이 겹쳐져 윤이 났다. 그곳엔 더 이상 무명(無名)이 아닌, ‘아버지’라는 이름의 집요한 사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를 초월한 시간의 합작품이었다.


재료 속에서 기억의 결이 드러나고 시간의 층이 겹쳐지는 동안, 우리의 일상은 빛나는 존재들에 둘러싸인다. 예술은, 결국 그 시간의 재료를 조각하며 무명(無名)의 것들에 이름을 새기는 일이다.



# 04 지구 속 한 걸음, 공감의 찰나


잠시 시계를 돌려 어린 시절의 현장으로 가본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시멘트 공장 옆을 맴돌며 놀았다. 공장에서 흘러나온 하얀 분필 조각을 주워 콘크리트 바닥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손에 쥔 그 작고 하얀 조각이 실은 조금씩 깎여 나가던 뒷산의 살점이었음을. 그저 차가운 바닥 위에 나만의 자취를 남기는 행위만이 즐거운 시절이었다.


해마다 공장 뒷산의 실루엣은 낮아졌고, 그만큼 풍경은 헐거워졌다. 산이 깎여 나간 자리마다 도시는 견고해졌으며, 우리가 바닥에 남기던 낙서들은 어느덧 실제 건물이 되어 높게 솟아올랐다. 지구의 한 조각이 문명의 한 조각으로 자리를 옮기는 광경. 사라짐에 대한 씁쓸함과 탄생의 찬란함이 교차하는 그 서늘한 지점이, 재료를 마주하는 나의 가장 솔직한 소회다.


시야를 넓히면 지구의 자원은 무한한 배경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몸에서 조각들을 떼어내어 일상을 빚고 있다. 유한함을 망각한 채, 그 조각들은 국경을 넘고 긴 세월을 가로질러 우리 곁에 당도한다. 지구의 시선에서 보면 자신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는 작은 일렁임일 뿐이며, 우주적 시선으로는 희미한 점들이 이동하는 찰나의 흔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건축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지구의 조각을 빌려온다. 땅을 매만지고 그 위에 재료를 쌓아 올리는 행위. 때로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완성된 풍경보다 재료가 원래 머물렀던 낡고 근원적인 장소에 마음이 기울기도 하지만, 결국 건축가는 그 빌려온 조각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임을 깨닫는다.


산의 일부였던 돌이 건물의 기둥이 되고, 숲의 일부였던 나무가 누군가의 식탁이 된다. 우리는 지구로부터 떼어낸 조각들 위에 각자의 삶을 얹으며, 다시 그 조각들이 지구의 역사가 되는 과정을 함께 살아내고 있다.


나는 지금 책상 위 도자기 컵 속에서 특별한 시간을 마주한다. 아주 오랫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던 흙이 뜨거운 가마 속을 견뎌내고, 매끄러운 유약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온 그 고요한 인내의 시간을 만진다. 컵을 쥔 나의 온기가 서늘한 흙의 기억에 닿는 순간, 비로소 나의 짧은 시간이 지구의 유구한 시간 속에 조심스레 한 걸음을 보탠다.



# 05 기술의 궤적 위, 관념을 지우다


나는 이제 재료와 기술의 궤적이 만나는 지점을 들여다본다. 기술을 입기 전, 날것 그대로의 순수한 재료는 지식이기 이전에 먼저 감각으로 우리 몸에 각인되었다. 시골 흙집 아랫목의 묵직한 온기와 기분 좋게 촉촉했던 공기. 재료의 이름도 원리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내 피부는 흙이 소리 없이 숨 쉬며 빚어내던 그 다정한 밀도를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재료의 고유한 결은 기술을 만나며 특정한 목적을 지닌 ‘기능’으로 진화한다. 우리가 바라는 쾌적함을 위해 재료는 정교하게 설계되고, 건축의 역사는 그 기술의 궤적을 따라 쓰였다.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의 등장은 인류가 중력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지면에서 우리를 떼어내 허공 위로 밀어 올린 수직의 시대. 파리 라데팡스의 빌딩 숲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 차가운 유리와 금속 뒤에 응축된 ‘더 높이’ 닿으려는 인간의 열망에 전율했다.


