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euN 쓴 Oct 27. 2024

4. 본격 연습 들어가기

고민이 많은 한 주였다. 일단 인물에 대한 분석이 문제였다. 내가 맡은 배역은 특별히 대사의 양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긴 장면에 걸쳐 나오는 인물도 아니었고,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도 아니었다. 이래서 배역분석이 어려운 것이다. 그저 나의 배역은 상대 배역이 있었고 그와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전부였다. 어쩔 수 없이 짧은 대화에서 찾아낼 수 있는 단서로 배역 분석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나오는 부분을 몇 번이고 읽었다,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부분에서의 나는 특별할 게 없었고, 상대 배역과 둘이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조금이나마 성격을 볼 수 있는 대사가 있어서 나에겐 큰 힌트다. 다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나의 경험에 비춰보고 해석하는 걸로 정했다.


지난번에 받아 온 대본과 과제 종이 하나를 책상에 올려두고 한동안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핸드폰에 손이 가는 걸 겨우 참아가며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다 읽어 보고 두 번째는 형광펜을 들고 내 대사에 마크를 해가면서 읽었더니 조금은 이해도가 높아졌다. 


몇 시간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빨리 작업을 해 두어야 해서 집에선 안 되겠다 싶어 바로 가방을 들고 스타벅스로 갔다. 커피를 하나 받아 한 모금 마시니 뇌 속으로 카페인이 뛰어다닌다. 잠시 커피로 받아낸 순간적 집중력을 이용해 용지에 내용을 채워 나간다. 


다시 연습 날이 되었다. 

시작 시간이 조금 남았고, 연출은 오기 전이다. 배우들은 이미 다 와있던 터라 모두 연습실에 둘러앉아 대본을 읽어나갔다. 일단 대본 내용 파악을 위해 내가 나오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읽어나갔다. 


원래 나는 읽기를 할 때 특정한 부분을 읽어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맥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전체를 읽어보지 않으면 내용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편이라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편이다. 느리긴 해도 내용을 이해하는 나만의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연출이 도착하면서 탁자로 자리를 옮기고 상대 배역이 되는 사람과 함께 이웃하게 앉았다. 대본을 받기 전에는 아무렇게나 앉아 인사를 했는데, 이젠 자연스럽게 배역에 따라 자리를 앉는 우리가 되었다. 서로 붙는 장면에 같이 나오는 배우들은 나란히 앉거나 마주 보고 앉는 것을 택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연출은 도착하자마자 대본 읽기를 주문했다. 


"다들 오셨으니까 연습을 바로 시작할게요. 각자 맡은 배우 분석을 해오셨나요?" 

"네"

"그럼 적어온 종이를 보고 서로 이야길 해볼까요? 지난주에 이야기했듯 다른 사람이 분석해 온 배역들을 잘 들어주셔야 왜 저 사람이 이렇게 표현하는지 알 수 있고, 특히나 상대 배우라면 대사를 주고받기 편하실 테니 잘 들어주세요."


라는 말을 하곤 연출부터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본인이 분석한 인물에 대한 이야길 시작했다. 나이와 배경, 인물이 가진 서사부터 결혼 유무까지 대본에 잘 나오지 않는 부분도 세세하게 조사를 한 사람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엔 배역이 나의 아내였기 때문에 특별히 결혼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내가 프러포즈를 했는지 아내가 나에게 고백했는지 고민했었다. 


쓸데없는 고민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고민은 내가 대사를 할 때 조금 고려해서 힘을 싣는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나름의 해석으로 대본 속 인물에 대한 분석을 했고 함께하는 배우들과 내용을 공유했다.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배역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도 있었고, 어떻게 연기할지 미리 보기 같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었다. 


오른쪽으로 한 번 다 돌고 나서 다시 연출에게 순서가 갈 때 연출이 이야기했다. 


" 모두 인물 분석을 잘해 오셨는데요. 잠시 쉬었다가 대본 읽기를 한 번 해 볼게요. "


쉬는 시간 끝났다. 


다시 자리에 앉은 모두는 처음 읽었던 것과 다르게 맡은 배역에 인물을 입혀 읽기를 시작했다. 분석해 본 역할을 최대한 살려 대사를 읽었다. 감정이 가미된 연습을 처음을 하게 된 우리는 약간은 붉어진 볼에 격앙된 모습이지만 진지하게 연습에 임했다. 상대에게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우리 연습실에 오롯이 대본 읽은 소리만 들렸다. 

이전 09화 3. 배역 정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