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마지막 간병일기 2

아픈 엄마를 방보다 거실에 모시는 이유

지금까지 기회 되는 대로 엄마를 내 집으로 모셨다.

아무리 나이 많은 장모에게도 사위는 여전히 백년손님이라는 의식이 강한 분이다. 사위가 80을 바라보는, 같이 늙어가다 보니 사위들 집은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막내이고 배우자인 사위는 당신 아들 나인 데다 새벽에 나가고 한밤중에나 들어오니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설사 마주친다 해도 잠시 뿐이고 살갑게 대하니 다른 사위들보다 조금 편해하셨다. 부모님을 다 여읜 탓인지 막내사위는 장모의 방문을 전혀 부담스러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장서 간 어려움이 없이 살가워 나보다 더 자상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에게 일이 생길 때마다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이유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행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돕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거실 소파에도 눕는 법이 없던 엄마가 거실에 자리를 펴드려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잠이 아주 많아졌다. 기력이 쇠해지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집에 오시면 늘 화장실이 가까운 막내 손녀의 방에 잠자리를 봐드렸다. 햇살 잘 들어 환하고 아늑한 방에 잠자리를 봐드리면 대부분 시간 그 방에서 주무셨다. 심심할 때나 식사 때 나와 거실에서 잠깐씩 있다 힘들면 다시 들어가 눕곤 했다.

엄마를 모셔와 이번엔 아예 거실에 잠자리를 봐드렸다.

“사위 보기 민망하지 않나?”

한마디 하시기야 했지만 그건 어쩐지 예의상 한 번 해보는 말처럼 들렸다.

예전보다 더 잠이 많아져 식사 때나 누가 왔을 때 외엔 거의 주무셨지만 더 이상 좁은 방에서 지내게 하기 싫었다. 엄마가 잠깐씩 깨어 있을 때 식구들이 눈에 띄게 하고 눈이 마주칠 대마다 한 마디씩 주고받아 덜 외롭게 하고 싶었다.

엄마를 보러 고향에 가면 마음에 걸리던 게 있었다.

안방의 창이 동쪽으로 나 있다. 오후에는 방이 좀 어두운 편인데 엄마는 낮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주무시고 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마치 외롭게 버려진 독거노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 깨우면 금방 알아보지도 못하고 ‘누구여?’ 하고 물어보신다. 그리곤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들 내외와 살고 있지만 엄마는 사실 혼자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직 일을 해야 하는 아들 내외는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저녁에나 들어온다. 얼굴 잠깐 보면 각자의 일상을 살아야 하고 엄마는 또 오롯이 혼자일 수밖에 없다.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로 마을에는 전부 노인들  뿐이고 그중 몇 명은 요양원에 모셔졌다. 고향 마을에서 최고령인 엄마가 어울릴 수 있는 노인이 없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마을 회관에 모여 점심을 먹곤 하지만 그마저 매일 가기는 힘들고 어쩌다 한 번씩 가는 모양이었다. 엄마 입에서 언젠가부터 외롭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그렇게 외로웠던 분이신데 내 집에서까지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거실은 우리 가족에게도 만남의 장소다.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여느 때처럼 그때마다 엄마를 깨워 참여시켰다. 몸은 비록 망가져 치유가 힘든 지경이 됐지만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고 음성도 나쁘지 않다.

막내딸 가족과 엄마 인생의 마지막 추억을 쌓기 위해 거실만한 공간이 없겠다는 생각 들었다. 24시간 이부자리가 깔려있어 어수선하지만 눈 질끈 감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일이다.    

엄마가 내 집에 계시는 동안 다른 자손들이 여럿 다녀갔다. 그때마다 방에서 힘들게 나올 필요 없고 그 자리에 누운 채 두루 살필 수 있으니 서로 좋다.  

덤으로 우리 집에는 하얀색 고양이 뜬금이 가 있다. 뜬금이는 낯을 많이 가리지 않는 소위 말하는 개냥이다. 그런 뜬금이가 할머니 자리에 동침을 하고 손길 닿아 쓰다듬을 때마다 골골 송을 부른다. 보기 드문 평화로운 그림이다. 손녀들은 되도록 일찍 귀가해 말벗이 돼드린다. 할머니의 사투리를 따라 하고 수준에 맞춰 대화하는 것도 제법 자연스럽고 능숙하다. 거실로 자리하나 마련했을 뿐인데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외로운 노인들, 외로움이 병을 더 키운 건 아닐까?             



이전 02화 마지막 간병일기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