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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간병일기 1

아프지만 이별을 준비합니다

 


어머니는 긴긴 잠을 주무신다.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다가 어느 순간 그 마저 중단될 것이다. 우린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생각보다 거리가 멀다.

지난주까지 우린 어머니의 백수연을 고민하고 있었다. 장소와 음식부터 초대장, 현수막 등등 준비할 게 많지만 즐겁게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장수하여 늙어가는 자식들 곁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설 전부터 복통이 있던 걸 모르고 있었다. 같이 사는 아들 내외도 노인이니 그러려니 크게 신경 쓰지 못하다 뒤늦게 알게 된 모양이었다.

마음이 영 편치 않아 뵈러 갔다가 모시고 왔다. 아무리 노령이라지만 복통의 원인이라도 알아야지 싶었다. 그건 아들 내외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자식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보편타당한 의문이었다. 진통제를 먹더라도 증상에 맞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연세가 있으니 큰 병이 생겼다 한들 적극적인 치료는 힘들 것이다. 언제나처럼 딸 집에 바람 쐬러 가듯 집으로 모셔왔다.


오늘 아침 병원에 모시고 갔다. 기본적인 검사가 가능한 병원의 가정의학과를 먼저 방문했다. 나도 몇 번 진료받아 본 병원이다. 접수처에 복부초음파와 가슴 엑스레이, 영양 수액 처방을 신청했다.

잠시 후 엄마의 이름이 불렸지만 잘 걷지 못해 지체되자 의사가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난 미안한 마음에 변명처럼 한 마디 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 분이시라서요,”

그러자 의사도 한 마디 보탰다.

“그러게요. 그래서 마중 나왔어요.”

의사가 거동을 보고 진료실까지 무리라 생각됐는지 대기실 의자에 그냥 앉히셨다. 그리고 눈을 보곤 바로 나만 진료실에 들어오라고 했다.

의사가 나를 의자가 아닌 진료 병상에 앉게 했다.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그가 벌써 위로하기 위해서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간호사도 재빠르게 티슈를 뽑았다.

“선택하셔야 해요. 지금 검사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지금 검사를 하면 결과는 분명히 큰 병원 가셔야 하고 그럼 바로 중환자실 입원이세요. 병원에서 보낼지 집에서 가족들 손잡고 보낼지 선택하세요. 수액 맞추시고 싶겠지만 위험해요. 피검사 자체도 위험할 정도로 어머님은 지금 빈혈이 심각합니다. 원하시면 검사도 해드릴 수는 있지만 검사 자체가 무의미하고 검사 비 벌자고 어르신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가족과 상의해서 말씀해 주세요.”

의사의 말을 오빠에게 전했고 오빠도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전혀 못 드시는 엄마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 드렸다. 평생 식사 때마다 반주로 한 잔씩 드시던 거다. 언제나처럼 원샷. 미음도 잘 못 드시는 분이 소주는 시원하게 넘어가니 소화제로 달라는 거다. 이 마당에 무엇을 망설일까 싶었다.

형제들 가족 대화방에 알리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다. 울먹이는 언니들을 달래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이 일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나는 극한 상황에 오히려 담담해지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시부모님과 친정아버지까지 내 나름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보내드렸다.

부모님의 노후와 병증에 따라 각 가정마다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욕먹고 누군가는 상처받고 갈등한다.   

누구나 각자의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꺼져가는 부모의 생명을 두고 잘하고 못하고의 경중을 따지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소모전에 불과하다.

나는 이번에도 최대한 담담하게 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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