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들 이 분야에서 한가닥 하는 사람들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식당 입구를 당당하게 들어온 것 같지만 쪼그라드는 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오늘 연기 수업을 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공연에 들어가기 전 배우들과 스텝이 모여 인사를 하는 자리다. 이것을 시파티라고 부른다. 아마 영어 'See'를 기반으로 한 단어 같아 보이는데, 직설적인 표현이 매력적인 단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테이블을 세 개나 당겨 우리가 앉을 테이블을 만들어야 했다. 메뉴는 모두들 좋아하는 고기 집으로 하길 바랐으나 고기를 직접 굽거나 테이블마다 내려오는 환기통 때문에 대화가 어렵다는 문제로 가까운 감자탕 집에서 첫 모임을 하기로 결정했다.
딱히 메뉴에는 불만이 없다. 다만 자리에 앉았는데, 딱 가운데 한자리 밖에 남지 않아서 내가 앉아야 했다는 점이 상당히 불편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누구나 다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게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내가 마지막인 건지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극단 대표를 맡고 있는 김 00입니다. 아무쪼록 불편함이 없도록 잘 돕겠지만 부족한 게 보이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서로 배려하면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모두들 박수를 쳤다. 순간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아니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무리에 속해있는 나는 조금 더 강해졌으니 눈치 안 보고 바로 박수 대열에 합류했다. 민폐를 끼쳤다. 돌아가면서 나이와 이름, 그리고 간단한 자신을 소개했는데, 공연을 여러 번 경험하고 새로운 공연을 해보고 싶어 이 자리에 온 사람과 내성적이라 바꿔보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소개한 사람 뒤에 바로 내 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승환입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음... 남들 앞에 서는 게 조금은 어색하고 힘들어 때론 숨고 싶지만 이번엔 용기를 가지고 여려 분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가게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대표님 이후 연출부터는 그냥 손뼉 치는 시늉만 하고 소리는 안 나게 손뼉 치는 걸로 바뀌어 모두들 열심히 가짜 박수를 보내줬다.
'휴..'
나의 차례인 찰나의 순간 그 짧은 시간의 길게 만 느껴졌다. 아직 누군가 앞에서 이야길 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시파티는 대학교의 개강파티와 비슷했다. 서로 각자의 소개와 간단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의 첫 단추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나이로 관계정리를 하며 각자의 포지션을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 모인 모두가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건네는 말씨를 들어도 배려하는 게 느껴지고 상대에 입장에서 들어주는 모습이 좋았다. 공연은 적어도 세 달 이상 같이 지내면서 만들어가는 건데, 관계에서 불편하면 공연 연습을 하는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라서 처음 만나는 시간에 꼭 참석해서 같이 하는 사람을 보고 싶었다.
시파티는 연극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 중에 하나이다. 연극이나 뮤지컬 혹은 음악회처럼 나 혼자서 잘해야만 공연이 빛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 작품이다 보니 꼭 관계성이 좋아야만 한다. 시파티를 한다고 관계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리엔테이션으로 시파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같이 밥을 먹는 것이 식구라고 한다면 우리는 시작 전부터 식구가 되어 시작하는 것이다. 조금 가까워진 거리로 시작한다면 작품성이 더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연극 모임의 시작,
그 처음의 순간이 이제 시작되었다.
막이 올랐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