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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ul 29. 2024

뜻밖의 "다시"

예상하지 못한 말

나의 퇴사는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나를 기다리던 부서원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소식이었을 테고 말이다.


 "제가 복직 대신 퇴사를 해야겠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퇴사이니 상무님도 적잖이 당황했을 터, 당연히 이유를 물어왔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라고, 여러 가지 문제 중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당면문제로 답했다.


"정대리, 혹시 6개월만 더 휴직할 수 있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인사팀이랑 얘기해 볼게."


아이 두고 어떻게 일할지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무려 세 개나 옵션을 만들어두고 복직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하나씩 하나씩 문이 닫혔고, 마지막 문이 닫혔을 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의욕마저 사라졌다. 그래도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 의욕을 잡아와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정대리, 인사팀이랑 얘기해봤는데 전례를 만들 수 없다고.. 휴직 연장은 어렵겠다고 하네."


그러면 그렇지. 과장 진급을 미끼로 임산부를 원치 않는 부서로 발령내고 결국 진급약속도 지키지 않은 조직이다.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실망이 크지도 않았다. 상무님은 미안해했지만 이건 그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그의 마음은 진심이다. 함께 일하는 동안 겪어봐서 안다. 진급약속에 대해 인사팀이 말을 바꿀 때도 애써줬던 상사다.


퇴사원을 쓰기 위해 회사에 갔다. 내 마지막 사무실 방문이 될 터였다. 오랜만에 상무님 석 테이블에 앉았다.


"정대리, 요즘 분위기가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격려하는 분위기야. 우리 회사는 그런 이슈에 빠르게 대응하는 편이니까, 조만간 육아 이슈로 퇴사한 여성인력을 위한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늘 관심 가지고 있다가 다시 돌아와. 정대리 이렇게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그럼 혹시 그런 소식 들리거든 상무님이 연락 한번 주세요."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왜요?"

"아, 나는 그때까지 여기 남아있을 것 같지 않거든."


그때 내가 느낀 고마움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일하는 동안 권위적인 모습 한번 보인 적 없는 상무님이다. 해당 업무의 유일한 경력자이자 실무자였던 내 의견을 언제나 경청했다. 그래서 저 마지막 말 역시 진심인 걸 알았다. 가볍게 던진 농담이 아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나를 위해 인사팀과 껄끄러운 대화를 해줬던 거다. 본인이 힘이 없어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를 인정하고 배려했다. 정대리는 이대로 그만두기 아까운 사람이라고. 기회만 생긴다면 꼭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라고. 그때 자기는 없겠지만 정대리에겐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상무님이 얘기한 기회는 끝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상무님이 해준 말은 스스로 새로운 기회되었다. 내 안에 그런 말들이 쌓여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내가 되었으니까. 작지만 큰 조각, 누군가가 진심으로 건넨 말들은 큰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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