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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Mar 05. 2024

살 만한 세상, 살고 싶은 세상

마흔, 그대 16. 암브로조 로렌체티 <선정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

  선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메시지와 카톡은 쏟아지는 문자로 눈 디딜 틈이 없습니다. 핸드폰은 밤낮으로 연신 '어서 받으라' 몸을 떱니다. '국민을 위해서', '시민이 원해서', '오로지 민중만 바라보고' 기타 등등의 말들이 아우성칩니다. 부탁한 적 없는 제 의견과 말을 굳이 대신 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사회 구석구석 느껴집니다. 후보들의 공약이 담긴 포스터를 합치면 선거일, 이 땅에 천국이 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염증이 나지요?


  제 책상 위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 예를 들면 염치에 대한 뻔뻔함, 유용과 무용을 나누는 인맥, 자기 보호를 위한 경극 수준의 가면, 계산기보다 정확한 손익의 원근법 등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습니다.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울컥해 책상을 밀어버립니다. 그리고 화집을 찾아 암브로조 로렌체티(Ambrogio Lorenzetti, 1290–1348)의 <선정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 1338~1339>를 펴 봅니다. 그곳엔 살고 싶은 도시가 있습니다. 


  도시(都市)란 시민의 집단 거주로 인간의 정치·경제·사회적인 활동의 중심이 되는 장소입니다. 행정기관이 있고 경제의 중심지이며 교통로가 집중됩니다. 사통팔달 열려있기에 필연적으로 '내 안과 바깥'을 보게 되고 '다양한 우리'와 소통하게 되는 장소지요. 그래서 어제를 재료로 내일을 만드는 도시민들은 자신의 터전에 사회가 키우고 배양한 문화를 초대합니다. 문화는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자 시대의 대변인입니다.



시에나 푸볼리코 궁정 내 작품


  

  르네상스의 입구인 뜨레첸토(Trecento, 14세기) 시기는 자본의 세례를 받은 시민문화가 융성했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려는 자연주의가 대세였습니다. 1338년, 도시국가 시에나는 팔라초 퍼블릭코(Palazzo pubblico, 일종의 시청) 회의실에 걸릴 작품을 로렌체티에게 의뢰합니다. 로렌체티는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에 대한 우화적 묘사'라는 내용으로 6개의 다른 장면을 구성합니다.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비유, 1338~1339>입니다. 그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 작품은 '도시 전망화'라는 새로운 이름을 탄생하게 했습니다. 


  배경으로서의 '풍경'은 그려졌지만 '풍경화'는 발견되지 않은 시기에 로렌체티는 작지만 강했던 시에나를 담았습니다. 700여 년 전의 이 전망화에서 현재 시에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아마도 그는 주름과 검버섯까지 빠뜨리지 않은 정직하고 사실적인 '도시의 초상화'를 그렸나 봅니다. 또한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나쁜 정치가 무엇인지도 알려주었습니다. 예술가라기보다 철학자에 가까웠다는 로렌체티는 예술가가 도덕적 관찰자임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암브로조 로렌체티 <선정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 1338~1339>


  관광객이 거리를 지나가다 찍은 스냅 컷 세 장을 나란히 이어 놓은 것 같은 구성입니다. 인물은 약간 내려다본 시점으로, 건물은 올려다본 시점으로 그린 것으로 보아 하나도 빠짐없이 세세히 다 보여주려는 의도인 게지요. 왼쪽 위엔 돔이 있는 흑백의 종탑, 즉 두오모 주 대성당이 있습니다. 로렌체티는 뚜렷한 윤곽과 선명한 색으로 위정자가 선한 정치를 펼칠 때 나타나는 필부필녀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귀족과 시민계급의 명예로움을 우리의 눈앞에 보여줍니다.


  백마를 타고 시종을 거느리고 거리에 나선 귀부인의 목과 어깨와 허리가 꼿꼿합니다. 아담한 왕관의 무게 정도는 능히 견디겠습니다. 그 옆으론 열 명가량의 춤추는 댄서들이 있습니다. 댄서들의 옷이 잠자리 날개입니다. 보드랍고 하늘거리기가 현대판 시스루입니다. 당시 시에나 거리에서 춤을 추는 것은 불법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리스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시에나에 도착한 뮤즈들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댄서들이 누구인지 설왕설래하고 있으니까요. 예술을 상징하는 뮤즈를 은유했다고도 하고, 당대의 풍요로움을 나타낸다고도 하고, 금성의 자녀들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라고도 합니다.


