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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13. 2024

일단, 어쨌든, 아무튼, 바깥!

나가자! 나가자! 나가고 싶다!

<아무튼, 바깥>

지난해 황유진 작가님의 "기대어 씁니다"에서 프롤로그만 쓰고 1년 여 방치하다가 드디어 써보는(쓰기로 결심한) 글.


그 사이에 집에서도 좀 잘 지내게 되어서 어찌어찌 되려나 모르겠지만,


시작하는 글!

봄까치꽃이 피었어!


 아이가 잠든 밤, 문득 갑갑함을 느낄 때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어딘가 심란해 보이지만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주인공은 걱정스러운 얼굴의 조연을 등지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 바람 좀 쐬고 올게."

완벽한 스타일의 바바리코트를 척 두르고 나선 주인공은 터벅터벅 강변을 거닌다. 강 건너 화려한 빌딩 숲과 강물에 어룽어룽 비치는 가로등을 바라보는 우수에 찬 옆얼굴. 내쉬는 한숨마저 멋있기만 한 허구의 고뇌를 떠올리며 나도 잠깐 고민한다. '나가서 걷고 올까?' 그러나 아까 샤워했는데 옷을 챙겨 입으려면? 아까 낮에도 실컷 본 동네 풍경인데 굳이 또 나가서 볼 것까지야…. 길지 않은 망설임 끝에 노트북을 켠다.


 밤 외출의 재미를 잃은 대신, 밝을 때는 밖으로 나간다. 나갈 수 있으면 일단 나간다. 집에서 혼자 푹 쉴 수 있던 때에는 외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안 나가도 그만인 호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본격적으로 밖에 나가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은 후부터였다. 아기와의 하루는 고되고 길었다. 아기도 규칙적으로 바깥바람을 마셔야 한다는 육아서의 가르침에 따라 아기 띠를 두르고 빵집이나 편의점에 다녀왔다. 겨울에는 계란빵을 사러 다녀오는 산책을 규칙적인 코스로 정해두고 다녀왔다. 지루하고 갑갑해서 길에서 아는 사람 누구라도 만났으면 싶었지만, 나를 붙잡는 건 수상한 포교 활동하는 종교인들 뿐이었다. 어느 날 사라진 계란빵 아저씨를 원망하며 그저 여기저기 걸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는 열성적으로 외출했다. 9시부터 4시까지 쫓기듯이 놀았다.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멀리 있는 카페에도 다녀왔다. 4시에 아이를 찾으면 무조건 놀이터에서 갔다. 아이는 춥든 덥든 상관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시간이 넘어가면 힘에 부치기 마련인 바깥 놀이지만,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산책이라도 했다. 아이를 밖에서 놀게 해 주겠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아이와 둘이 집에 있기가 괴로워서 선택한 외출이었다. 하원 후에 집에 바로 돌아오면 그때부터 나에게는 끊임없는 집안일과 끝없는 돌봄이 있을 뿐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노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에 부쳤다. 미세먼지가 창궐하거나 땡볕에 시커멓게 타들어 가도 밖이 편했다. 밖에서는 아이가 나를 덜 찾고 나는 집에서만큼 화를 내지 않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미술 학원 앞 창문 뷰

 올해 여섯 살이 된 아이와 나는 집안에서도 잘 지내지만, 여전히 밖을 사랑한다. 봄방학이라 한가한 오늘도 일찌감치 놀이터에 나가서 운 좋게 친구들을 만나 잘 놀았다. 실컷 뛰어놀고 우리 집에 모여 로제 떡볶이와 튀김으로 잔치를 벌였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보채고 토라졌지만, 엄마에게 달라붙지 않아 괜찮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이 학기 중이었다면 나는 밖에 나가서 커피를 마시며 그림을 그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굳이 밖에 나가면 더 좋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집에 있으면 집안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어떻게 손을 놓았다고 해도 마음마저 놓을 수는 없다. 눈에 들어오면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신경 쓰이는 집안일은 하찮고 번거롭고 귀찮다. ‘마음 편하게 집에서 쉰다’라는 문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참 명제처럼 보이는데도 나는 마음 편하게 집에서 잘 못 쉰다. 그래서 일단은 나간다.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밖으로.


비 맞은 향나무도 예쁘지

덧.

이래서야 되나 싶을 만큼 밖을 돌아다니고 나니, 근래에 들어 집에 좀 앉아 있을 때도 있다. 집에 오래 있으면 집안일을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고도 잘 앉아 있다. 수업 듣고 과제도 해야 하고, 캐스트 대신 음악을 들으니 정신도 조금은 고요해졌다.(지금은 듄 OST 듣는 중이라 매우 극적이지만)

밖에 나가기 좋은 계절이다. 두꺼운 옷을 벗고 걸을 수 있고, 벤치에서 멍하니 있어도 되는 봄이다. 꽃이 피고 잎이 돋으니 오늘도 좀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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