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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어블릭 Oct 30. 2019

그럼요. 내 자식이죠.

어떤 게 올바른 교육이죠? 어떤 것이 올바른 질문이죠? 




우리는 수많은 책들을 읽고, 수많은 기사거리를 인터넷에서 찾으며,

때로는 아이들을 위한 코칭을 받기도 한다. 

그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무조건 따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다양성"을 전재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딨어요? 


언젠가 한국의 계신 분과 조기유학 관련 상담을 나누다 왜 조기유학을 결심을 하셨는지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다. (아이의 조기유학은 부모나 아이입장에서나 어려운 선택이다.그 여정이 길고 힘들기 때문에 그 선택 원인 파악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진학을 위해서 선택을 하는지, 한국생활에 적응이 어려워 선택을 하는지 근원을 파악해야한다. ) 

상담하신 분의 자녀는 호기심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습관이 그렇게 들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정말 쉴 새 없이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이 "질이 좋은"것일 때도 있고, 본인이 들을 때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하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터무니가 없을때도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질문의 양과 질이 넘쳐나 부모 본인도 벅차지만, 그 의문의 우물을 부모 본인이 채워줄 수 있는 양도 한계가 있고, 심지어 아이의 학교 담임선생님께서는 이 아이를 도저히 수업시간 동안 감당할 수없겠다는 말을 부모님께 전달드렸다고 한다. 


내가 만나본 아이는 겉보기에는 보통처럼 보였다. 

중간중간 던지는 질문들은 일반적인 아이들이 가지는 시각에서 본다면 '어떻게 저런 생각이 났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엉뚱하고, 또는 기똥차다고 느끼는 것들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뭐,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있어?"라는 말을 다른이들에게 들었다고 한다. 


이 "바보 같은 질문"에 대하여 난 곰곰이 생각했다. 어떤 질문이 바보 같은 질문인가 말이다. 


한국의 일반적인 초등교육은 평준화, 평균화를 목적으로 한다. 

한 학급에는 항상 일반적으로 한 그룹을 이끄는 "우등 그룹"이 있고, "평균 그룹"이 있고, 뒤처지는 "열등 그룹"이 있다. 그리고 이 그룹들은 시험을 통하여 또는 사회에서 보는 "평균적인 시각"으로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기준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계급화한다. 

이 성적이 높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경각심과 경쟁의식을 전달하고 나머지 아이들을 이끄는 말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이 선두그룹의 아이들은 모두 "월등히 지능이 좋은 아이들"일까?

나는 지난 글들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천재"라는 주제에 관하여 정말 열심히 조사를 했다.  

우리 아이들이 관계되어 있기도 했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 진진해 더욱더 연구자료를 읽게 되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천재"라는 것이 어쩌면 유럽인들의 인식에서 본다면 "천재"가 아닌  "수재" 만들어진 재능인이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100명 중에 2명은 천재로 태어난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한 주제에 관련하여  엄청난 탐구력이 있다고 한다. 

자연계, 수학, 예술, 음악, 사회성 등등 한  분야에서 궁금증이 끊임없다고 말이다. 


어쩌면 상담을 받은 아이는 이 분야에 속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을 했다.

아이는 주위에서 "바보같은 질문을 던지는 아이, 수업을 방해 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있었다. 

정말 이 아이는 이런 아이일까?

내가 보았을때 이 아이는 특별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 눈길을 돌리지 않는 세세한 디테일한 부분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부분에 관하여 질문을 주로 하는 아이였다. 

다행히 이 아이는 염려하는 부모님과 조기 유학을 결정하였고, 현재는 유럽의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이 곳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곳 독일에서는 Kinder Universitaet라는 곳이 존재한다. 어린 천재들의 궁금증을, 특히나 특별한 분야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만 5세부터 천재라고 판정되어지는 아이들이 방문할 수 있는 정부 산하의 주말에 열리는 대학이다. 이 대학은 신체 구조학, 불어, 기계구조 등 어른인 우리가 들으면 "조그만 아이들이 하는 게 맞아? "라고 생각할 정도의 과목이 유명한 교수님들에 의해 어린이를 위한 강좌로 제공이 된다. 


"바보 같은 질문"이란 나는 존재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모든 창작물과 창조물은 "그저 작은 생각"에서 시작한다. 이 상담한 아이가 그저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라고 낙인찍힌 다면 부모로서 당연히 슬픈 일이다. 그리고 아이를 믿는 부모의 믿음도 주위의 수많은 의구심으로 인하여 점점 퇴색하기 시작할 것이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할 것이다. 

"정말 우리아이는 이상한 아이일까?"라고..


