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 폭삭 속았수다!

어떤 하루 / 제인 케니언

by 윤슬log


어떤 하루
- 제인 케니언

건강한 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탐스러운 복숭아를 먹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개를 데리고 자작나무 숲으로 올라갔다
아침 내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들며
오늘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는
그러지 못하게 되리라는 걸




나의 가장 확실한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는 '서점 가기'였다. 슬플 땐 언제나 책방으로 달려가 책 속에 파묻혔다. 눈물을 닦으면서 서점 문을 들어선 적도 있고, 바닥까지 드러누운 감정을 겨우 추스른 후에도 찾아간 곳은 광화문이나 종로의 대형 문고였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거짓말처럼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곤 했다.


제인 케니언의 이 시도 그렇게 만난 글이다. 병원에서 무언가 심란한 이야기를 듣고 차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린 후였다. 서가에 들어가 가장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을 때, 막연하게 아무 페이지나 펼쳤는데 이 글이 보였다.


'건강한 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 (중략)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는

그러지 못하게 되리라는 걸.'


시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일상의 소소한 생활들이 열거되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라는 문장이 반복된다. 지금이 내 인생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울다가 서점으로 달려오는 이런 시간마저도 누릴 수 없는 때가 결국 올 거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젠장."

욕이 튀어나왔다.

'더 나빠지지 않은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하라는 거야 뭐야.'

입술을 삐죽대며 퉁퉁거렸지만 그래도 사지육신 멀쩡한 몸으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마법의 고민해결 책'처럼 나는 이 책을 소중히 품에 안고 유유히 서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작은 일에 불평하고, 별것 아닌 일로 짜증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쳐 이 시를 찾아본다.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생각의 전환이 되는 데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바야흐로 벚꽃 하르르한 봄이다.


세찬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심술을 부리면 연분홍 벚꽃잎들이 내려와 거리에 포실한 융단을 만들었다. 만개한 꽃들의 마지막은 때로는 처연하고, 때로는 예쁘지 않을 법도 한데, 유명한 노래의 제목 때문인지 이 꽃은 지는 순간까지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앞다투어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년 전 나는 찬란한 슬픔의 봄 그 한가운데 있었다. 만 스무 살. 처음 암 진단을 받고 학기 중에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겨울 방학 이후 휴학계를 제출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제 특유의 시큰하고 알싸한 냄새가 싫어 나는 늘 코 밑에 향수를 찍어 바르고 주사실에 들어갔다. 병원 복도에서 함께 차례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환자 이름이 호명되고 내가 일어서면

"오미. 엄마가 아니라 딸이네. 딸이 아픈갑네."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확성기처럼 크게도 들렸다.

쭈그러지면 진짜 내 인생 모조리 쭈그리가 될 것 같아서 병원 갈 때면 화장도 더 화사하게, 옷도 더 쨍한 색깔로 골라 입었다. 한창 꾸밀 나이어서 미(美)적인 욕심을 포기 못해서였는지, 아직 살만해서였는지는 몰라도 환자티는 죽어도 내기 싫었다.


이렇게 6번의 항암치료가 있었고 그해 나의 봄과 여름은 흔적 없이 지나갔다. 주사실을 나와 우연히 뒤를 돌아봤을 때 방금까지 내가 있다 나온 치료실의 풍경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픈 환자들 뒤로 만개한 봄꽃이 커다란 창문 가득 액자처럼 걸려있었다. 들어갈 때는 미처 몰랐던 광경이었다. 두렵고 초조한 마음에 오늘 내가 앉을 베드만 바라보고 있어서 그랬나보다.

마스크를 낀 사람, 혈관이 안 잡혀서 몇 번씩 주사 바늘을 찌르고 있는 사람, 평화로운 모습으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사람, 검은 비닐봉지를 옆에 끼고 괴로워하는 사람...

다 다르지만 모두 어느 날의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벚꽃, 목련, 개나리, 이름 모를 하얀 꽃까지 총천연색 봄꽃다발이 만연해 있었다. 예쁜데 슬펐다. 아름다워서 더 서글펐다. 하얗고 노랗고 연둣빛을 내는 생명들이 자꾸만 눈을 찔렀다.

깜-빡. 깜-빡.

천천히 몇 번 눈을 감았다 뜨니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 여기 누운 모든 사람들이 부디 다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년 봄에는 병원이 아닌 각자가 원하는 곳에서 꽃을 볼 수 있길. 온전히 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대학만 졸업하게 해 달라고' 빌었던 엄마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나는 무사히 학교를 마쳤고, 몇 번의 재발과 또 다른 암을 겪었지만 감사하게도 2025년의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마흔이 되었다. 갑자기 만 나이가 도입돼서 아직 서른아홉이라는 게 다소간에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엄연히 마흔이라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빨리 나이 들고 싶었다.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고, 빨리 마흔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다 보면 오십도, 육십도 금세 올 것 같았다. 혼자만 아는 묘한 흐뭇함을 느끼며 '내 인생 마흔부터'를 외쳤다.

세월이 빨리 흘렀으면 했던 이유는 척하면 척 하늘의 뜻을 알고 싶다거나 (지천명 知天命), 순한 귀(이순 耳順)가 탐나서도 아니었다. 그냥 아파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고 싶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두런두런 안부를 주고받으며 평범하게 건강 걱정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질곡의 이십 년을 보냈지만 나는 아직도 (고작) 마흔 살이다. 살아온 날만큼 더 살아도 요즘 대한민국 평균 수명에 미치지 못하는데, 남은 사십여 년은 조금 순탄했으면 좋겠다. 평생 아플 거 쌩쌩할 때 다 아팠으니 이제 그만 건강 걱정, 목숨 걱정은 하지 않고 편히 살고 싶다.


젊은 날 청춘들이 하는 모든 걱정과 더불어 죽음 경계에 서 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때로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부분들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죽을 것처럼 아팠던 날들도, 속상하고 서러워 눈물짓던 날들도 살면 살아졌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만 않으면 그렇게 더디 흐르던 시간도 흘러갔고, 끝없는 나락 속에서도 바닥을 치고 다시 뛰어오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완치를 기다리고 있다.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 수도 없고 물 위를 걸을 수도 없다. 기적 같은 일은 없었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게 기적이었다.

질곡의 세월을 건너며 '마음의 평화'를 목숨처럼 지키고 싶었던 나지만 여전히 층간 소음에 분노하고, 난폭 운전에 육두문자를 날리는 롤러코스터 인생이다.

별 거 아닌 날들이, 그저 그런 날들이 이렇게 조금씩만 더 이어지기를.


"소중한 이가 아침에 나갔던 문으로 매일 돌아오는 것.
그건 매일의 기적이었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 속 이 대사처럼

나는 앞으로도 아주 작고 소소한 기적들을 이루며 살아갈 것이다.



"내 인생, 폭삭 속았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