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방암 수술 후 항암화학요법 치료기
겨울이 유독 길게 느껴질수록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봄에 대한 갈망은 깊어지듯, 항암치료를 거듭할수록 달력을 들여다보며 고대하고 또 고대하게 된다. 봄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 계절이 끝나고 되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다음을 기다린다기보다 이 구간에 종지부가 찍히기를 소망한다.
3차 항암(AC)은 또 다른 매운맛이다.
고통은 다채롭고 지겹다. 지루함과는 차원이 다른.
이번에는 관절과 근육통이 너무 심했고, 항암을 시작하며 약 3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긴장성두통도 생겼다. 회차마다 부작용이 비슷하듯 다른데 3번의 경험으로 일정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어서 인지 ‘이러다 말겠거니.’하는 초연함도 생겼다.
겨우내 고삐 빼놓고 내린 눈이 춘삼월에 또 온다한 들, 아랑곳할쏘냐. 빳빳하게 세워져 있어도 내일이면 빠질 수염 마냥 금세 힘을 잃고 녹아 없어질 것을.
기다림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지난한 시간들을 재물로 연신 바쳐대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올 텐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시간과 같은 에너지를 재물도 안 바치고 안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심드렁히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동동거리며 기다린다는 것은 이미 경험한 것들의 긍정성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추위가 가고 따뜻한 햇살에 빛나는 연두잎이 손을 뻗어 인사를 하고 꽃이 피어나겠지. 그 꽃들을 보며 나는 연신 감탄하며 미소를 짓겠지.’와 같은 종류, 더 나아가 그를 빌미로 좋은 마음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던 경험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 그 위대한 것을 해내는 능력, 유독 올해의 봄을 마주하는 내가 대견하다.
1년이라는 일정시간을 두고 계속 반복했기에 계절의 기다림은 사실 뻔하다. 그런데 어찌도 이 뻔한 스토리를 심지어 정확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열광한단 말인가!
낮은 정확성과 상관없이 부풀어가는 이 설렘이 없어진다면 나는 이곳에 없는 존재가 되겠구나 싶다.
모두 봄의 전령사를 맞이하는 오늘이 되기를.
전령사를 조우하며 지은 미소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기를.
항암부작용 너희들이 아무리 난리 쳐봐라 건강한 일상이 저 봄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봄의 전령사들이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것을.
내 기다림은 뻔하지만 설렘을 담고 있으니
아서라.
너희의 그 난리부르스에 나는 눈썹 하나만 까딱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