물론 아이들 역시 기다리는 법을 당연히 배워야 한다. 질문을 하는 시간, 그리고 그 질문의 답변을 받기 위해 다른 이들처럼 기다리는 법 말이다. 그 기다림 역시 한 사람으로서 성장해 가면 배워야 하는 일 중에 하나이다.   




우리의 아이들이다. 남들은 우리 아이의 단면을 보고 한순간에 단정 지을 수 있다. "저 아이는 이렇다!"라고..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동반할 동반자가 아닌가? 아이의 질문이 전혀 이상하지 않음을 인식시키고,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답을 해주고, 그리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하며, 같이 해답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부모에 의해 완성되는 영재(?)  


드라마 스카이캐슬, 그리고 미국의 대학입시 부정, 한국의 금수저 이력 조작 등, 요즘 우리는 부모들의 권력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이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미 20세기 초부터 고위층 자녀들, 귀족계 자녀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으며, 특별한 시간표를 가지고, 특정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즉 특별한 환경에서 평균과는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디어의 영향,  인터넷과 스타트업 기업들로 인한 돈의 흐름의 변화,  각 사회구조는 격동의 변화를 맞으며 클래식한 환경은 무의미하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규칙이 하나가 있다. 바로 부모들의 관심이 미치는 아이들의 성적 및 공부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 소리친 들, 부모들이 티브이 앞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책 읽는 모습 한번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부모의 권유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독일의 코알라 에스 Koala S (Kompetenzaufbau und Laufbahnen im Schulsystem “ )라는 연구결과를 읽어보면 역시 아이들의 성적은 부모의 관심에 비례하게 향상되거나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밝힌 적이 있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 사교육을 시킨 듯, 부모의 관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공부에 대한 관심은 상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주말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은 모두 아빠들에게 맡겨 놓고 말이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아빠들끼리 만나 아이들을 산책시키라는 당부를 꼭 하고!! 말이다. 

이 독일 아줌마들의 직업은 모두 초등학교 교사이다. 

우리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들이 모두 또래 남자아이고, 둘째가 모두 딸이라는 것. 

우리의 첫째들은 올해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최근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맙소사... 난 내 직업을 그럼 포기해야겠네~."

"사람들이 누구 엄마냐고 하면 까무러칠걸? "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신체적으로 변화하는 시기가 있고, 감정적으로 변화하는 시기가 있다. 저마다 이 변화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틀리다. 그 시기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이 이전 "착하고 이쁜 아이들로 돌아간다" 문제는 우리의 인내심이다. 


우리의 첫째들은 12시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과제를 마치고 모두 자전거를 이끌고 동네를 휩쓸고 다닌다. 진흙범벅이 되어 언덕 위를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고, 공원에서 뒹굴고 말이다. 한참 에너지가 들끓기 시작하고, 학교도 시작했으며, 고학년 아이들에게 억눌린 스트레스를 또래의 아이들과 운동으로 푸는 것이다. 

난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친구 엄마들도 말이다. 


하루는 멀리서 같은 반의 엄마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아들도 함께였는데, 본인의 아이에게 금지한 것 (진흙탕물에 자전거를 타지 말라는 것)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말 안 들을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대답을 하고 그냥 계속 자전거를 타자, 

'도대체 부모가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너는 저렇게 하지 마'라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모습을 보았다.

...속으로는 욱! 했지만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이 아이들이 나를 보지 않았다. 



'네.. 우리는 아이들을 더럽게 자전거를 몰고 오면, 대문 앞에서 자전거를 스스로 윤이 나게 닦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부모죠

라고 역시 속으로 생각을 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너무나 빠져있어, 자신의 아이들이 정상의 기준이라 생각하며, 다른 아이들 역시 그렇게 해야 정상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다른 부모들 역시 그렇게 해야 정상이며, 토론을 그들과 시작을 해봐야 무의미하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나만의 교육관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이 나에게 권유를 해봐야 시도하지 않는 것도 있다. 


나의 교육관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해가 되지 않는 범주안에서 선택하게 해야 하며,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생명에 해가 되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무조건 "안돼"라고 하는 것은 아이의 독립성을 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욕을 배우는 시기가 있고, 그게 신기해서 계속하는 시기가 있다.

유행하는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있다. (나중에 10년이 지나서 스스로 부끄러워할 스타일이지만...) 그것을 무조건 하지 마, 안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뭘로 보겠니? 라며 막는다고 치자. 

그러면 아이들이 하지 않을까? 부모가 영향을 미치는 범주가 있다. 우리 부모 눈에 비치는 시간 내에서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을 하느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행동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은,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나쁜 것과 옳은 것을 구분하는 것을 인내심 있게 가르치며, 그리고 내가 보나 보지 않으나 그것을 지키며, 남들 말을 무조건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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