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을 즐기지 않은 나는 둘째를 낳고 나서 낯가림이 심한 아이를 겨우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망가진 몸을 추스를 겸 낮에는 한동안 수영을 배우고 그리고 틈틈이 걷기 운동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봄, 예상치 못한 질병을 얻은 나는 무너진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거의 매일 빠짐없이 걷기 시작하였다.
일찍 저녁을 먹고 난 어제저녁에 여느 때처럼 나는 산책을 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호수 위에 둥실 반달이 떠 있었는데 짧은 소매아래에 드러난 팔 위로피부를 간지럽히는 바람은 제법 선선하였다. 사위가 어둑해진 호숫가 둘레길을 걷다 보니 군데군데 은은한 조명등이 어둠을 밝혔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과 내가 마치 하나가 된 듯 워밍 하듯 천천히 내디딘 걸음이 발소리를 더할수록 척척 리듬을 탔다.
사람들이 목표를 향하여 전력을 다해 질주를 할 때 거꾸로 달리는 기차처럼 나는 걷기에 몰입하였다. 치료를 받고 나서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온 날, 먹은 것이 별로 없어 내 위장은 텅텅 비었는데 밀고 다니는 거치대 위 링거에 매단 여러 가지 약물로 인하여 피부의 주름이 펴질 만큼 내 몸은 부어올랐다. 아이를 낳을 때 며칠 머문 것 말고는 병원에 입원한 적 없었던 나는 마치 갑갑증이 든 환자처럼 매끼 식사 후에는 이불을 훌훌 걷어내며 벽과 창문사이로 난 복도를 매일 걸어 다녔는데 퇴원을 하고 나서는 약물에 취한 듯한 어지러운 머리를 들고 허리를 곧추 세우며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힘들다고 누워만 있으면 나는 영영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집 주위를 걸었다. 입퇴원을 반복한 병원생활로 근력이 약해진 몸은 힘이 없었는데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면서 다리에 힘이 생겼다. 치료중일 때는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 도로 양옆의 화단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고 치료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이후에는 아파트를 벗어난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공원 그리고 작은 동산 주위를 주로 걸었다. 매일 걷다 보니 하루도 걷지 않으면 재미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느새 나는 걷기에 중독이 되었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걸었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걷고 있었다. 걷는 길이 지겨워질 때면 미로 같은 아파트 숲 사이를 오래오래 걸었는데 가끔은 쑥갓이나 대파 그리고 고구마나 상추 등이 심어져 있는 인적이 드문 야산에서 운동기구를 돌렸으며탄력이 붙은 걷기는 등산복을 갖추어 입고 양손에 스틱을 잡으며 나는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내리며등산을 하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ted 같은 강의를 듣는 것보다 귀를 열고 바람소리, 새소리,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과 호수 위를 비추는 달빛 같은 풍경에 몸을 내맡기니 무상무념에 빠진 듯 심신이 편안해졌는데 사방이 적요한 듯 마주치는 이 없는 홀로 걷는 산행의 즐거움도 컸지만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보폭으로 함께 걷거나 혹은 달리기 하듯 뛰어가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을 걸을 때면 펄떡이는 생동감으로 내 마음마저 활기를 띠었다.
봄가을은 햇살의 기침에 깨어난 꽃들의 농염한 자태를 드러내기 전인 아침에 걷고 여름에는 노을이 하품하는 저녁에 걸었으며 겨울에는 따뜻한 햇볕 세례를 받으며 한낮에 걸었다. 꽃망울 터트리며 꽃들이 환하게 웃는 알록달록한 봄에는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걷고 물기 머금은 여름에는 연초록의 싱그러움에 빠져들며 걸었는데 가을에는 귀를 간지럽히는 청량한 바람소리와 다홍색 향연을 즐겼으며 칼바람 춤추는 겨울날에는 바람을 맞으며 솜이불 같은 햇살 속을 걸었다.
구도자가 순례를 하 듯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체한 듯 답답하던 가슴이 비워지고 공허한 마음이 채워지며 멍울졌던 서운한 마음들이 사라지며 마음또한 너그러워졌는데 습관이 된 걷기는숙면에도 도움이 되었으며 건강도 점차 회복되었다.
겨울에 찬 바람을 견딘 나무가 열매를 맺어 봄에 꽃을 피우 듯 어떤 삶이 잘 사는 것인지 내 앞에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걸을 때마다 혼자 문답풀이놀이 하 듯 나는 자문을 해 보는데 매일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희망을 가져보며 잘하고 있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스스로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