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방암 수술 후 항암화학요법 치료기
뜨거운 건 잘 못 먹는다. 감각센서가 남달라(?) 뜨거운 건 아줌마 2n년차인데도 잘 못 잡고 못 먹는다. 생존형 잔머리만 늘어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는 얼음하나를 띄워달라고 한다. 그래야 뭐 어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너무 차가운 건 이 시려서 못 먹는다. 얼음을 씹어먹은지가 언젠가? 출산 후 이시림의 세계로 입성하여 한여름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녹여(얼음이 녹기를 기다려)마시는 편이다.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뭐 어찌 안 되는 사정이다 보니 뜨뜨미지근한걸 선호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서일까?
4차 항암일정 전 2주간 꼬박 어정쩡한 열에 시달렸다. 37.2도 - 37.9도를 왔다 갔다 하는 응급실 가기는 애매해(38도가 넘으면 폐렴우려가 있으므로 지체 없이 응급실로 가야 한다) 타이레놀을 하루 3,4알씩 먹으며 달랬으나 36도 언저리로 내려오지는 않아 온몸에 기운이 빠져있는 상태로 2주를 보냈다.
“이러다 4차 항암 못하는 거 아냐?”
매 끼니 입맛과 상관없이 열심히 먹고 있으나 미열과 매일 싸움을 하고 있어서인지 밑 빠진 독마냥 몸무게는 솔솔 빠지고, 날이 갈수록 기력도 떨어지는 양상이 거듭되던 어느 날 덜컥 겁이 났다. 백혈구수치가 항암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나올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제발 계획에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참 속없다 싶은 게 이제 항암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콧노래가 솔솔 나온다. 물론 주사로 끝나는 고통이 아닌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고통의 서막이 내려진다니!!!! 크~~~! 도망 안 가고 잘했다!
또 속은 없다 못해 점핑해서 4차 항암주사 후 3주가 지난 4월 만개한 벚꽃길을 거닐을 그 어느 날로 가고 싶어졌다. 못 말려.
* 4차 AC항암화학요법: 25년 3월 20일
4번의 항암주사를 위한 당일도 매번 달랐는데 이번만큼 복병이 가득한 적은 없었다. 자고로 피날레란 조용하게 넘어가면 안 되는 법이지! 기억에 남을 일들이 가득해야 나중에 웃으며 말할 수 있는게지, 암암! 그렇고말고! 이것도 추억이 될 거라며 감히 웃어본다.
속 없이.
++ 피날레선물 1. 피 뽑을 곳이 메말랐다.
“꽂을 때가 없네요. 팔이 왜 이리 딱딱하죠?”
진료 전 피검사에서 의료진이 혈관이 없다며 밑밥을 깔아주길래 복선인가? 하는 생각을 아주 조오금 하긴 했다. 한참을 두들기다 주사를 꽂았으나 피가 안 나와 한번 실패하고 처음에 살펴보며 안될 것 같다는 곳으로 다시 꽂아 어렵게 피검사를 마쳤다. 한 팔만 가능하다 보니 선택지가 거의 없어 보였다. 연신 힘들었을 거라며 꾹 눌러 주라는 말을 하셨는데 바늘이 들어갔던 두 곳 모두는 이미 멍들 상이었다. 자주 바늘을 꽂다 보니 사람인상은 몰라도 바늘 뺀 내 혈관상은 얼추 알게 되었다.
3차 후유증으로 근육통 때문에 고생 좀 했는데 혈관에까지 영향이 미친 건가? 그간 한 번에 쑥하고 끝났던 피검사와는 달리 역대급 가장 힘든 채혈이었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모두 용서가 되었다!
++ 피날레선물 2. 진료시간은 자꾸 밀리고
피검사가 늦어져서인지 진료순서도 뒤로 미뤄졌다.
피검사 후 신체계측하고 외래접수는 8시 30분에 완료되었다. 9시 예약이긴 하지만 백혈구수치를 봐야 하므로 혈액검사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평소보다 늦었으니 결과도 늦어지고 진료예정자에 내 이름이 올라간 건 9시 반이나 되서다. 예전 같았으면 진료 보고 나왔을 시간인데… 이것도 마지막요정의 짓이라 생각하니 웃음만 나왔다. 속 없이.
