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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Aug 28. 2024

"그래"가 가진 힘

엄마의 큰 그림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를 했다. 사랑하는 창원을 떠나 낯선 부산에 살게 된 것이다. 새 학교에 처음 가던 날, 가뜩이나 긴장한 나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너 예전 학교에서 몇 등했어?" 응? 오늘 전학 온 친구에게 이런 걸 묻는다고? 부산애들은 창원애들이랑 다른걸? 잔뜩 얼어서는 답했다. "나.... 1등이었는데...." 그랬더니 저 쪽에 앉은 친구에게 달려가면서 외친다. "ㅇㅇ야, 오늘 전학 온 애가 전 학교에서 1등이었대. 다음 시험에 누가 1등 할지 모르겠는데?" 아.. 저쪽 친구가 이 반 1등인가 보다.


전학 첫날, 선생님도 아닌 친구들에게 등수 질문을 받고, (사실대로) 1등이었다고 대답하고 돌아오는 길이 여러 가지로 찝찝했다. 현 1등과 경쟁구도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린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라고. 쳇. 나는 잘못한 거 없다고. 괜히 그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진 않겠지? 


전학 후 첫 시험날은 곧 다가왔고, 나는 초등학교 3년 인생 최악의 성적을 받았다. 채점 끝난 시험지를 받자마자 그때 그 친구들이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너 몇 개 틀렸어?" "6개" (하아, 6개였던 것까지 똑똑히 기억이 나네??) 지난번과 똑같이 ㅇㅇ에게 달려가는 친구들. "야, 얘 6개 틀렸대. 역시 우리 1등은 너야." 


거짓말한 적 없는데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날. 나는 친구들과 한층 멀어졌는데, 막상 친구들은 금세 잊었다. 더 이상 그들의 1등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가 되자 오히려 모든 게 평범해졌다. 이후에 친구들과 성적 얘기를 더 한 기억은 없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힘들었던 기억도 없다. 


문제는 친구 관계가 아니라 내 안에서 생겼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이야기니 민망해하지 않고 솔직히 말해보자면..... 사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 시험에서 (당시에는 초1부터 월말고사를 쳤다.) 2개 이상 틀려본 적이 없었다. 다 맞거나 한 개 틀리거나. 그게 그때까지 내 성적의 전부였다. 그러니 전학 후 첫 시험에서 6개나 틀린 건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커다란 사건이었다. 전학하고 처음이라 적응하느라 그랬을 거라며 다음 시험에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채점 결과, 또 6개를 틀렸다. 


9살 어린 마음에 꽤나 큰 좌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엽지만... 그때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사는 세상이 너무 좁았는걸.) 그렇게 몇 번의 시험을 보내고 다음 시험을 앞둔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기로 말이다. 하고 좌절하느니 하지 않고 좌절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시험 전날, 나는 요리하는 엄마 옆에 배 깔고 엎드려 책 읽으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물었다. "소령아, 너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해야 하지 않아?"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엄마, 원래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치는 거야. 오늘 막 갑자기 공부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하하하하. 쓰다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네? 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뻔뻔한 발언인가. 더 이상한 건 이 말을 들은 엄마의 반응이다. "그래? 알았어." 엄마는 더 이상 나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두둥. 시험 결과가 나오던 날, 나는 결과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졌다. 틀린 문제가 스물몇 개 던가 서른몇 개 던가.. 허허허허. 그동안은 내가 공부를 해서 6개만 틀린 거였다. 공부 안 하면 이런 점수가 나오는 거구나. 그 당연한 답을 해보고서야 아는 미련곰탱이가 나였다.


나는 알게 됐다. 결과란 내가 애쓴 정도와 비례한다는 걸 말이다. 그래도 0점 받지 않고 그만큼만 틀린 건 평소 수업시간에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더 잘하기 위해서는 '평소 공부'를 넘어서는 '시험기간 보충 공부'가 있어야 한다. 그간 내가 6개씩 틀린 건 딱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9살이 얻기에는 꽤나 깊은 깨달음이었다. 이후로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목표가 생기면 절실한 만큼 노력하는 나를 만들어온 터닝포인트였고 말이다.


그날 엄마는 나에게 "그래"라고 했다. 시험은 그런 게 아니라고, 네가 지금 배 깔고 누워서 책이나 읽고 간식이나 먹을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태평한 소리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불안해 보이지도 않았다. 엄마는 평소처럼 요리했고 저녁상을 차렸다. 언제나처럼 평화롭게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어느새 나도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그날의 엄마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잘 안다. 


엄마의 딸은 노력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외부에서 원인을 찾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노력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믿는 만큼 결과가 틀어졌을 때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학창 시절 내내 시험 볼 때마다 결과를 두고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무엇을 수정해야 할지 찾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더하면 다음에는 원하는 목표에 닿을 거로 믿었다.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고등학교 때도 종종 성적이 흔들렸는데, 그런 날은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며 먼저 말했다. "이번 시험준비에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내가 알아요. 다음에는 나아질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내가 단단하게 도전하고 다시 단단하게 그만할 줄 아는 건, 그때 엄마가 "그래"로 만들어준 경험 덕분이다. 과연 나는 엄마처럼 대담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그래"의 강력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엄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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