결국 기술과 재료는 서로를 견인해온 동지였으나, 풍경을 결정한 것은 그 기술을 쥔 인간의 시선이었다. 만약 우리의 목표가 높이가 아니라 조화였다면, 도시의 표정은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재료들의 숲을 지나오며 어느새 익숙해진 그 이름들 앞에서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 삶의 궤적이 오롯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일상 속에 스며들었는지.


언젠가 재료에 대한 나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얇게 켠 대리석 판 사이로 은은한 빛이 투과되는 장면. 빛을 머금은 돌의 속살은 수억 년 전 어느 바다의 물결이었을 무늬와 대지의 숨결을 머금은 색채를 투명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불투명한 고체 안에 이토록 신비로운 심연이 숨어있을 줄이야. 돌은 무겁고 불투명하다는 완고한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창’이라는 상징에 갇혀 유리 너머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던 나의 시선이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를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무명이었던 그가 이름을 갖는 순간 달라붙었던 관념의 먼지를 털어낸다.



이제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도시의 기점을 알리는 '포앵 제로(Point Zéro)' 위에 선 것처럼, 재료를 바라보는 관점을 원점 위에 세운다.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재료의 가능성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넓게 확장될 여백을 품고 있다. 이제 나는 유리의 매끈함 너머에 숨은 질감을 읽어내고, 완고하게 닫힌 돌의 중심에서 번져 나오는 빛을 응시한다.



잔상: 시간의 지층 위, 찰나를 얹다


돌과 나무. 우리가 흔히 ‘생명이 없다’고 여기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적막한 몸 안에 얼마나 거대한 우주의 시간과 집요한 지질학적 역사가 스며 있을까. 그 유구한 흐름 앞에 서면 도저히 무심할 수 없다. 거대한 보폭에 맞추는 대신, 나는 아주 작은 시간의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진관사를 산책하다 길가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몇 개를 집으로 데려온다. 흙을 털어내고 물을 끼얹어 닦은 뒤, 햇볕에 바짝 말려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매끄러운 종이를 스치던 감각과는 전혀 다른, 거칠고 서늘한 돌의 숨결이 손날을 타고 올라온다. 돌 표면 위 무늬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혹은 호수 위 물결처럼 잔잔하게 흐른다. ‘이 결마다 수억 년의 기억이 고여 있다니...’ 나는 그 결을 따라 붓을 움직이며 아주 작지만 선명한 온기를 담아, 유구한 역사 위에 '나의 시간'을 얹는다.


완고한 시간의 지층을 파헤쳐 무명의 재료가 이름을 얻고 어떤 삶을 사는지 추적하며, 그곳에서 잃어버린 결을 찾는다. 그리고 그 겹겹이 쌓인 층위 위에, 비로소 나의 시간을 조심스레 얹는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재료 위에 우리는 삶을 쌓아 올리고 각자의 흔적을 남긴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찰나의 순간들도, 먼 훗날 누군가에게는 다시 발견될 ‘시간의 재료’가 될 터다.


시간은 단절된 선이 아니라 무수한 층으로 겹쳐지는 퇴적의 기록. 이 촘촘한 층위들이 모여 비로소 우리의 감각의 지형도가 되고, 우리가 걸어온 노선도 위에 기록된다. 이제 이야기는 끝을 향해 흐르지만, 여전히 그 틈새마다 시작의 설렘이 스며 있다.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가느다란 선이 아닌, 단단하게 굳어진 지층처럼 묵직하게 쌓여 있는 시간. 우리는 그 두터운 시간의 층위 위에서 비로소 다음 문장을 읽어 내려갈 용기를 얻는다.


한 걸음,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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