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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라봉 Aug 07. 2019

한달살기 여행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적당한 시기를 찾지 않기로 했다


한달살기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는.


   유럽의 단골 카페에 앉아 책 보기

   블타바 강변 벤치에서 한가롭게 시간 보내기

   대성당 앞 공원에서 피크닉 하기


3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 부부는 해외에서 한달살기 여행을 하고 있다.


프라하 대성당 앞 공원에서 피크닉


아직 부부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한,

결혼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초보 신혼부부인 우리는 결혼식을 준비하 동시에 해외 한달살기 여행을 계획했다.


일생일대의 변화를 곱빼기로 맞이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신났다. 정신없이 바쁜 건 그저 사소한 덤로 느껴질만큼.

여태까지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무언가 바뀌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뻤는지도 모르겠다.




한달살기 여행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직장은? 돈은? 미래는?

너무 많은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다. 회사를 다니는 지난 7년 동안 여러 가지 가정과 걱정으로 옴짝달싹 못했다. 정확히는 그 걱정을 대하는 내 태도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 스쳐 흘러갔다.



결혼을 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그 새로움이 늘 좋은 방향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내게 많은 말을 했는데, 그중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아래와 같은 말도 있었다.


   "제 며느리가 엄마가 될 거야, 고 싶은 걸 다 하진 못해."

   "미혼일 때처럼 자유로울 순 없을 거야."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역할과 책임에 대해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고 ~'라는 장난스러운 말도 덧붙였다.

내 인생이 정말 '마음껏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시기'로 들어서고 있는 걸까. 휴게실에 앉아 업무노트를 정리하던 중 막연히 생각했다.


   '긴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는데.'


70살쯤 되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이 시기는 정말 잠깐일 텐데.


   '그때 그랬어야 했어. 젊고 건강할 때 마음껏 해봐야 했는데. 그 시절이 타이밍이었는데...'


나중에 이렇게 후회하는 것보다 용기를 내서 잠깐 멈춰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용기였다. 모든 것은 어쩌면 용기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내가 없다고 해서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떠난다고 당장 어마어마한 빚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홀로 상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긴 여행을 하려면 우선 휴직을 해야 했고, 휴직을 하려면 회사의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전에 더 중요한 과정 있었다. 결혼을 예정한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했다.(지금은 남편이 되었지만 그때는 남자친구였다)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그 후의 이야기였다.


남자친구는 내 생각을 듣고 고민했지만 다행히 '무언가를 해야 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용기가 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말해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적당한 시기를 찾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더 지나버리면 또 어쩔 수 없는 사정들이 생길 것 같았다.


그렇게 홀로 했던 상상은 둘의 상상이 되었다. 우리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키득거리며 웃었다.

대략적인 계획을 짜 보기로 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기분이 좋았다. 결혼 준비까지 더해 피곤한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생기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즐겁다면 시도해볼 가치가 있고, 더 확신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D-60  

대략적인 틀이 잡히자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회사에 휴직 면담을 시작했다. 아주 어려운 과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자 그렇게 어렵게 흘러가지 않았다. 경찰이 와서 '법적으로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모든 것은 그저 의지에 달려있었다. 갚고 있는 대출, 고과, 담당업무, 진급, 아이를 가져야 할 시기 등...  휴직기간 동안 벌이가 없는 것을 포함하여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지만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슬기로운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이해해주셨다. (남편과 함께 결혼 후 휴직하고 여행 가겠다고 말했을 때, 엄한 교장선생님처럼 쳐다보시기는 했다. 그 후의 대화는 ... 생략.)


유럽 한달살기 중 첫번째, 프라하


사내 커플이었던 우리 부부가 (제도는 있지만 누구도 쓸 엄두를 내지 못하던) 무급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럽다'와 '돈이 많냐'는 말을 했다. 업무의 공석으로 인해 곤란함을 표하는 건 잠시였고, 긍정적인 시선이 훨씬 많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면담을 한 순간부터 부서 사람들은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자 옆 부서 사람이, 일주일이 지나자 같은 층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인수인계와 함께 7번의 면담을 거쳐 물 흐르듯 절차가 진행되었다.


변수는 있었다. 규정에 맞추느라 휴직의 시기를 15일 정도 이르게 했고, 기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어 6개월휴직하게 되었다. 예상한 것보다 돈이 없었지만(결혼식 비용에 돈이 줄줄 나갔다) 이왕 6개월이나 휴직하는 것, 한달살기를 두 번 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거나 징하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프라하 한달살기에 이어 또 다른 한달살기 기다리고 있다.






* '한달살기'를 명사처럼 쓰고 있습니다.


* 프라하 한달살기 & 크로아티아 한달살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한라봉 블로그 : http://blog.naver.com/dragonjin1259 (클릭시 이동)


#한달살기  #한달살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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