진료실에서 마지막 항암을 응원하는 경쾌한 담당 교수님의 목소리에 바늘이 내 팔을 막 휘젓고 지난 것 같았던 피검사결과가 수치상 안정적이었고 미열에 시달린 그간의 시간을 잘 보냈음을 알게 되어 안심되고 기뻤다.
“어머 선생님!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에요오오옷??!!”
뜨핫! 또 속 없이 명랑이 경칩날 개구리처럼 앞뒤안가린채 까꿍하고 튀어나와 버렸다.
이제 항암이 종료되므로 교수님과의 다음 일정은 기존과 달리 호로록 바뀌었다!
교수님은 다음 진료 전 또 피검사가 있을 거라 하신다.
뭐 어때요~ 항암만 아니면 오케이죠!
(아침 혈액검사실에서 팔에 막막 그랬을 때 너털거리며 마지막운운하던 나 어디 감?)
++ 피날레선물 3. 후속처리가 함흥차사
외래간호사실 인원이 모두 바뀌었다. 고로 진료 후 처리도 늦어졌다. 기존에는 진료 후 바로 처리되어서 다음 스텝으로 착착착 이동되었는데 오늘은 밖에서 기다리란다. 진료환자는 많고 외래 간호팀은 정신없고… 흠…
마지막이니까~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1시간 만에 다음을 진행할 수 있었다.
++피날레선물 4. 주사실 대기가 이러기 있끠엄끠?
암병동 통합주사실은 평소 10시면 들어갈 수 있었고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2,30분이 지나면 베드가 다 차서 대기를 해야 하는 거로 기억한다.
첫 단추부터 느림으로 시작한 오늘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주사실에 입성할 수 있었고 당연히 대기해야 했다. 그런데…1시간 반에서 2시간이란다!?????
저기요? 하아….
그래, 마지막 주사니까~
별생각 없이 별다방으로 가서 커피에 샌드위치를 시켜 짝꿍과 나눠 먹는 호사를 누려본다. 맛있네~
속 없이.
야무지게 간식을 먹은 뒤 꽉 찬 주사실 앞 대기의자에 자리하나를 얻어 오랜만에 밀도 높게 참여해 본다.
아~ 이렇게 기다리는 것도 해보네 싶다.
혹시나 하고 챙겨 온 책을 읽으니 은근 잘 읽힌다.
주사는 차갑고 어지럽고 먹먹했다. 변함없이.
오늘 맞은 주사자국이 세 개요. 모두가 각자의 모양으로 퍼렇다. 한 번도 안 그랬잖아요 헝헝헝.
++피날레선물 5. 점심으로 맛집 고른 거 아니었나?
어쨌든 끝!
멍자국 아리따운 팔을 들고 전날 미리 알아본 냠냠 집으로 출동!
당분간 어지럽고 울렁거려 제대로 못 먹을 테니 어서 고고!
이제껏 3차 때까지는 좋았던 거다.
아니! 난 늘 맛집요정이 함께해 지나가다 우연히 쓱 들어가도 맛집이었는데! 피날레요정이 오늘 강림한 게 분명하다.
식당으로 들어가기엔 애매한 시각 2시라 걱정하며 들렀는데 다행히 운영 중이었고, 브레이크 타임까지는 1시간이 채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는지 조리는 설익은 듯했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가득한 식당이었다.
깜찍한 피날레요정의 선물꾸러미는 다채롭고 신선해서 잊지 못할 요망꾸러미로 기억될 것 같다.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았으니 항암치료제와 내 몸이 해낼 절대시간을 보내야 함을 안다.
패턴이 있고 새로움이 있는 이 시간들.
분명한 것은 ‘딱 오늘 하루만 견디자’를 실천하면 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의 시, 바람, 해, 달 그리고 별이 준비되어 있다.
오늘 노래와 내일 노래는 분명 다르다.
그러니 오늘만 딱 오늘만 견디자.
* 다음 글부터는 소제목이 바뀝니다. <유방암 수술 후 항암화학요법 치료기> 긴 터널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