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log 10시간전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 병과 싸우는 게 거짓말처럼 수월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내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보다 더 큰 오만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고 제일 불행하고, 제일 아프다는 생각에 둘러싸여 웅크리고 있는 게 쉽고 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대개의 경우 주관적인 인상에 불과하다.     

-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 中




가끔 연예인들의 투병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허지웅님의 경우도 그랬다.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의 패널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날렵한 인상과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제목의 책은 발간 후 얼마 안돼 한번 읽었고, 재작년 젊은 암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스쿨 오브 히어로즈>독서 모임을 통해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암'이라는 공감대를 가진 동기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니 처음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작가 허지웅이 '투병'이라는 큰 시련 이후 인생에 대해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시각을 가지고 쓴 에세이로, "오늘도 버티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라는 문구가 유난히 시선을 끌어당겼다. 삶에 대한 해석은 더 예리해지고, 사람을 향한 애정은 더 깊어졌다는 허지웅 작가의 책.


TV 속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삐딱하고 반항적이었다. 왠지 세상에 불만이 많을 것 같았고 염세와 회의적인 면모도 있을 것 같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턱선,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는 직설적인 화법이 그에 대한 편견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어디까지나 편견이었다. 암을 겪기 전에 쓴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이라는 책에서도 그의 글은 똑 부러지는 동시에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각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살고 싶다는 농담>을 통해서 그의 인간미가 폭발하는 느낌이랄까.


슬픈 현실로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불행이란 설국열차 머리칸의 악당들이 아니라 열차 밖에 늘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과 불행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로 곁에 있기 때문에 함께 가야 하는 것들이다. 나의 인생에 꽃길만 있고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태도가 필요한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필사 노트에 담은 글들 중 가장 좋았던 문구는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라는 구절이다. 사실 삶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부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로 결정한 것은 '기필코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죽이기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살이 쭉쭉 빠지는 항암 치료의 고통 속에서. 언제 이 재발되고 전이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병과 싸우는 게 거짓말처럼 수월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다는 작가의 말. 그 이유는 그가 진정 스스로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삶의 어떠한 극한 순간이 와도 우리는 '희망'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노트에 적은 또 다른 문장 처럼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사느냐 즉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희망을 바라보고 살지, 절망 속에서 살지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이 세상에 기적은 없다고 생각하며 삶을 살 수도 있고, 매일매일이 기적인 것처럼 감사하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고를 수는 없지만, 그 일이 닥쳤을 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허지웅님은 이 책 발간 후 '허지웅답기'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했다. 음성 사서함에 모인 사연을 읽고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하면 고민 상담소 같은 형식이었다.

'누군가와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싶은 이들에게,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사는 그만의 깊이 있는 조언을 선사한다.'라는 소개글이 눈에 띄었다.

나도 채널을 구독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던 기억이 있다. 암이라는 시련을 겪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건네는 그의 위로가 진심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혈액암 말기로 투병 중인 환자의 병실에도 찾아가고, 독자들 보내온 사연에 함께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선한 영향력이 느껴졌다.


일반인들도 물론 그렇지만 연예인들의 암 투병과 완치 소식은 조금 더 나를 고무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식이요법과 자연치유로 난소암 3기를 이겨낸 가수 양희은, 우렁찬 목소리만큼 씩씩한 모습으로 희귀암과 싸운 YB의 보컬 윤도현, 짧으면 6개월이라는 의사에 말에도 굴하지 않고 비인두암을 이겨낸 배우 김우빈까지. 안타깝게 하늘의 별이 된 분도 있지만 건강을 되찾고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도 많다.


나도 나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좋고 나쁨 없이 이렇게 유지하면서 무탈하게 사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모든 게 불안할 때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삶의 어떤 순간이 와도 살기로 결정하는 것, 희망에 무게를 두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부디 그 바람대로 살 수 있기를. '살고 싶다'는 말이 실없는 농담이 아니라 온전한 현실로 이루어지기도한다.


모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