  먼 곳에서 막 도착한 나그네는 신발가게에서 신발을 삽니다. 그 옆엔 작은 교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근엄하지만 어디에나 있듯 벽 뒤, 졸고 있는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단지를 앞에 둔 상인은 3년 뒤 분명 라틴어를 할 수 있겠지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듯 시에나에서도 학교 옆 삼 년이면 라틴어를 배우지 않겠어요. 집중해 직물을 짜는 여인의 노동은 고되지 않고 바구니를 인 여인도, 짐을 잔뜩 실은 거리의 나귀들도 무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비계를 세운 건물에는 토목 공사가 한창이고 징수원은 오가는 산물을 기록하기 바쁩니다. 생동하는 활력과 부산한 움직임이 출렁거립니다. 시에나에 고정된 것, 정체된 것,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작품의 제목을 보겠습니다. <선정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선한 정치를 하면 이렇듯 도시에 활력이 넘치고 번영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럼 선한 정치,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요.



암브로조 로렌체티 <좋은 정부의 우화, 1338~1339>

  

  르네상스 시기의 자본주의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영리(營利)를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리 추구'안에는 '자본이 갖추어야 할 미덕'이 있었습니다. '근면', '절약', '정직', '공리', '정의' 같은 것이었지요. 결과뿐만 아니라 그 자본이 생성되는 과정에 대한 종교적 윤리가 들어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존경할 만한 인격이란 능력 못지않게 '신용'과 '자비'가 할당된 넓고 깊은 그릇이었습니다. 시에나를 움직이는 9명의 위원들은 몽골제국과의 향신료, 비단 교역 등을 통해 부를 이룬 현대판 백만장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에나를 '지상에 세운 임시 천국'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시청과 공공 기관, 교육시설, 대성당 등이 건립되었고 건립 기부금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룬 부가 '애국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로렌체티는 그 '부'가 '금권정치'나 '독재'로 흐르지 않도록 그림에 위대한 서사와 알레고리를 입혔습니다.


  왼쪽 붉은 옷의 여인은 정의의 여신입니다. 로렌체티는 독창적인 도상학으로 그녀의 머리에 저울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양 쪽 저울 중 왼쪽엔 형벌로, 오른쪽엔 보상으로 정의를 분배합니다. 여신의 머리 위에 책을 든 지혜의 영(靈이 상과 벌의 균형을 맞추며 이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녀 발치엔 덕(德)을 형상화한 흰옷의 여인이 저울로부터 이어진 긴 밧줄을 시에나 시민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을 따라가 봅시다.


  화면 오른쪽에 시에나의 색인 흑백 문장의 발자나(Balzana)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 보입니다. 시에나 도시국가를 상징하는 의회의 화신입니다. 그는 통치권을 상징하는 구체와 홀을 들고 있습니다. 그의 왕관을 둘러싸고 "Commune Saenorum Civitatis Virginis"를 의미하는 네 글자 "CSCV"가 새겨져 있습니다. 왕관 위에는 '신앙', '자선', '희망'의 영(靈)이 날고 있고, 그의 발 아래엔 로마의 건국자인 레무스의 쌍둥이 아들인 아스키우스와 세니우스가 있습니다. 그의 왼쪽은 평화, 용기, 신중함을, 오른쪽은 관용, 절제, 정의를 상징합니다. 평화의 여신 팔 아래엔 녹슨 갑옷 더미가 있습니다. 침략과 전투가 끊이지 않던 시절, 진정한 평화는 무수한 갑옷 위에 건설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자른 머리를 무릎에 얹고 칼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발치엔 기사와 보병들이 완전무장했습니다. 트레첸토 시기의 시에나는 통치자에게 이러한 미덕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평화의 여신과 정의의 여신
정의의 여신과 지혜의 영

 

 아... 정의와 신중과 인내와 절제와 용기와 관용이 14세기의 덕목만은 아닐 테지요. 신앙과 자선과 희망이 통치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닐 테지요. 헐거운 갑옷 탓에 권력의 칼을 두려워하는 저는 착한 이는 복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가 이 땅에 유효하기를 바랍니다. 얇은 지갑을 열며 늘 밥을 걱정하는 저는 신발도 사고, 고기도 사고, 춤도 추고, 나들이도 가는 삶의 윤기가 이 땅에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내 안에 숨 쉬는 텍스트들과 그림들을 오래도록 황홀히 누리고 싶습니다. 


  또다시 전화가 울립니다. 십중팔구는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하나 설문조사일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 날카로운 지성과 섬세한 감수성, 공동선에 기초한 배려가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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