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그해는 가수에게나 나에게나 꽤 의미가 있는 한 해라고 생각한다. 그 가수는 여성 가수 최초로 올림픽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여는 여가수고 내가 지금 이렇게 활동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 수 있을 법한 가수다.
해가 진 직후는 선선해서(어쩌면 더웠는데 당시 내가 대머리였기 때문에 선선하게 느껴진 건지도) 나는 발광하는 응원봉이 만들어내는 대장관을 눈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깔렸을 때 문이 열리며 3초 만에 그녀에게 영혼이 사로잡혔다. 오래전에 방송보조 일을 하며 연예인을 비교적 가까이 접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연예인은 자체 발광이란 게 있다. 연예인이 아니고도 예술하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그것을 아우라라고 표현하지만 그 저 빛, 빛인 그 아우라가 100명의 마음을 밝히는지 1000명의 마음을 밝히는지 에 따라 예인들의 역량이 나뉘는 것 같다. 무튼 각설.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로 시작하는 네 마디의 문장을 듣고서.
나도 세 마디로 화답했는데 팬들이 냅다 지르는 함성 사이로 이렇게 뱉어 냈다.
"살아있길 정말 잘했다."라는 말이 내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영적인 체험 같은 느낌) 그말은 정말이지 생각의 과정따위는 거치지 않고 숨처럼 내뱉어진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 항암치료와 수술을 잘 버텨준 보상을 한마디로 위로 받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콘서트는 2시간여 가량 되었다. 그런데 가수의 목 상태는 좋지 않아서 음이탈이 이어졌다. 고음부로 갈수록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사실 골수팬은 아니었고 어떤 한 곡에 매료돼 항암을 하는 몇 달 정도 가수의 그 노래만을 찾아듣다가 그 노래가 포함된 앨범을 사랑하게되어 그 앨범만 주구장창 듣는 정도였기 때문에 가수의 최상의 목상태라든지 왜 이런 상태로 콘서트에 임하게 되었는지 그런 것은 알지 못했지만 약간의 실망을 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처음 몇 곡 만으로도 사실 만족했으므로.(지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그런데 그녀가 다가와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객석을 향해 물었을 때 그녀의 팬들이 어떤 노래를 불러주길 원했는데 그 노래는 그 가수의 노래 중에 고음이 많은 노래였던 것 같다.
그때 가수 이런말을 했다.
"나 사랑 안 하나 보네."
이 말은 정말이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이 끝난 직 후 영 점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1초도 안 되는 사이였지만 약간의 마가 뜨는. 그러고 나서 가수는 자신이 원래부터 부르려고 했던 노래인지 아무튼 고음부가 적은 노래를 불렀다. 원래는 앵콜, 앵앵콜까지 해준다고 하여 기대를 했었다. 내가 듣고 싶은 그 한 곡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버스시간이 다되어 원하는 그 곡을 듣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공연장을 나오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는데 그들은 공연장 입구에 무언가 산더미 처럼 버려져 있었다. 그녀가 매 콘서트때마다 관객들에게 선물한다는 방석이었다.
콘서트장을 터벅터벅 나오며 가수의 나 사랑 안하나 보 하는 그 말을 곱씹고 곱씹어 보었다. 버려진 방석은 가수의 말대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었을까. 시간이 한참이 지난 이제와서 솔직히 드는 생각은 사실 가수의 골수팬이 아닌 나도 적잖이 실망스러운 말이었다. 마음에서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마치 신처럼 아우르던(스타라는 건 별이라는 뜻이고 우리가 추앙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분의 입에서 진노를 들은 듯한 암담한 기분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말에는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아는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녀도 알고 팬들도 아는 절대적인 권력, 어쩌면 팬들은 반대급부에서 이런 마음이 솟구친 것은 아닐까. 너가 뭔데. 그런 생각이 분연히 솟아나 냅다 방석을 팽개쳐 버린것은 아니었을까. 서로 따뜻하게 주고 받았던 마음을.
그러다가 나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녀와는 다시 아주아주 멀어지며 좀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 말은 마치 '나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어.'라는 말.
그러면 반대로 팬들도 물을 수 있지 않을까.
'(가수야, 너야말로)나 사랑 안 하나 보네.'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존재들이 각자 마음의 크기를 확인한 때 기대보다 못 미치는 그 공백을 채워줄 어떤 감정들이 필요한데, 그것은 증오만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연코.
애석하게도 나는 그 가수를 그만큼 원망하고 원할만큼 사랑하지는 않았으므로 팽개칠 분노대신 방석을 깔고 앉아, 아직도 그 가수를 지난 내 하나의 취향쯤으로 여기지만 (그때 감동을 줬던 것과 별개로) 아마도 방석을 버리며 방석대신 증오를 담고 간 팬들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 후 가수는 무슨 귓병이 있다며 콘서트 이후 음이탈과 관련해서 기사로 해명을 했고, 그 이듬해 표절 구설에 휘말렸다. 올해 다시 콘서트를 열었다고 했다. '팬들을 위해.' 그 말이 이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를만한 것 중에 지극히 이타적인, 아가페적인 것이 과연 있을까 싶은 생각에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런 건 없겠지를 전제로한다. 우린 모두 인간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