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좋다. 그래도 된다면 매일매일 가고 싶다. 다들 그런가? 내가 고르는 음료는 거의 매번 아메리카노, 커피를 너무 마신 날 오후라면 페퍼민트차, 어쩌다 한 번쯤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은 달콤한 라테나 초코 음료를 마신다. 카페를 고르는 특별한 기준은 없다. 사람이 넘쳐나지 않고 음악 소리가 쿵쾅대지 않으면 어디든 상관없다. 우리 동네 도보 20분 거리 안에만 10개가 넘는 카페가 있다. 자주 가는 카페는 두세 군데로 정해져 있고 오늘은 조용한 투썸플레이스에 앉아 있다. 오늘따라 음악 소리가 좀 크지만 당장 나갈 수는 없으니까 이어폰 볼륨을 한 칸 높이고 집중해 보자.
내가 대학생일 때 다니던 카페는 요즘의 카페와는 달랐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흔해지기 전에도 커피 전문점이나 커피숍은 물론 있었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커피 맛도 모르는 애송이가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달까. 괜히 알려주고 싶은, 현재 사라지고 없는 내가 좋아하던 카페는 어떤 곳이냐고? 떠올릴수록 새삼 얼마나 좋은 곳이었던가 추억에 잠겨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20대 초반에 다니던 카페 이야기를 해볼까.
시내(동성로와 중앙로 일대)에서 만난 친구와 나는 저녁으로 햄버거나 피자, 떡볶이를 먹을 수도 있지만 괜히 사거리 카페로 간다. 사거리 모퉁이 2층마다 우리가 좋아하는 카페들이 있다. 셋 다 비슷비슷한 인테리어에 특색 없는 메뉴. 우리가 장소를 고르는 기준은 인구밀도. 창가가 비어 있는 곳으로 들어가 볼까.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네모반듯하고 넓적한 소파에 앉아 늘 보던 메뉴판을 정독한다. 맨날 먹는 김치볶음밥과 새우볶음밥을 시키고 창밖을 내다본다. 거리에는 오늘도 넘쳐나는 사람들.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의 바지 주머니에 넣은 손을 주물럭거리는 커플과 과감한 개성이라는 말로 포장해도 웃음을 참기 힘든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낄낄댄다.(어려서 그랬지, 요즘의 나는 모르는 사람을 비웃거나 외모 평가질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넘어가자) 냉동 재료와 조미료 맛으로 입에 짝짝 붙는 볶음밥을 싹싹 긁어먹고 나면 아르바이트생이 다시 건네주는 디저트 메뉴판을 유심히 살펴본다. ‘콜라, 사이다, 커피, 녹차’ 사이에서 고민하다 시킨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대학 생활,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과 연예인 이야기, 누군가의 비밀과 소문, 걱정되는 친구와 더 걱정스러운 내 삶. 이어지는 뒷담화와 그 뒷이야기까지…. 화제가 떨어지는 일은 없다. 버스 시간에 맞추려 10시 전에 카페에서 나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질 때 각자 이어폰을 꺼내면서 다정하게 이사한다. “집에 들어가면 문자 보내.”(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친구가 좋아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 저녁 내내 앉아서 놀 수 있었던 그 카페. 테이블에 재떨이가 놓여 있고, 메뉴판에는 밥과 커피, 파르페와 칵테일이 쓰여 있던 카페가 그립다. 지금 먹고 있는 커피와 초콜릿케이크는 열량을 채워줄 뿐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하는구나. 당연한 소리를 괜히 해본다.
밥과 커피를 아낌없이 내어주던 이런 카페들은 대형 커피 전문점이 생기면서 하나둘 사라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밥집에 갔다가 커피를 마시러 가야 했다. 직장인이 된 우리는 시애틀 커피와 다빈치 커피, 커피빈과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와 할리스 커피를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우리는 캐러멜 마키아토와 민트초코 프라푸치노 같은 달콤한 음료를 모두 맛본 후에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에 정착한 어른이 되었다. 카페와 술집을 함께 다니고 삶의 모든 이슈를 공유하던 절친들과 연락이 끊어진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옛날 카페를 떠올리다 보니 그 친구들 안부가 궁금하지만, 이 궁금한 마음도 카페에 대한 그리움처럼 지나가겠지. 그래도 유행이 돌고 도는 거라면, 그 시절 만능 카페가 다시 유행하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커피머신이 있는 집이 많아졌다. 코로나 시기와 집중 육아 기간이 겹쳤을 때는 나도 진지하게 커피머신을 고민했지만, 주방 물건을 늘리고 싶지 않아서 포기했다. 집에서는 간편하게 카누와 이디야, 할리스의 분쇄커피를 마시거나 때때로 좋아하는 카페에서 드립백을 샀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핸드밀로 갈아준 원두를 받아왔더니 너무나 풍미가 좋아서, 전동분쇄기를 샀다. 괜히 전동분쇄기의 검정에 맞추어 원두 보관통과 주전자를 세트로 사고, 서버와 티타늄 드리퍼도 샀다. 꽃트럭에서 산 튤립과 프리지어를 나란히 올리고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면 집안 가득 퍼져나가는 홈카페의 낭만.
나의 핸드드립
규칙적으로 원두를 사고,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시면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역시 카페는 바깥 카페가 좋고, 커피는 사 먹는 커피가 맛있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면, 커피 가루를 치워야 한다. 특히 티타늄 드리퍼에는 얼마나 구석구석 가루가 끼이는 것인지. 분쇄기에 끼인 커피 가루도 꼼꼼하게 털고 닦아주어야 한다. 드리퍼와 서버도 씻어 말려야 또 내일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결국 설거지다. 홈카페의 낭만에 가려진 잔잔하고 번거로운 그 일. 설거지. 겨우 그깟 걸로 홈카페의 낭만을 포기하냐고? 포기한 건 아니다. 그저 매일매일 핸드드립은 못하겠다는 말이다. 장을 보면서 일리커피에서 나온 분쇄커피를 사서 또 아침마다 편리하게 마시고 있다는 그런 말.
역시 바깥 카페가 좋다. 플라잉 요가를 마치고 후들대는 팔다리로 걸어 들어가는 텐퍼센트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 아침부터 만난 친구와 나눠 먹는 브런치 세트, 점심을 배불리 먹었을 때 더부룩함을 싸악 내려주는 아메리카노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도 좋고, 커피를 사서 걷다가 앉다가 하는 시간도 좋다. 역시 카페는 그냥 바깥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