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을 읽는다는 건 단순하게 읽기에서 그치는 수업이 아니다. 대본을 읽어 본다는 단순한 차원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읽기 수업은 그렇게 한 가지만 보자고 하는 수업이 아닌 것이다. 대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순간적으로 대본에 몰입하게 된다. 무대 위에서 연기할 인물들에 대한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들 인물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첫 대면인 것이다.
인물에 대한 모습을 처음으로 만날 때 받는 강인한 인상은 결코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C.S. 루이스 작]에서 나오는 노인의 모습은 책 속에 삽화가 따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노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심술 많고 욕심 그득한 전형적 놀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우리가 대본을 같이 읽어보는데 이러한 이유가 크다. 인물의 모습을 서로 이야기해 보고 배경이 되는 무대 이미지를 공유할 수 도 있다. 모두가 같은 이미지를 그리고 인물에 대한 특성을 공유하면 연기하기가 쉬워진다.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배역동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일 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대본을 같은 읽어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배역에 대한 적합성이다. 한 사람이 한 캐릭터를 가지고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줄씩 돌아가면서 읽어 내려가는 중요한 이유는 읽는 동안 그 사람의 목소리나 호흡에 가장 잘 맞는 역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출이 가지고 온 대본은 연출자의 머릿속에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려진 그림 위에 우리가 어떻게 칠해질지 고민하면서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읽어 내려간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이니 그 대사를 통해 배역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출은 대본이 나오면 가장 먼저 모인 사람의 자연적 모습이 배역과 비슷한지 고민한다. 그리고 나선 그 배역에 어울리는 사람과 정해진 배역을 마련해 두고 연습을 시작한다고 알고 있으나 대본 리딩 후 작은 변화들은 생긴다. 짜인 배역이 있지만 대본 리딩을 하는 동안 배역의 적합성을 한 번 더 고민하기도 하고, 만약 생각했던 배역에 더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배역을 조정하기도 한다.
대본을 읽어 본다는 것은 단순하게 글을 읽는 독서시간이 아니라 종이 위에 인쇄된 활자들에게 움직임을 넣어주고 감정을 입히면서 공연이 조금씩 살아나게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공연을 위해서 하는 일 중 시파티 다음으로 중요한 대본 읽기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