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리 복사꽃 마을에 꽃이 피면
전에 살던 속초에서 매년 빠짐없이 참석했던 축제가 있었다. 바로 주문진읍 장덕리 마을에서 열리는 <장덕리 복사꽃 축제>이다.
속초에서 유명한 <실향민 문화제>나 <설악문화제>도 이런저런 이유로 매년 보지는 못했었는데, 유난히 장덕리 복사꽃과는 인연이 많았다.
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반영되기도 했고, 시골 정취가 물씬 나는 장덕리의 매력에 반해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복사꽃 마을로 향했다.
장덕리 복사꽃 축제
<장덕리 복사꽃 축제는>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 2리에서 매년 4월에 열리던 복사꽃축제이다.
- 개최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2리 복사꽃마을
- 축제 내용: 시립 교향악단 연주, 추억 사진 찍기, 묘목 나눠주기, 복숭아 캐릭터 만들기 등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장덕리는 예부터 복사꽃으로 유명한 마을로 전체 주민의 80%가 복숭아 재배를 하고 있다고 한다. 2001년 복사꽃이 만개할 때 마을 회관에서 마을 잔치를 겸한 복사꽃축제를 처음으로 열었고, 2004년 태풍 루사와 매미 때 전국에서 수해 복구를 위해 찾아 준 자원 봉사자들에게 복사꽃이 가득 핀 장덕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과, 축제를 통한 마을의 소득 증대 차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한 것이 <장덕리 복사꽃축제>의 시작이었다.
2006년에는 한국 관광 공사와 농업 협동조합이 진행하는 외국인 팜스테이 마을로 선정되었으며 그 이후 매년 축제 기간 중 만 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마을을 찾곤 했었다.
주문진으로 이사 온 후 나는 4월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장덕리 복사꽃축제>를 알리는 소식이 들리면 찾아가 보기 위해서였다. 바로 집 근처라 허구한 날 가서 복사꽃의 매력에 퐁당 빠져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벚꽃이 한창이던 4월 중순이 되어도 복사꽃 축제에 대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2019년이 가장 최근에 열린 축제였고, 한동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중단됐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코로나 이후 다시 축제를 열려고 했지만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로 재개가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영동지방에서 열리는 유일한 복사꽃 축제인 <장덕리 복사꽃축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유가 너무도 타당해서 금방 수긍이 되었다.
'축제는 없어졌어도 복사꽃은 그대로지 않을까?'
작은 기대감을 안고 어느 주말 남편과 함께 장덕리로 향했다.
장덕리 복사꽃 마을로 들어가는 신리천 주위로 줄지어 늘어선 붉은색 복사꽃이 눈에 들어왔다. 장미, 진달래, 철쭉의 색과는 또 다른 빨강이었다. '하늘 아래 똑같은 레드는 없다'는 말은 꽃에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기억에 있는 곳이라 신리천을 따라 점점 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묻어두었던 장덕리 복사꽃 마을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축제 기간 중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공터에는 작물 재배가 한창이었고, 홍보용 현수막이나 프로그램 부스들이 있었던 곳도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에 왔을 땐 마을 주민들이 나와 복숭아, 복숭아잼, 복숭아 병조림 등을 판매하던 좌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축제가 열리지 않으니 따로 물건을 구매하지는 못했다.
한적하게 피어있는 복사꽃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지나가는 이도, 다니는 차량도 별로 없었다.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예전에 방문했었던 기억을 더듬어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마을을 돌아보았다. 창문 너머로만 바라보다 가기에는 왜인지 아쉬웠다. 농기계로 밭을 일구고 있는 어르신이 보였다. 시골인데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마을 뒤 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려왔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라는 길재의 시구가 생각났다. 망국의 한은 아니지만 자연은 영원한데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 인생무상의 정서가 몸으로 느껴졌다.
산도, 물도, 복사꽃도 제자리였다. 다만 한 가지 복사꽃 향기를 따라 벌처럼 모여들던 사람들과 그 축제를 준비하던 북적이는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카페에 들어가 복사꽃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차 한잔을 마셨고,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장덕리 은행나무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강릉 장덕리 은행나무
장덕리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8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26m, 둘레가 10m에 이르는 큰 나무로, 지상 2.5m 부근에서 8개의 큰 가지로 갈라져 부챗살처럼 퍼져 장대한 수관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이다.
장덕리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열매를 맺지 않는데,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 나무에 열매가 대단히 많이 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은행이 익어 떨어진 열매가 고약한 냄새를 풍기자,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한 노승이 나무줄기에 부적을 써서 붙였더니, 그때부터 이 나무는 은행이 열리지 않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중 오래 사는 나무는 대개가 암나무인데, 장덕리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장수하고 있어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다.
보통 이렇게 큰 나무들이 열매를 많이 맺는 암나무인데 반해 장덕리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장수하고 있어 가치가 높다고 했다.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마을 입구에서 수호신처럼 우뚝 서 있다. 초록잎을 틔우기 시작한 지금도 이렇게 늠름한 모습인데, 가을의 절정에서 황금빛으로 물들어 갈 모습은 또 얼마나 수려할지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장덕리 복사꽃 마을에서 조용히 길을 걷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여보, 복사꽃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하는 노래에서 그 복숭아꽃이에요?"
"네. 그 노래에 나오는 복숭아꽃 맞아요. 저도 전에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걸으며 다정하게 노래를 불렀다.
기대했던 장덕리 복사꽃 기행은 여행의 목적에 충실하게 풍성한 복사꽃과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가득 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축제가 더 이상 열리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복사꽃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큰 위안이 되었다.
봐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올해도 꽃을 피운 복사꽃. 오가는 이 덜해도 아기 엉덩이처럼 탐스러운 열매를 틔워 낼 복사꽃. 한 여름 더위를 달래주는 달짝지근한 복숭아처럼, 부르기만 해도 달콤한 추억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