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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초 그림일기

12월말부터 1월 초까지

by 눈그린 Jan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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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1월 1일 수요일

블로그에 달린 댓글로 눈뜨자마자 감동하는 아침, 여름이 좋아하는 맥모닝 팬케이크를 실컷 먹고 모처럼 공들여 그림을 그렸다. 크리스마스에 아이와 버스를 타고 각산마을에 나갔던 날, 장미 화분이 풍성한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그렸다. 할머니가 사 준 인디핑크 점퍼와 ‘이제 곧 거들떠보지 않겠지.’ 싶은 마음에 내가 사 준 딸기 무늬 샤랄라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갈색빛 도는 분홍 대문과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최근 겨울다운 날씨가 되긴 했어도 예년보다 푹한 기온 덕인지 화분에 심긴 장미가 아직도 생생했다. 새빨간 꽃과 살구색 꽃.


고양이를 보러 가자는 여름의 말에 새해 첫날부터 또 버스를 탔다. 버스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의 발걸음은 투스텝으로 신나지만, 급정거와 급출발이 반복되면 금세 지친다. 혼자 다닐 때처럼 이어폰을 끼고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없어 쉽지 않은 여름과의 버스 나들이. 돌아오는 길 허기가 져 파리바게뜨에서 산 빵을 길에서 뜯어 먹었다. 느릿느릿 걷는 아이를 재촉하는데 눈이 마주친 아주머니(엄마뻘쯤 되려나)가 깔깔 웃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빤히 보았더니 더욱 웃으며 다가왔다. “애랑 엄마랑 어찌 그리 똑같아요? 빵을 물고 걸어오는 품이 둘이 똑 닮았어. 귀여워서 자꾸 봤어요.” 부끄러우면서 기분이 좋았다. 새해 첫날 낯선 이에게 귀여움받은 기억을 간직하며.


배부르고 기분 좋아

1월 4일 토요일

연말에 시골 갔을 때 여동생과 여름과 찍은 그림자 사진을 그렸다. 엄마 아빠는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가고, 우리는 동네 중식 맛집에 가서 짬뽕과 탕수육을 먹었다. 여름은 내내 유튜브를 보며 군만두 몇 조각 먹은 게 전부였지만, 점심을 거른 나와 동생은 실컷 배불리 잘 먹었다. 자판기 커피믹스까지 한잔하고 나와도 겨우 6시 반, 시골의 겨울 저녁은 깜깜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길 건너 사과 창고 마당에 있는 밝은 등 덕분에 주차장이 환했다. 노란 담벼락에 우리 그림자가 선명해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아침에는 귤 화분 분갈이를 했다. 8년 동안 키우면서 귀찮아서, 토분이 비싸서 따위의 사소한 이유로 분갈이를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 흙이 너무 줄었을 때 새 흙을 넣어주고 좋다는 영양제라도 부지런히 주어서인지, 아니면 단지 귤나무의 생명력이 강해서인지 아직도 싱싱한 귤나무. 올가을 귤꽃이 많이 피고 자리마다 열매도 많이 맺었기에 기대했었는데 들여다볼 때마다 후드득 떨어지고 딱 한 알이 곱게 자라서 익었다. 더 미루다가는 귤나무를 죽이겠다 싶어 저렴하고 큰 토분과 흙을 주문했다. 블로그를 찾아 가장 쉬워 보이는 설명에 따라 분갈이를 해주었다. 듬뿍 물을 주고 창문을 살짝 열어 바람을 쐬어 주었다. 물이 새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 거실 창가로 옮겼다. 부디 잘 자라줘.


