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사람마음1
오랫동안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이 부부, 가족치료 분야였다.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시작으로 “부부가 달라졌어요”, “고부가 달라졌어요” 와 같은 '달라졌어요' 시리즈와 “미워도 다시 한번”, “파뿌리”와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프로그램은 다양한 사연과 많은 치료방법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상담심리치료 분야가 생활속으로 들어오는 시작이기도 했다. 이제는 방송에서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이 방송 활동을 통해 심리상담을 하는 게 낯설지 않게 됐다.
문제는 방송을 보고 무슨 문제든 뚝딱 해결된다는 과도한 확신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보니까 잘 고치시던데”, “해결책을 주셔야죠”, “어떻게 하면 되지요”와 같은 질문들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자세다. 이런 질문들에 답 하다보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서 요즘 상담심리를 시작할 때 절차를 까다롭게 하거나, 단호하게 다른 곳을 안내하는 게 스타일이 돼버렸다.
이혼 요구하는 남편의 죄책감
하루는 어느 여자분이 상담을 시작했다.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데 남편이 불쌍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안정된 직장에 좋은 삶을 살고 있지만 남편의 마음은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아내는 불안하고 남편은 집에서 안식을 취하지 못했다. 나는 아내 분에게 "이혼을 하더라도 건강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고 남편분도 상담을 받게 했다.
가까스로 방문한 남편은 준수한 외모에 지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혼을 돕겠다고 말하며 상담을 시작했다. 건강한 상태에서 하는 이혼은 후회가 없지만 불안정한 심리에서 하는 이혼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힐 테니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생각하라고 안심시켰다. 상담을 거부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내 말에 수긍하듯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결혼을 하기 전에도 몇 명의 여자를 만났고 결혼 후에도 여자를 만났다고 했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죠"하며 그런 일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깊은 속내를 듣기 시작했다. 상담을 이어가자 점점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남자의 아버지는 다리가 아파서 집에 누워 있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동네에서 열심히 노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부르고 약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먼 길을 걸어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아버지에게 드리는 것이 일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심부름을 위해 아이가 노는 것을 중단하는 게 참 싫었다. 하루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약국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약을 들고 동네로 향하는 길에 아까 자신이 친구들을 이기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놀이를 중단하고 심부름 간 일을 분해했다. 급기야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다. 그런데 집에 가보니 아버지가 정말로 돌아가신 것이었다.
그 아이가 받았을 충격은 이를 전해 들은 나로서는 측정이 안됐다.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사람의 말을 가늠하는 것은 교만이고 교활이 된다. 그래서 인디언 속담에 ‘한 사람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에 할 수 없다’고 한다.
아이는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공부를 하고 직장에 가기까지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자기의 기도와 염원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을 거라는 자책감을 쉽게 지워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상담사와 심리학적 이론도 그 아이를 위로하지 못한 채 아이는 삶에서 버려진 꼴이 됐다. 살아 있어도 생기를 잃어버린 존재가 된 것이다.
오래 묵혀둔 감정, 삶을 병들게 만들어
몇 달간 상담하면서 말미에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어린 시절의 자신을 위로하도록 했다. “아들아, 네가 그렇게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 생각은, 오죽 네가 힘들면 그런 생각을 한 것이겠니? 어린아이들은 그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거다. 이제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라. 하늘나라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남자는 자신을 위로하면서 많이 울었다.
이런 상담을 했다고 쉽게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삶은 한 고개 한 고개를 넘는 과정이다. 넘지 못한 고개는 돌아돌아 다시 넘어야 할 때가 온다. 다시 넘을 때는 예전의 작은 고개가 아니라 큰 산이 되어 있다. 누군가가 위로하며 괜찮다고 해줘야 하는데, 그걸 위로받지 못하면 인생의 짐이 되어 삶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원래 우리나라는 집에 사람들이 죽으면 가족들이 곡을 했다. 울다가, 식사 준비하다가, 밥을 먹다가, 영정 사진을 보다가 통곡을 했다. 심하면 곡하는 사람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서구 문화가 정착하면서 조용한 장례식이 보편적 문화가 됐다. 얼굴에 숄을 쓰고 조용히 흐느끼는 여인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았듯이 장례는 조용히 치러야 하는 게 정답이 돼버렸다.
하지만 인간 심리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조용한 장례가 맞다고 말할 수 없다. 망자에 대한 다양한 감정의 골을 숨긴 채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너무 고통스러우면 그때 정신과나 상담치료실에 찾는 게 맞을까. 고통스러우면 소리를 질러야 한다. 안의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병이 된다. 안에 묵혀둔 감정은 신체를 공격하고 정신을 공격하면서 삶을 병들게 한다.
부부는 상담 후에 이혼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난 이혼을 하든 안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건강한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무언가에 쫒기는 듯 결혼을 하고 무엇에 홀린 듯하는 이혼의 배후에는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문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