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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조 Nov 01. 2020

시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서류 단계에서 합격하면 바로 면접을 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에 지원했다면 인적성 또는 NCS 시험 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에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되는지, 직무에 적합한 지원자인지,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닌지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단순 계산부터 도형, 수열, 언어이해, 논리 추론, 문제 해결 능력 등이 나오며 초‧중학교 시절 배웠던 수학 공식을 활용한 문제부터 수능 비문학이나 공무원 시험 수준의 문제까지 난이도는 다양하다. 경영, 경제, 법, 행정 등 대학 전공 수준의 시험을 보는 곳도 있다.


대부분 공기업 시험은 평소에 꾸준히, 사기업 시험은 서류 합격 후 벼락치기로 하라고들 한다. 특히 공기업의 경우 채용 직렬별로 대학 전공 분야의 시험을 보는 곳도 많은데, 그 범위가 꽤 넓고 전문직이나 고시 준비를 하다가 공기업 취업으로 진입하는 경쟁자들도 많기 때문에 평소 꾸준히 공부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필기시험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다음에는 운의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오답 감점이 없는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그 이유를 예로 들면 이렇다. 많은 회사의 필기시험들이 50문제를 주고 50분 안에 풀라고 하거나, 80문제를 주고 60분 안에 풀라는 식이다. 즉 한 문제를 풀 시간이 최대 1분이다. 일부 단순 계산 문제들은 20초 만에 풀 수도 있지만 2분, 3분씩 걸리는 문제들도 있다. 회사 및 출제 기관들도 이렇게 문제를 내면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결국 지원자들이 80문제 중 60문제를 풀었고 그중 맞은 개수가 비슷하다면, 남은 20문제에서 찍은 답이 많이 맞는 사람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다.


오답 감점이 없는 서류 적부 방식의 기업 필기시험들에 몇 번 응시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꾸만 3점, 4점 차이로 아쉽게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심하게는 소수점 차이로 탈락한 적도 있었다. 이때마다 ‘아, 내가 찍은 것 중에 한 문제만 더 맞았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반복되다 보니 ‘나 말고 그날 운이 좋아서 잘 찍은 사람이 시험에 합격했겠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60문제, 좀 더 양보해서 80문제에 100분 정도를 준다거나 오답 감점을 적용하는 회사라면 그래도 이해가 된다. 지원자들이 충분히 문제를 다 볼 수 있고, 풀지 못한 문제의 답을 모조리 찍어놓고도 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취업 시장에서 지원자들은 철저한 을이며, 회사의 시험 출제 방식까지 이의제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언젠가 나에게도 운이 받쳐주어 시험에 합격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꾸준히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이런저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채용 전형 중 시험 단계를 빼자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지원자의 입장에서 회사의 채용 프로세스 중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해 보이는 것이 바로 시험이기 때문이다. 보유 자격증에 따른 채용 가산점이 명시되어 있거나 면접 채점 가이드라인이 꼼꼼하게 정해져 있다고 해도 지원자들이 보기에 서류와 면접 단계는 결국 채점자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 세대의 지원자들은 초‧중학교 시절부터 매일같이 시험으로 줄을 세우고 대입 시에는 수시 전형의 비중도 적어서 대부분 수능 점수로 대학에 입학했다. 와중에 최근 몇 년간 채용 비리 사건까지 심심치 않게 터지곤 하니, 진정한 나의 실력으로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길은 시험 점수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설령 입사 후 회사와 출장지 사이의 거리-속력-시간을 재지 않고 지도 어플리케이션으로 걸리는 시간을 보고 출장을 나간다거나, 업무를 보며 도형을 이리저리 뒤집어볼 일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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