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는 워낙 분주하고 어수선하기로 유명하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아랍어를 쓰는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있고, 어수선 하다못해 시끄럽기까지 한 공항 도로를 빠져나오니 반대로 너무나 조용한 듯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도심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시끄럽다가 조용했다가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이집트.
인도만큼이나 정신없고, 사람 많은 곳, 흥정이 잘 될 만 큰 기본적으로 장사꾼들이었다. 좋지 않은 첫인상을 뒤로하고 도착한 이집트는 어떤 나라 일까?
공항 탈출기
혼돈의 카이로 공항에서 우버를 불러 숙소까지 이동했다. 공항은 깨끗하고 내부도 잘 되어 있었지만 차를 타려고 나온 입구는 말도 못 하게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내가 운전을 했다면 아마 1m도 못 가서 운전을 포기했을 것 같다. 도로 위에는 차들이 가득했고, 심지어 조금씩이나마 움직이는 차 앞으로는 사람들이 무단횡단으로 지나다녔다. 심지어 발이 느린 아이들을 안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아찔했다. 쉼 없이 들려오는 경적들과 소음들이 귀를 따갑게 했고 매연인 것 같은 탁한 공기가 코로 들어오면서 어지러웠다. 이보다 더 한 인도 여행도 겪었지만, 못지않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고, 분주한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을 때쯤 슬금슬금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생겼다. 이젠 좋든지 싫든지 이곳에서 살아야 하고, 여행 계획에서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기 때문에 이집트와의 동화율을 높여야 했다. 이들이 먹는 것을 먹고, 이들이 하는 행동 양식을 존중하며 따르고, 가벼운 인사말 정도는 배우며 이곳의 친구들을 만들어나가는 여행. 삶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으며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여행.
그러기 위해 열심히 창밖을 보고 눈으로 쫓아갔다. 현지 사람들의 입고 다니는 옷을 보고,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음식을 유심히 봤다. 차 창으로 비치는 모습이라 빠르게 지나갔지만 숙소가 가까워질 때쯤 이곳의 환경이 서서히 쌓여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숙소는 단 이틀만 있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컨디션을 생각하고 숙소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외관상 허름할 수도 있지만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이동이 쉽다는 장점으로 숙소를 골랐고, 막상 그곳에 지내는 시간엔 별 불편함 없이 머무를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동기와 나는 숙소에 짐을 놓고 가볍고 중요한 짐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우선 비행을 마치고 난 뒤라 조금 답답했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서였다.
첫끼는 KFC
다른 여행지와는 다른 느낌의 공기였다. 이집트의 공기의 온도는 조금 선선하며 마치 모래가 섞인 느낌에 약간 작은 알갱이가 섞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공항과 달리 도심은 밤 시간답게 조금 차분했다. 한적한 도로를 걸어 다니며 다시 한번 더 새로운 도시를 배웠다. 하지만 처음인 도시에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랐다. 여행하며 매일 블로그를 쓰긴 해도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라 목적지 없이 조금 걸어 다녔다. 그러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KFC 가게에 들어갔다.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맛을 낸다고 알려진 세계적 프랜차이즈 가게에 들어왔는데, 메뉴판을 보자 '역시 그렇구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중국여행을 하는 중에 만난 수많은 세계적 프랜차이즈 기업은 중국에서만 파는 독자적인 메뉴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맥도널드에선 맥모닝도 있었지만 중국인들의 아침식으로 유명한 따뜻한 두유와 만두 세트도 같이 팔았다. 태국 까오산 맥도널드에는 한때 그곳에서만 파는 파이를 선보인적도 있었다.(이후 세계적인 메뉴로 자리 잡았다.)
그때처럼 이곳의 매장에도 밥 위에 양념된 치킨을 얹은 메뉴가 있었다. 이럴 땐 고민 없이 신메뉴를 고르는 게 나의 신조이기 때문에 주저 없이 바로 주문했다. 동기도 역시나 새로운 메뉴에 도전. 나란히 같은 메뉴를 시키기로 했다. '리조' 우리가 시킨 메뉴 이름인데, 그래도 처음인 메뉴라 기대 반 걱정 반이긴 했지만 나름 성공적. 쌀은 특유의 날리는 쌀밥이고, 찰기가 덜 했다. 치킨은 간간하고 달달한 맛의 양념으로 가볍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메뉴였다. (달콤 짭조름 한 맛)
남아프리카에서 긴 비행으로 이집트까지 올라와 몸은 피곤하고 조금 휨이 빠졌지만 다시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리니 이곳이 이집트이며 새로운 나라에 왔다는 생각에 다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카이로 산책
일부러 들어가는 길은 조금 돌아가는 길은 선택했다. 그래도 초행길이라 많이 돌아가진 않았고, 가벼운 산책을 할 겸 걷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으로 점점 다가가는 중이었지만 사람들은 모여서 야식을 먹기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골목이 시끄러웠다.
확실히 도로 위에 달리는 차는 줄었지만 사람들 모임은 늘었다. 술은 종교적으로 마시지 않기 때문에 퇴근하고 동내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는 우리네 문화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기도 하고 간식을 먹기도 했다. 국가는 아프리카에 속하지만 사실 중동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집트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고, 그때 곁들여서 달콤한 간식을 먹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은 잘 보면 항상 불이 환하게 켜진 간식 가게이다.
이슬람 최대의 도시답게 들려오는 이슬람 사원의 소리는 마치 내가 연금술사 책에 들어온 것 마냥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물론 내가 여행했던 이슬람 도시는 많이 있었고, 복장이나 음식에 많이 적응은 되어 있었지만 오롯하게 이집트라는 나라에 담겨있는 여행자라는 느낌이 첫날 저녁을 들뜨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여행을 기대하게 만드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