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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행복권 Oct 21. 2023

아버지 생각

중학교 때 집을 나갔었다. 학원을 빼먹고 피시방을 다니다 어머니에게 발각된 것이 이유였다. 크게 혼나기 전에 도망갔다. 피시방을 같이 다닌 친구에게 말했다. 네 책임도 있다. 그러니 나를 책임져라. 순박한 친구는 순순히 침대를 나에게 양보했다. 종일 게임을 하고 피자를 시켜먹었다. 그 친구 집에서 이틀 째 밤을 보내는데, 꿈속에서 경찰이 나를 잡았다. 경찰은 "불효죄는 무기징역"이라고 했다. 꿈에서 깬 나는 무기징역만은 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까이 갈수록 심장이 빨리 뛰었다. 어머니는 어떤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맞을 수도 있겠군. 불안감과 죄송함이 길항 작용하여 마음이 복잡했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삐이이익. 녹슨 쇠문 소리와 함께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왔어요. 어머니는 머리에 손을 얹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잔 듯 안 잔 듯 반쯤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후우"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보고 한숨 쉬었다. 안 그래도 마른 그는 며칠 새 더 말라 보였다. 나는 전날 가득 먹은 피자로 살이 올라 있었다. 그때 나는 겁먹은 한 마리의 살찐 원숭이었다. 포동포동한 자식을 보더니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는 "이제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학원도 절대 안 빼먹을 거고, 집은 더더욱 안 나갈 거예요. 


“나는 오후 당직이고 엄마는 식당에 나가야 한다. 벌은 빨래로 하자. 다하면 네 방으로 가도 좋다”

아버지는 감은 눈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순간 그의 엷은 눈물을 봤다. 나는 그 눈물을 못 본 척하려 급히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는 한 달에 한 번 쓰는 세탁기가 있었다. 당시 세탁기는 귀신보다 무서운 물세의 주범이라는 도시 괴담이 있었다. 그 괴담을 신봉하는 가정의 맏아들로서 세탁기를 쓸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나는 무기징역을 겨우 면한 불효자가 아닌가?


얼룩 같은 철없음을 지우려 둥글넓적한 대야에 물을 채웠다. 꾀죄죄한 내 얼굴이 비쳤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손빨래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 나이 특유의 허무맹랑한 상상을 펼쳤다. 이제 내 인생에 가출은 없어요. 어머니 아버지 앞으로 내 인생의 목표는 효도예요. 공부도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될래요. 무엇보다도, 세탁기를 마음껏 돌릴 수 있게 용돈도 많이 드릴게요.


비스듬히 기울여진 빨래판에는 아버지의 흰색 팬티와 러닝셔츠가 있었다. 세제를 풀고 거품을 내고 몇 번을 헹궈냈다. 그런데,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 뭐지, 이럴 리가 없는데. 손빨래를 아무리 해도, 그의 속옷에서 매캐한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세제를 아무리 넣고, 물에서 아무리 비벼대도 탄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그의 속옷을 빨다가 단발의 탄식이 터졌다. 아. 난 정말 쓰레기구나. 


속옷을 빨기 전까지 아버지는 나에게 소방관이라는 직장인이었다. 그는 '소방위'라는 계급과 '팀장'이라는 직책으로 가장 오래 일했다. 집을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그를 손 팀장으로 불렀다. 마을 주민들은 나에게 "네가 손 팀장님 아들이구나"라곤 했다. 그래서, 소방관보다는 손 팀장이란 호칭이 나에게는 더 익숙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몸보다 한 치수가 큰 양복을 입었다. 펄럭이는 양복에 선명한 색깔의 넥타이를 매고 출퇴근하는 그 모습은, 티브이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회사원의 모습과 같았다. 출퇴근 시간이 매주 바뀌는 직장에 다니는 공무원. 속옷을 빨기 전까지 내가 생각한 그의 모습이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그러니까 경찰이 내 꿈에 나타나 무기징역을 선고한 날. 그 날 아버지는 F 팀장으로서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화마와 싸웠다. 하필 그 날은 인근 지역의 소방관들까지 모두 출동해야 했던, 대형 공장에서 난 끔찍한 화재가 있었다. 내가 정체불명의 꿈속 경찰을 무서워할 때, 그는 공장에서 난 뜨거운 불길과 시커면 연기에 몇 시간을 갇혀 있었다. 방화복을 입어도 틈입하는 매캐한 연기는, 그의 흰 팬티와 러닝셔츠에 자욱하게 남았다. 


그렇게 생긴 맵고 싸한 냄새였다. 생사의 촌각을 다툰 소방관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나는 빨래를 하면서 지워지지 않는 그 냄새를 계속 맡았다. 세제를 가득 풀었는데도, 지독한 냄새가 코를 계속 찔렀다. 맑은 콧물이 났다. 아까 본 아버지의 반쯤 뜬 눈 사이, 거기에 있던 눈물이 떠올랐다. 화재 현장에서 밤을 새우며 연기를 가득 쏘인 눈이었다. 그는 화재 진압 현장을 다녀오고 나면, 입맛이 없다며 라면만 먹었었다. 아까 본 그의 푹 들어간 배와 부쩍 마른 목이 여러 화면처럼 겹쳤다. 


매캐한 냄새와 슬픔이 뒤섞여 콧물이 줄줄 흘렀다. 힝힝. 콧물을 훔치자, 이번에는 눈물이 났다. 안 들키려 울음을 참고 빨래를 벅벅 해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콧물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연기 냄새와 세제 냄새가 섞여 그나마 맡아 줄만 하였다. 아버지의 속옷을 널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눈물이 다시 나왔다. 방에 들어와 이불속에 들어갔다. 눈물이 터졌다. 밥을 먹으라며 어머니가 소리쳤다. 그 말에 또 눈물이 흘렀다. 그 날은 빨래했던 기억과 종일 울었던 기억만 있다. 


그날 이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버지의 출퇴근 시간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주일은 아버지를 볼 수 있었고, 일주일은 볼 수 없었다. 그는 2교대 근무자였다. 철야 근무를 하고, 아침에 보는 그는 잠을 잔 듯 안 잔 듯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내가 여태 본 그의 몽롱한 표정이었다. 근무를 마친 그는 늘어진 면 팬티와 러닝셔츠를 벗고, 베란다에서 찬 물로 씻으며 "어 시원하다. 어 시원하다"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바로 잠에 들었다. 주말도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참으로 피곤한 삶을 20년이나 버텼다.


'소방경'으로 진급하고 아버지 어깨에는 무궁화가 하나 더 얹어졌다. 비로소 아버지는 본청이 아닌 지역 소방서로 발령이 났다. 그제야 그를 매일 볼 수 있었다. 지역 소방서 발령을 받은 날, 우리 가족은 항구에서 포장해 온 대게를 저녁으로 먹었다. 휴가가 아닌데도 온 가족이 저녁을 함께 했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삶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때까지도 낯선 식사였다.


지역 소방서로 아버지는 9시에 출근했고 18시에 퇴근했다. 주말에는 근무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정상적인 근무였는데, 어린 시절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눈이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년까지 근무할 줄 알았지만, 그는 명예퇴직이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고민 없이 소방관을 그만두었다. 퇴직이 확정되고 나서야, 그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는 말로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어머니는 매우 황당해하며, 아버지를 추궁했다. 그 틈을 타서 나는 화장실로 갔다. 눈물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속옷을 빨던, 중학생 때의 그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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