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인사이트 제6화
누군가 ‘너 꼭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지금 우리는 넘쳐나는 미디어의 정보 속에 남의 말을 따르는 데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 고민 없이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이러한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기존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을 니체는 ‘위버멘쉬’(Übermensch)라고 정의했습니다. 단순히 말해 위버멘쉬는 ‘남들이 그러니까’, ‘원래 그랬으니까’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존재입니다.
니체는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를 거듭해 강조합니다. 위버멘쉬는 과거 ‘초인’으로 번역됐습니다. 하지만 ‘초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문제로 현재는 ‘위버멘쉬’라는 원어 자체를 쓰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위버멘쉬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니체는 정신이 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낙타–사자–어린아이’라는 세 가지 단계를 제시합니다.
니체는 정신이 처음 겪은 단계를 ‘낙타’로 비유합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람이 끄는 대로 사막을 걷습니다. 여기서 무거운 짐은 타인이 만든 규칙, 기대와 나의 책임과 의무 등을 의미합니다.
니체는 낙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그것도 더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자 한다...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가득 실리기를 바란다.”
낙타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책임감으로 참고 견디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짊어지려 합니다. 그 어려움을 묵묵히 견딥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도착한 사막 가운데에서, 정신은 ‘사자’로 변화합니다. 사자는 용기와 저항의 상징입니다. 니체는 사자가 사막에서 만난 용이“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고 명령하지만, 사자는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하며 저항한다고 역설합니다.
여기서 용은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치, 타인의 기대와 명령 등을 의미합니다. 사자는 이런 의무와 전통에 벗어나고자 하는 상징입니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용감히 저항합니다. 다만, 사자는 아직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합니다. 기존 것에 대한 저항하는 힘과 용기를 지녔을 뿐입니다.
어린아이를 떠올려 보세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순수하게 만들어 냅니다.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는 기존의 규칙과 의무를 잊고,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자유롭고 즐겁게 창조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니체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즉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우리는 내가 바라는 대로, 새롭게 세상을 만들겠다는 긍정과 창의성을 함께 가지게 됩니다.
요약하면, 낙타는 짐을 짊어지고 견디는 정신을 의미하고, 사자는 기존의 가치를 넘는 용기 있는 정신 뜻합니다. 어린아이는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정신을 말합니다. 이러한 니체의 사유는 우리 삶 곳곳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일상과 밀접한 소셜미디어 이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니체의 ‘세 가지 변화’를 대학생 주영이의 사례를 통해 살펴봅니다.
대중을 따라가는 낙타 단계: 대학생 주영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친구들의 카톡과 페이스북에서 최신 이슈들을 봅니다. 주영이에겐 재미보다는 일종의 압박감이자 의무감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나누는 연예인과 넷플릭스에 얘기에 뒤처지지 않고 싶었습니다. 흥미 없는 정보를 억지로 따라갔습니다. 자기가 원한 정보가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따라 봤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정보를 비판하는 사자 단계: 어느 날 주영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나쁜 소문이 급속히 퍼졌습니다. 많은 네티즌이 험담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친구들 역시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짜 뉴스였습니다. 주영이는 정보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후 의심 가는 정보는 출처를 확인하고,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언론사를 통해 찾아보고 있습니다. 주장의 근거 역시 확인합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어린아이 단계: 주영이는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자신만의 생각을 담은 콘텐츠들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책과 영화 리뷰, 뉴스 분석, 사회 이슈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와 사진을 꾸준히 올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며 친구들에게 응원받았습니다. 주영이는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비판적 이용자를 거쳐, 자유로운 크리에이터로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무엇이든 ‘낙타’처럼 시작합니다.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를 그대로 믿고,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사자’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권위 있는 정보라도 ‘이게 사실일까?’라고 되묻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자유롭고 창의적 의견을 세상에 공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소셜미디어 리터러시 역량과 다름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셜미디어의 무분별한 정보 속에 비판적인 자기 생각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낙타에서 벗어나, 사자를 지나고, 어린아이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니체가 지금 소셜미디어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너는 하고자 하는 대로, 세상에 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참고문헌
Nietzsche, F. (1968). Nietzsche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 vol. Ⅵ 1: Also sprach Zarathustra). 정동호(역) (2014). <니체 전집(KGW) Ⅵ 1(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책세상.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URL: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