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이나 보다. 어느 날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우유 모형을 갖고 와서는
"엄마 우유 열어줘." 이런다. 아무 생각 없던 나는
"이걸 어떻게 열어? 이거 플라스틱이잖아. 열 수 없어."라고 했다. 그러자 31개월 아이는
"엄마 열 수 있잖아. 열어줘" 이런다.
순간 아차 싶다.
'그렇지. 아이들은 여는 시늉만 해줘도 되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이가 내민 플라스틱 우유를 붙들었다. 그리고 뚜껑 여는 부분에 두 손을 갖다 대고 바깥쪽으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열었다."라는 말을 하며 아이에게 우유를 건넸다. 그러자 아이는 활짝 웃으며 우유를 받더니 입에 가져가고 목을 뒤로 꺾으며 먹는 시늉을 한다.
'그렇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는 토끼인형을 데려오더니 말한다.
"엄마, 토끼가 똥 쌌어."
"그래?"
"엄마가 토끼한테 똥 많이 쌌는지 조금 쌌는지 물어봐"라며 나에게 토끼 인형을 들이댄다. 나는 토끼 인형을 손에 쥐고 얼굴을 갖다 댄 후
"토끼야 똥 많이 쌌어 조금 쌌어?"라고 하며
"응 많이 쌌대."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그래? 많이 쌌대?"그런다.
"응. 하은이가 기저귀 갈아줘."라고 말하며 토끼를 주니 소파 앞 놀이매트 있는 곳에 데리고 가서 눕힌다.
"엄마. 장갑 줘"
하은이가 말하는 장갑은 위생비닐장갑이다. 어린이집에서 기저귀 갈 때 위생비닐장갑을 사용하나 보다. 위생장갑을 갖다 주니 양손에 끼고는 기저귀 가는 시늉을 한다.
아이는 다시 나에게 와서
"엄마. 마트 가서 사탕 사자" 이런다.
"마트? 마트는 지금 못 가. 어린이집 끝나고 가자."라고 하니 어느 쪽을 가리키며
"저기 마트 있잖아. 지금 가면 되지" 그런다.
"아. 저기 있었구나."
아이와 대화할 때는 어른 모드를 끄고 아이 모드를 켜야 함을 느낀다. 하지만 내 생각 모드는 깜박깜박 성능이 좋지 않다. 아이에게 매번 혼나니 말이다. 몇 살까지 아이 모드를 켜야 하는 걸까?
주변에 들어보니 초등학생 1학년도 아이 모드였다. 아이를 처음 키워보니 알 수가 없다.
우리 아이는 언제까지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