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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정 Jun 13. 2024

당신은 무엇이든 할 사람이에요

무엇이 그런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을까?

내 세상에 두 아이가 커다랗게 들어차있었다.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볼 수도 없는 날들이었다. 그러다 새로운 시즌이 밝았다. 첫째 7세, 둘째 3세가 되던 해, 드디어 두 아이 모두 원에 가기 시작한 것이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둘째 계획이 있어 별 생각이 없었고, 둘째가 태어난 후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이 바빴다.


7년을 엄마로만 살면서 그걸로 충분하다 여겼는데, 빈 방에 홀로 서니 정말 충분한 걸까 의아해졌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엄마 되기 전의 내가 그렇게 선명했는데. 내 일을 사랑하진 않았어도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데. 능력은 출중하지 않아도 욕심은 많았는데. 이대로도 괜찮을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주변에서 모두 "애들만 키우기에는 네가 너무 아깝지 않냐"라고 말하는 걸.


'그래. 내가 착각하는 걸 거야. 사실 나는 뭐라도 하고 싶은 걸 거야. 아니, 응당 그래야 해. 예전의 너를 떠올려 봐. 이대로 괜찮을 리 없어.'


'그런데 말이야, 나 아무리 그렇게 외쳐봐도 아이들과의 시간이 너무 좋은 걸. 일하러 가면 함께 하지 못할 시간이 너무 아쉬운 걸. 과거의 나는 믿을 수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굳이 일하러 나가고 싶지 않아. 지금처럼 이대로 평온하고 따스하게 엄마로 살고 싶어.'


이런 생각을 매일매일 되풀이하던 계절의 한복판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녀는 코치였고, 이후에 내가 코치의 길에 들어서는데도 그때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함께 모인 이들과 여러 가지 질문에 답했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눴다. 셋 다 엄마였지만 가진 이야기는 모두 달랐다. 내가 가진 두 개의 마음 때문에 혼란한 상황을 털어놓을 곳이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에 차근차근 모두 내놓았다. 듣는 사람들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러면 어쩌자는 거지?' 싶어 당황스럽겠다 예상했는데, 그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미 잘 알고 계신데요."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왔는데, 쏘냐 님은 이미 다 정리되어 있는 것 같아요."


혼란도 또박또박 얘기하면 정갈해 보이기도 하나보다. 혼란을 해결하지 못해도 스스로 혼란을 분명하게 감지하는 능력만 갖춰도 단단해 보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원한 건 하나의 답. 혼란을 정리해 줄 명쾌한 방향이었다.


그때 코치님이 말했다.


"지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서예요. 쏘냐 님은 무엇이든 할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때는 이런 고민하지 않고 바로 뛰어들게 될 겁니다."


아. 그런 거구나. 내가 떠올리는 일들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니어서였던 거야. 그제야 깨달았다. 한 번에 정리된 모범답안 같았달까. 그런데 그 답안보다 더 고마운 말이 있었다. 무엇이든 할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이었다. 덕분에 나의 불안이 한 번에 사라졌다. 과거의 나는 나를 '무엇이든 할 사람'으로 믿었다.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는 없겠지만, 내가 마음먹은 일이라면 썩은 무라도 자를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7년을 육아만 하다가 세상을 둘러본 나는 좀 달랐다. 세상을 몰라서 자신 없었다. 그런 나에게 저 말은 큰 응원이고 위로였다. 



덕분에 아이들과 보내는 날을 불안감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뛰어들 수도 있었다. '바로 이 일이 그때 얘기했던 일인거구나.' 한 번에 알아차렸고 말이다.


* 이 이야기는 사실 작년에 출간된 책에도 썼었어요. 그만큼 저의 시작에 중요한 말이어서, 이번 시리즈에도 빼놓을 수 없었어요. 제 이야기를 좋아해 자주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중복이 될 수 있어 죄송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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