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 사람마음3
"내가 나으면 엄마에게 어떻게 복수하죠?"
이 말은 5개월간 상담을 하던 여자 대학생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다. 그녀는 항상 죽고 싶다고 말하며 자해충동과 자살충동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심할 때는 지방에서 서울로 와서 큰 병원에서 한 두 주간 폐쇄 병동에 입원한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그녀 때문에 부모의 노력도 한 몫 보탠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에서 병원으로 돌아다니며 딸의 수발을 들기 때문이다.
갑자기 '자해충동'이...
필자는 그녀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인터넷 줌으로 영상상담을 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묻는 말에만 짧은 답을 하곤 했다. 가끔씩 갑자기 카톡으로 “숨이 안 쉬어져요, 자해충동이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필자에게 불안을 안겨주기도 한다. 초기에는 그런 말들에 급한 상황이라고 느끼고 긴장했지만, 자주 그런 현상이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그러려거니 한다.
정신치료를 받는 딸을 위해 엄마는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에서 병원으로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상담이 꼭 문제를 파악하는 대화만 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이 있냐 없냐 같은 종교적 문제를 이야기 하다가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내용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면서 살짝살짝 묻어나오는 상담자의 감정을 읽어 나가며 어떤 기분인지, 얼굴 표정에 나타난 감정은 무엇인지 물어본다. 대체로 '감정과 사고가 분리되는 현상'으로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 현상이다.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들
갓난아이에게 부모가 어르고 달래면서 감정을 가르치듯,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을 가르치고 교정시키는 일은 단순히 말을 잘 듣고 공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감정을 머리가 이해하고 자신이 원할 때 적절하게 감정을 꺼내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반 사람들도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개인이 감정을 누르는 대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의 존재를 좌우하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감정의 중요성을 외치고 교육하고 치료하는 곳은 많이 생겼지만, 사람들의 완전한 인식 변화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햄릿이 “가혹한 운명의 화살과 돌팔매질을 어떻게 참고 견딜 것인가”라고 말한 것처럼, 매일 스트레스라는 화살과 억압과 역경의 돌팔매질에 시달리며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는 누구나의 숙제가 되어버렸다.
마음 치료에 가족들의 도움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상처 받은 이유가 가족인 경우도 많다. 사진= 연합뉴스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 "복수"
그녀가 조금씩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왜 이렇게 망가졌느냐'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동생이 아프니까 엄마가 자기를 방치하고 동생을 간호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기가 공부를 못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말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하던 중, 무심코 "내가 건강해지면 어떻게 엄마에게 복수를 하죠?"라는 말이 튀어 나온 것이다.
논리상 자기를 정서적으로 억압하던 엄마에게 복수할 길은 '내가 아픈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죽으므로 엄마를 고통스럽게 하는 길뿐이다.
필자는 가볍게 듣고 넘기는 척 했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하고서 스스로 놀랐다. 치료를 돕는 치료자로서 마음의 병을 빨리 낫도록 해주는 노력과 함께 그녀가 엄마에 대한 마음의 원망이 누그러지는 지점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데 고민이 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섬세하고 복잡하다. 외과적인 수술과 마찬가지로 마음 치료도 내방자가 감정과 갇혀진 진실을 드러내고 햇빛에 말려서 뽀송뽀송하게 지낼 수 있게 하려면 긴 호흡의 과정이 필요하다. 쉽게 치료하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