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민서 Feb 08. 2021

그의 눈에는 보였을까

누군가는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볼 수 없는 것


 끝없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스멀스멀 주위에서 맴돌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마냥 흠뻑 젖어 그 어떤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게 하는 그런 두려움이. 예전에는 새벽에 귀신 따위의 헛것을 마주하거나, 으슥한 골목길을 혼자 걸어갈 때 이런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 요즘은 이메일 예약 발송 버튼을 누를 때 이런 감정을 느낀다. 아무리 소액이라 하더라도 ‘이 돈 받고 이따위 글을 보내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내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부었음에도 최소한의 확신조차 갖지 못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번 6월에는 유독 구독자가 늘어났다. 아마 인스타그램에 지난 2, 3, 4월 연재 중 마음에 들었던 원고들을 5월에 올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아닌가, 그럼 5월 구독자가 늘었어야 했나. 아무튼 감사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지만, 구독자가 많을 때도 적을 때도 없을 때도 변함없이 늘 두려웠다. 구독자가 많아지면 ‘괜히 지인이라고 구독한 건 아닐까, 돈 아깝다고 느끼면 어떡하지, 이런 내용까지 담아내도 되는 걸까’ 따위의 근심에 시달렸다. 반대로 구독자가 적어지면 ‘혹시 내 글이 마음에 안 들었나,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글들만 올려서 그저 그런 글에 실망한 건 아닐까’하는 걱정만 계속했다. 아예 구독자가 없을 때는 (결제창이 늘 열려있다 보니 중간에 수신자가 아예 없는 글을 쓰는 날도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인데, 시간과 노력, 자원을 한 번에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니 두려움은 내 곁에서 떠나갈 날이 없었고,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던 두려움은 어느새 우울함으로 진화했다. 나보다 몇 배는 더 커져 버린 우울함 앞에 나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항복 선언을 하며 그의 산하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그의 품은 따뜻했다. 저주하고 탓할 상대는 오로지 나밖에 없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글이 안 써지면 내가 덜 노력했으니까, 소재는 있는데 그지 같은 글이 나 오면 내 능력이 부족하니까, 다른 외주나 업무, 학업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 남들 다 하는데 혼자 못하는 내 잘못이니까, 육체적 피로에 짓눌려 제때 일어나지 못하면 내가 너무 안일하게 굴었으니까. 뭐든지 내 탓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우울함에 귀속된 나는 나를 갉아먹었고 결국 나는 사랑해주기는커녕 한없이 후들겨 패버리는 멍청이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이론은 알아도 적용은 못 한다. 인간이, 아니 나란 인간이 이렇다.






 애초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글에는 자신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더 좋은 책, 더 뛰어난 글을 많이 읽어야 좀 더 영양가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읽고 싶은 책은 이미 사놨고, 심지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위치에 놓여있지만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에 속만 타들어 간다. 하나만 깊게 파지 않고 너무 다양한 영역을 건드리고 다닌 탓일까, 그나마 붙들고 있던 인문학 지식조차 희미해져 가는 것 같다. 아니면 글이나 책과는 너무 상충하는 개념에 빠져든 탓일까, 하지만 어떻게라도 탄탄하게 입지를 다져놓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걸 어떡해. 모름지기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그런데 정말 무엇 하나에 온전히 집중한다면 확실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내 능력 및 자질 부족을 입증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그 사실을 내가 받아들이게 된다면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이런 날에는 초등학생 시절 이름 모를 산골에서 마주했던 개구리 알과 작은 올챙이가 생각난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장애인 친구를 보호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곤 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꽤 오래 지니고 살았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당시 담임 선생님의 원인 모를 신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당시 학교에서는 나와 같은 역할을 도맡던 다른 친구들과 장애인 친구들을 1:1로 짝을 지어 종종 특별 체험활동을 나가곤 했다. 버스를 타고 꽤 오래 이동했던 이름 모를 산골 속에는 맑은 개울이 있었는데, 물이 정말 맑고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발을 담그고 있던 그때, 커다란 돌 구석에 자리 잡은 개구리알 무리와 몇몇 올챙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 나이에 올챙이에게 인간의 체온은 화상을 입힐 온도와 같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올챙이를 손바닥에 올렸다. 딱 올챙이 크기와 같은 정도의 맥박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손목 끝부분에 자리 잡은 얇은 정맥 덩어리만 한 가냘픈 숨소리가 내 손 위에 놓여 있었다. 올챙이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그의 맥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나는 그의 맥박과 나의 맥박이 일치하는 시점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저 올챙이를 관찰하고 있던 나와 달리, 내 짝이었던 친구는 ‘지현아, 그러면 안 돼. 올챙이한테 나쁜 일이야’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내 손에서 올챙이를 빼앗아 다시 개울 속에 넣어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보다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충분히 많다는 것을, 내게 누군가를 ‘부족하다’라고 판단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갓 태어난 올챙이가 내 쓸모없는 호기심에 속박되어 있을 때, 그 친구의 눈에는 사그라져가는 하나의 생명으로 비췄던 모양이다. 내가 갓 태어난 우울함에 속박되어 있을 때, 그 친구는 사그라져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친구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너는 무얼 하며 살아가고 싶냐고,  앞에 놓인 수만 가지 선택지  어떤 것을 선택할 거냐고. 지금의 나는 괜찮아 보이냐고.  친구는 아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을 내놓을 테지. 지능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선함 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충분했던 사람이니까. 사실,  친구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지나치듯 말하던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어디에 있든  친구는 분명  지내고 있을 테다. 어디서든 선한 것들은 저만의 아름다운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까.




같은 눈으로 같은 곳을 보더라도 느끼는 게 다른 것, 그게 사람이지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했던 6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 다른 원고나 서평을 읽어보시고 싶은 분들은 다붓한 공간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 브런치에 올리는 모든 이미지는 직접 구매하여 라이선스를 부여받은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