디저트 접시

1월 7일 화요일

아이의 장염(열감기?)이 다 나아 플라잉 요가 수업에 갔다. 새로 배운 동작에서 고관절 회전이 잘 안되어 짜잔-하며 완성은 못했지만, 힘쓰는 부분만은 모두 제대로 해내서 만족했다. 며칠 만에 데일리 친구와 텐퍼센트 커피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림을 그렸다. 시골에 갔을 때 엄마와 여동생, 아이와 함께 갔던 경주 카페의 따뜻했던 시간. 슈톨렌과 피낭시에가 담긴 물결무늬 옅은 민트색 접시에는 사철나무와 남천 열매가 장식으로 올라가 있었다. 공간도 사장님만큼 따스하고, 커피도 맛있는 카페 어제.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선호하는 엄마는 조금 지루해했지만, 여름도 한껏 사랑받으며 즐겁게 지냈다.

여름 옆모습


얼음골에 갔다가 아이를 위해 찾아갔던 얼음 썰매장. 어릴 적 시골 동네에도 얼음 썰매는 많았지만, 개울이 좁아서 실컷 타지 못했었다. (썰매도 친구네 오빠가 만든 것이었고) 빈 논에 물을 받아 넓게 얼린 빙판에서 난생처음 신나게 얼음을 지쳐보았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여름도 곧잘 신나게 탔는데, 아무래도 내가 더 재미있게 탄 듯싶다.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해서 아이와 놀이공원에 가면 어지럽고, 눈썰매장에서는 아이 썰매 들어주느라 기운을 다 뺐는데 산골에 있는 한적한 논 썰매장은 즐거웠다. 비닐하우스에서 파는 어묵과 군고구마, 컵라면과 커피에도 어른들 모두 만족.

얼음 썰매가 좋은 나


1월 8일 수요일

발가락을 다쳐 오래 고생하던 친구가 드디어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설 수 있어 그림책산책에서 만났다. 책방지기와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피자를 나누어 먹었다. 정치 상황(이라기보다는 이건 사회 문제)의 개판스러움과 슬프고 분한 일들을 실컷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책방지기의 추천으로 읽은 그림책 ‘검은 돌’로 엄마 생일 시즌의 어수선한 갑갑함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밤에는 결국 엄마 이야기를 잔뜩 써서 올렸고, 죄책감은 느끼지 않기로 했다.

김하나 작가님


4일에 책봄에서 김하나 작가님 북토크가 있었다. 요즘은 음악을 듣느라 팟캐스트는 거의 듣지 않다가 여러 사람의 추천으로 여둘톡을 들었다. 역시 좋았다. 낄낄 웃거나 맞장구를 치거나 크게 끄덕이며 들었다. ‘금빛 종소리’는 읽기 전에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 기대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할 줄은 알지만, 근사하게 쓸 수 없어 아쉽다. 북토크는 은혜로웠다. 작가님을 가까이에서 보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제대로 정리할 수 없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너무나 큰 위안을 얻었다. 초록색 코알라 니트를 입은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작가님을 그려보았다.

귀여운 눈사람


그림책산책에 앉아 있는 동안 함박눈이 내렸다. 며칠 전 문희정 작가님이 인스타에 올린 ‘인상이 선한 눈사람’을 그렸다. 착하게 생긴 무언가를 그리면 착하고 순한 느낌이 사라지고 멍청한 눈빛만 남을 때가 많아 망설이다 그렸는데, 마음에 들게 완성되었다. 솔방울 눈동자와 나뭇가지 코가 마음에 든다. 소나무의 디테일을 더 살릴 수도 있었는데 그리다 지쳤다.


1월 10일 금요일

금요일은 파워 플라잉, 수업 이름에 걸맞게 아주 힘을 팍팍 쓰고 돌아왔다. 달디단 믹스 두 봉을 한 잔에 끓여서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이런 거 해서 뭐하나 싶다가도 해서 나쁜 거야 있겠나 싶어 친구의 제안을 수락했다. 녹음된 내 목소리가 불편해서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우리끼리 재미있었으면 된 거 아니겠냐며 깔깔 웃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드라마 ‘아수라처럼’을 틀자마자 푹 빠져들었고 새 차가 나온 날.

팟캐스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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