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무료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내가 뭘 하면 즐거울 수 있을까?
뭘 하면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한 시간에 비해 결정은 빠르고 간결했다.
연기.
연기를 선택한 이유는 특별함이 없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한 고민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부러웠고,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동경했다. 홈이 자유롭게 움직인다거나 소리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취미를 가지기엔 내가 가진 능력이 모자랐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았다. 대안으로 생각해 본 게 잘 못하는 걸 더 배워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연기였다. 연기를 배우거나 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극단에서 내가 하는 연기는 '발연기'라 팀 활동으로 하는 연극에서도 늘 혼나기 일쑤였고, 배우는 속도도 남들보다 느려서 뭔가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 꼭 한 번쯤 기회가 있다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연기 팀 활동. '예감'이라는 문화 공연 단체는 연극, 뮤지컬 및 다양한 공연 문화를 기획하는 단체였다. 내가 그곳에 몸을 담고 있었을 때는 규모도 크고 인원도 많았고, 실력자들이 포진해 있는 단체라 소비되는 곳도 많이 있었다.
그중 나는 최약체였다. 주인공 한번 해 본 적이 없었고, 단순한 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연당일 실수를 할 만큼 서툴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는 능력도 없어서 공연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경험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연기를 선택했다. 배우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중에서 배우면 재미있을 것 같고, 알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선택하고 싶었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연기를 하면서 생겨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이 더 컸다고 보는 게 맞다.
연기 이외에도 노래 배우기, 댄스 배우기, 랩 부르기처럼 전혀 알 수 없는 분야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었다. 두려움이 생기기 전까진 말이다. 가장 큰 걱정은 두려워서 금방 포기하거나 시작을 못할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해 볼까 하다가도 괜히 잘 모르는데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연기를 선택했다. 그나마 해 본 것 중에서 못하는 데다가 포기하지 않을 것을.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생활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지루할 틈 없이 외워야 하는 대본들과 대사들. 캐릭터 분석을 하고 나서야 비로써 배역을 맡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점점 배우가 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배우지 못한 것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으로 바꾸기 위해 더욱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일생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 더 바쁘게 살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 있었다면 느낄 수 없는 자유를 얻었다. 밸런스를 다시 찾았다. 한쪽에만 치우친 나쁜 습관을 깨고 균형을 찾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연기를 선택했던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선택하지 않은 부분을 확대 해석하거나 '신포도'와 같이 폄하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선택한 연기는 나의 무기력함과 게으름을 잊게 해 주었고, 침대의 한 평에서 나를 끄집어내어 부대위에 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레 긴장하고 떨렸지만 극단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연기를 배우면서 힘을 얻었다. 극단의 무대력과 배움에서 나오는 연기의 기술이 만나 나의 가치를 높여준 것이다. 마치 무슨 홍보대사를 맡은 거 마냥 떠들어대는 것 같지만 당신이 지금 연기를 선택하더라도 나보다 더 잘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