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한 그릇

by 박 혜리


식용유에 춘장을 볶다가 볶은 춘장과 분리한 기름에 밑간 한 돼지고기를 볶고 고기가 익으면 양파 등 잘게 썬 각종 야채를 넣고 함께 볶은 후 춘장을 넣고 보글보글 끓으면 녹말물로 농도를 맞추는 짜장면은 중학교 졸업식 때 엄마가 준 용돈으로 처음 사 먹었는데 신세계는 아니었지만 도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며 그것은 내게 신선하였다.


오래전, 나는 볼일을 보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공원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놀고 있는 한 아이와 마주쳤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 아이는 머리카락 한올 없는 민머리였는데 평일인데도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가 나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창백한 얼굴로 그네를 흔드는 아이에게 다가가 무심하게 "학교를 왜 안 갔니" 하고 나는 물었다.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라며 아이는 기운 없이 대답을 하였는데 나중에 나는 아이가 백혈병을 앓으며 치료 중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고통을 나누려는 듯 머리를 민 젊은 아빠를 볼 때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사를 온 이후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부자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아이의 생사를 알 수가 없지만 학교를 왜 가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머뭇거리며 답을 하던 또래보다 조숙하지만 어린아이에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폐업을 한다거나 큰 질병을 얻게 되면 우리는 생활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곡절 또한 겪게 된다. 친척이 사업이 실패하였다고 친구가 말하였을 때 빚쟁이가 된 집으로 사람이 찾아오면 주윗사람이 등을 돌리고 마음 편하게 하루도 지내지 못하며 많이 힘들겠구나 하면서 공감이 되었는데 질병 역시 가려먹어야 하는 음식의 종류가 늘어나고 평생을 투병하며 외로움과 마주하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내게 처음으로 질병이 찾아왔을 때 주윗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구나 하고 실감을 하였다. 예측하지 못한 질병으로 건강한 마음과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함께 응원하였지만 열등감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문을 닫으며 멀어져 갔는데 몸이 아프거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말하고 위로를 건네야 하는지 공원에서 아이를 마주친 이후로 나는 고민을 하였다.


가성비를 따지며 음식을 만들거나 외식을 한 이전과 다르게 질병을 얻고부터는 처음 운전대를 잡은 초보운전자처럼 건강에 이롭거나 해로운 것을 구분하며 나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집에서 음식을 하는 시간이 늘면서 친정과 시댁에서도 먹어보지 않은 야채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알게 알게 되었는데 봄에는 두릅과 머위나물 같은 영양가 높은 채소와 사계절 나오는 토마토와 브로콜리로 다양하고 손쉬운 요리를 편하게 시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먹지 마라 하면 더 먹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식구들이 가끔 라면을 끓여 먹을 때면 한 젓가락씩 맛을 보았는데 미각을 온전히 채우지 못한 그 맛에 빠져들며 잠깐 행복감에 젖곤 하였다. 질병을 얻기 전에도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기운이 없을 때면 육을 하여 기름기를 뺀 살코기를 가끔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하였다. 기름에 튀기거나 면 특히 기름과 고기가 많이 들어가는 짜장면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는데 중국식 레스토랑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 메뉴를 고를 때면 나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내게 칭찬을 하는 의미로 몇 달에 한번 짜장면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음에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최근에는 길을 걷거나 명상을 할 때 가끔 혼자서 소망을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병을 얻어서야 나는 걸음을 멈추며 지난 삶을 돌아보았는데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나는 요즘 하나님께 투정을 부리는 중이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따뜻한 햇살과 신선한 공기, 반짝이는 나뭇잎에 경이로움마저 느끼는데 예전의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집안일을 하든 뭔가를 하고 나면 자주 쉬어야 하지만 햇살 한 줌에도 웃음을 터트리게 되니 나의 질병은 감사함의 시작이자 내 삶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얼마 전에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지나가는 말로 네가 복이 있어서 병을 얻었다는 말을 하여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웬만한 일에는 이제 호들갑을 떨지 않으며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 보니 신은 특별히 나를 사랑하시고 어두움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질병을 허락하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모든 것에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좌우로 스쳐가는 풍경을 볼 수 없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비록 넘어졌지만 다시 몸을 일으키며 나는 앞으로 마라톤 경주자로서의 삶을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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