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사람마음5-80대 아내, 남편에게 이혼하자 한 이유는
트라우마는 충격적 경험의 순간에 시간이 멈춘 것
시간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오래전부터 신비한 영역에 속해 왔다. 쉽게 ‘지금’이라고 시간에 대해 말하지만 엄밀하게 ‘지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말하는 순간 지나간 지점이 된다. 그런 점에서 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어렵다.
근대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통일된 시간 측정을 위해 시계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오래전부터 시간은 신의 영역으로 '신이 흘려보내는 물줄기'로 이해했다. 신이 자신의 존재의 측면을 시간을 통해 보여주신다는 말이 된다. 이후 해를 이용한 시간측정 도구를 만들거나 물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인간 개개인이 인식하는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어릴 때는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살아갈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많다. 어릴 때는 시간이 지루하고 늦게 가는 것이 지겹고, 노인이 되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이 무섭게 느껴진다. 이처럼 어린아이와 노인의 시간이 다르다.
어린아이와 노인의 시간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개개인의 시간도 각자 다르게 흘러간다. 이처럼 개개인의 시계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며 나온 개념이 '주관적 세계'다. 주관적 세계란 객관적으로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이해한 세계가 아니라 각자 경험하고 해석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사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치료하는 세계에서는 중요하다. 상담을 요구하는 사람의 내면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고 작동되는지 알아보기 위한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은 트라우마 치료에서도 중요한 시각이 된다.
트라우마란 강력한 정서적 경험으로 시간이 당시 순간에 멈추었기 때문에 생긴다. 몸은 현재에 있지만 마음은 과거에 머물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면의 시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모르면서 상대를 치료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의 말이란 내면의 시간을 설명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80대 아내, "신혼때 남편이 자신을 때렸다"
어느 방송국의 요청으로 80대 노부부의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80대 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고 한다. 필자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시작했다. 아내의 이야기는 이렇다. 결혼 초 군인이었던 남편은 수시로 외박을 하였는데 하루는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때리며 험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자신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며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였다.
부부 혹은 관계의 문제는 개인 상담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과거의 사건이 진짜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형사나 경찰이 할 일이다. 치료자는 관계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설계를 할 뿐이다. 남편의 말도 옳고 아내의 말도 옳다. 남편은 사소한 행위로 기억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내는 큰 상처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이게 인간의 마음이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 조율이 되지 않으면 결국 악기의 현이 끊어지듯 관계의 줄은 끊어지게 된다. 노부부의 관계의 끈은 오랜 시간 부부의 연으로 살아왔지만 팽팽한 긴장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끈을 좀 느슨하게 만드는 작업이 심리치료라 할 수 있다. 간단하게 아내가 ‘잊어버려라, 참아라’는 말을 듣게 되면 마음의 줄은 더 팽팽하게 긴장된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말로 인해 상처 입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먼저 남편에게 주문했다. 아내가 무엇이 힘들었는지 무엇을 참고 살았는지 들어보라고 했다. 아내의 말이 맞고 틀리고와 사실이고 거짓이라고 평가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원망을 참고 들어주기만 하라고 주문했다.
남편은 필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남편은 아내가 말한 일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그냥 참으면서 아내가 당한 일들, 아내의 마음속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는 이야기하며 울분을 토했고, 일어서서 앉아 있는 남편에게 호령했다.
옆에서 지켜봤다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시각은 객관적 시각일 뿐이다. 아내의 주관적 세계를 확장시켜야만 객관적 세계와 조율하게 된다. 아내의 분노가 쏟아져 나와야 긍정적 마음이 싹트게 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당한 일, 또는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당한 일이 혼재되어 튀어나왔다. 오랜 시간 억눌린 마음을 남편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아내의 마음속 시간은 어린 시절, 신혼 초, 힘들었던 순간순간 이동하였다.
노부부는 며칠이 지난 뒤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상담이 너무 싱겁게 끝난 것이 아닌가하고 필자도 의아했다. 그들의 마음속 시계가 이제 동일하게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집안의 시계도, 국가의 시계도 안맞을 수 있어
집안의 시계도 안방과 거실의 시계가 맞지 않을 수 있듯이 마음속 시계도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서로 맞추면 된다.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면 된다. '내 시계는 맞고 네 시계가 틀렸다'고 다투기보다 서로 시계를 맞추기 위한 노력, 서로 조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부부나 가족만이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노인 세대의 마음속 시계는 일제 시대나 6·25 전쟁에 머물러 있다. 그 다음 세대는 경제 부흥과 새마을 운동에 맞춰져 있고 그 다음 세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88 서울 올림픽에 맞추어져 있다. 요즘은 BTS나 넷플릭스에 맞춰져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정치란 국민들의 마음의 시계를 조율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심리치료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 가족, 공동체 국가의 상처를 치유하고 조율하는 일들이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