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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Nov 23. 2020

점심에 손칼국수 먹었습니다.

작은 인연도 소중하게.

오늘은 원래 점심을 안 먹으려 했습니다.
친한 동생 덕에 고급진 꽁밥을 먹는 날이거든요.

매일 밤 무언가로 달리는 사람들만 있는 단톡방입니다.

그런데 한동안 안 오시던 환자분이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78세 김ㄱㅅ 할아버지.
예전에 칼국수집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하다가 내원까지 하시게 된 분입니다.


왼쪽 어깨가 아파서 오셨는데 잘 낫지 않았습니다.
몇 번 치료받으시다가 안 오셨는데
8일 만에 오셔서는 허리가 아프시답니다.

어깨는유?
어깨는 저기 통증클리닉 가서 물 빼고 주사 맞으니까 한방에 다 나았어요. 거 참 신기해.
어이고. 그래요? 신기하네. 무슨 주살까.
그러니까. 오늘은 허리가 살짝 안 좋아서 왔으니까 허리 살살 놔줘요. 사실은 원장님 보고 싶어서 왔어.
흐흐흐. 그래유. 잘 오셨어. 아버님 우리 또 칼국수 먹으러 가야쥬. 그 집 칼국수 맛있잖어.
아유 좋지. 내가 사드려야지.
아녀. 제가 사야쥬. 말 나온 김에 오늘 갈까유?
오늘 좋지. 근데 내가 살 거야. 내가 안 사면 안 가.

점심시간. 할아버지와 함께 경동시장으로.

아버님 근데 제가 살게유. 제가 사야쥬.
아니야. 나는 돈 쓸데가 없어. 원장님은 돈 쓸데가 많잖아. 열심히 벌고 열심히 모아야지. 나도 젊어서는 일 열심히 했어요.
아버님 무슨 일 하셨는데유?
내가 젊어서는 재단사였어요. 양복 재단했는데 잘 나갔어.
어? 우리 아부지두 양복 장사 하셨어유. 아버님 어디서 하셨는데. 가게 이름은유.
사당동에서. 홍콩텔라.
텔러? 테일러를 줄여서 텔라라 했던 거쥬?
어 그렇지. 아주 대단했지. 미 8군 사령관도 우리한테 와서 맞췄어.
어우 서양인들이 올 정도면 아주 대단하셨네.

어느덧 칼국수집 도착.


손칼국수 두 개 주세요.

자리에 앉으며 주문합니다.

아버님. 우리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아 좋지~

아버님은 셀카가 익숙치 않으십니다.

원장님. 나 허리가 하나도 안 아파. 다 나았네.
아유. 금방 나으셨네. 어깨도 딱 그렇게 고쳐드렸어야 하는데.
아이고. 어깨는 오래된 거였어요. 금방 안 낫지. 그리고 거기 통증의학과는 주사가 비싸. 그러니까 낫지.
맞어. 앞으로 다른 데 아프면 오셔. 아니 안 아파도 오셔. 저 보러 오셔.
알었어. 가야지. 계속 가야지.

다른 곳에서 치료받은 어깨는 서로 민망합니다.

드디어 나온 칼국수.


다진 고추와 간장을 넣고 바지락 껍데기를 건져냅니다.

바지락이 많진 않습니다.


이 집은 직접 담근 김치가 특히 맛납니다.
배추김치는 기본이고
여름에는 열무김치,
겨울에는 깍두기가 추가로 나옵니다.
다 맛있습니다.


아버님. 근데 제가 사면 안 될까?
무슨 소리! 내가 살 거야. 원장님 정 살 거면 다음에 사.
아휴. 알았어유.

저 여기 영수증 좀 주시겠어요?



그 와중에 저는 영수증까지 챙깁니다.

아버님. 오늘 잘 먹었습니다.
원장님. 나는 이쪽으로 가서 시장 볼 테니까, 얼른 한의원 들어가요.
아버님. 장 너무 무겁게 보지 마셔요. 무리하지 마셔. 다음에 어머님이랑 같이 한의원 놀러 오시고.
알았어요.

악수를 하고 헤어집니다. (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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