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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Oct 27. 2024

3. 배역 정하기

또 한 주가 지났다. 일상은 일상대로 바빴다. 일상의 나는 아침부터 분주한 삶을 살기 위해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이 일어나 출근하는 시간. 운동을 하기 위해 수영장으로 가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를 얻고 나온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출장도 다니면서 하루가 진정 24시간임을 깨닫는다. 운동, 출근, 퇴근, 점심, 다시 출근 그리고 퇴근이 이어진다. 나는 일이 많다. 아침엔 수영(연습생) 선수, 아침엔 학교 선생님, 오후엔 학원 선생님, 저녁엔 연극배우다.


출근했다가 다시 출근하는 일은 언제나 힘이 더 드는 일이지만 버겁진 않다.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초반엔 아침을 엉망으로 쓸 때가 많았었다. 엉망이었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저녁에 다니던 수영도 아침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아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늘고, 일자리도 하나 더 생겼다. 새로 얻게 된 일자리는 나의 부지런함에 자연스럽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맡은 역할에 열심을 다 하기로 했다.


연습이 있는 날은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다. 일주일이 모두 바빠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다행히 고등학교 3학년이 수능을 치게 되면서 고3반이 없어졌다. 일주일에 하루가 비었다. 나의 평일 연습은 이 날에 한다. 연습실에 도착하기 전 핸드폰 메모장을 한 번 더 열었다. 그곳에 적린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입에 익을 수 있게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보고 이미지를 떠 올리며 이름을 붙였다. 지난주에 굴욕을 조금이라도 벗을 수 있도록 이름을 다 외우고 들어갔다. 


연습실에 나보다 일찍 도착해 핸드폰을 보고 있던 분께 인사를 건네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나니 연출이 들어왔다. 늘 그렇듯 자유롭게 있다가도 연출이 들어오면 한 자라이에 모여 앉았다. 까만색의 테이블 위에 지난주에 받은 대본을 올려놓고 필기구를 꺼 냈다. 


연출이 이야길 시작했다. 

"다들 한 주도 잘 지냈나요? (네) 지난 시간엔 대본을 읽었는데요. 기억나시죠?"

"네. 벌써 잊어버리면 안 되죠"

"네네. 이번 주에는 지난주에 읽었던 대본에 배역을 선정할 텐데요. 일단 본인이 하고 싶은 배역이 있으면 먼저 말해주시면 좋겠어요.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편하게 말하면 됩니다."

"...."

"아.. 그렇죠? 이럴 때 대부분을 이야길 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어울릴 것 같은 배역을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정도 정해 왔는데, 지금부터 시간 드릴 테니 맡은 배역에 확인하시고 마음에 드시는 장면을 연습해 주세요."

"지금요? 바로요"

"네 지금 바로 보도록 할게요. 시간을 드리겠지만 많이 드릴 순 없고, 대본 보고 해도 되니까 편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쌤 너무 긴장되는데요. 다음 주에 하면 안 되나요?"

"안됩니다. 이번주에 배역 정하고 다음 주엔 배역 분석하고 할 일이 많아요"

"아~ 쌤~"


나를 포함한 몇몇 분들이 항의를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저 웃기만 하는 연출이 얄미웠지만 우리도 이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자신의 이름에 호명되는 배역을 적어 두었다. 연습시간을 길게 줄 수 없다고 하더니 정말로 시간을 짧게 줬다. 바로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했고, 한 명씩 대본을 들고 연출이 있는 곳 앞에 서서 연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했던걸 연기라고 하면 조금 부끄러우니 대본 읽기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원하는 배역이 딱히 없었던 나는 그냥 정해준 배역 중에서 힘을 주면 좋겠다는 배역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고, 나머지 배역은 대본을 읽은 정도로만 연습을 했다. 


(이 시간을 지나 보내고 든 생각인데, 본인이 만약 원하는 배역이 있었다면 미리 어필을 해 놓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주인공을 하고 싶어 연기를 시작 한 분들도 많이 있을 텐데, 오디션 없이 정해지는 배역에 조금 불만이 있을 수 있으니 그런 감정이 상하는 없도록 미리 알려주는 것도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100% 본인의 능력과 적극성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


긴장된 모든 순서가 다 지났다. 

모두의 손에 배역이 하나씩 정해지는 순간이다. 


연출이 보기에 가장 잘할 것 같은 배역을 한 명당 하나씩 호명했다. 받아 든 배역을 보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직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우린 각자 본인의 역할에 대사를 확인하고, 천천히 대본을 읽어나갔다. 


연출이 자리에서 읽어나 가방에서 지난번 대본 나눠 줄 때처럼 종이 뭉치를 꺼냈다. 대본보다는 그 두께가 얇고, 가벼워 보였다. 한 장씩 넘겼다. 드디어 다음 주까지 작성해야 하는 종이가 내 손에 들려 있다. 몇 칸의 표가 가지런히 그려진 A4사이즈의 종이 위에 가장 중앙 높은 곳에 '인물분석표'라고 적혀있고,  '역할', '이름'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아마 역할란에는 본인이 맡은 배역을 적는 것 같고, 이름은 본인의 이름을 적는 곳인 것 같았다. 남은 표에 적힌 내용은 인물 분석에 필요한 질문들이 있었고, 질문에 몇 답을 적는 과제였다.  


세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순시 간에 지나갔다. 우리는 배정받은 배역의 대사를 한 번씩 읽어보기로 했다. 아마 예상된 이미지에 모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맡은 배역에 대한 적합성을 확인했고, 연습도 한 번 했다. 이제 어느덧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마치기 직전 연출이 공지를 남겼다. 


"다음 주엔 역할에 대한 인물분석표를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분석한 인물표를 보고 상대 배역에 대한 이해도롤 높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


이렇게 또 한 번의 수업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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