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유방암 수술 후 항호르몬 치료기
“뭐 이렇게 남은 게 많아?”
4번의 항암이 끝나고 매일 걱정을 달고 살게 만들어 죄송한 노부모님께 안심전화를 드리니 ‘항암이 끝났으니 이제 걱정 내려놓으시라는’는 내 말은 안중에도 없고, ‘아이고 매일 고단해서 어쩌냐’며 다음 스텝 걱정을 한 아름 끌어 놓는다.
부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던 어린 시절의 내가 누굴 닮은 것인지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유방암은 은근히 복잡하다. 유방암은 기수에 서브타입까지 고려하면- 표준치료과정을 거칠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다른 방식의 치료방법과 스케줄이 나온다.
그래서 유방암은 제각의 방식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은 수월히 넘어갔대’라는 말이 화딱지 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나는 그 환자와 타입이 달라서 치료방법도 달라요.).
나의 경우는,
침윤성 유방암 2기, 림프절 전이 없음.
서브타입: 호르몬수용체 양성, HER2 음성.
수술이 먼저 치러졌고, 이후 항암AC화학요법 4회를 마쳤다. 이제 다음 터널은 방사선치료와 호르몬치료가 남았다.
이렇게 한 두 줄로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 허허.
글이 얼마나 매몰찰 수 있는지 순간 온몸에 몸서리가 쳐진다.
호르몬.
‘갱년기랑 사춘기랑 누가 이기나 보자’
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요상한 놈.
난 호르몬수용체 양성타입이므로(여성호르몬에 반응해서 암을 생성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관리가 필요한 주요 대상은 바로 요놈,
호. 르. 몬.
항호르몬치료를 위해 교수님을 뵌 날(ac항암 4차 +2주) 뵙기 전 피검사를 했는데, 백혈구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다. 다행히 열은 없으나 너무 낮으니 열이 오르면 지체 없이 응급실로 오라고 하셨다.
어쩐지 계속 힘들더라고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시작된 항호르몬치료의 설명과 계획.
항암을 패스한다, 항호르몬제를 패스한다는 행운은 내게 없다.
공격적인 호르몬을 누르기 위해 내게 실시될 계획은,
여성호르몬 조절을 위한 타목시펜 매일복용 5년, 그리고 난소를 보호하기 위해 졸라덱스주사 4주 간격 2년.
항호르몬제의 부작용은 갱년기증상에서부터 체중증가, 자궁내막암에 혈전까지 뭐가 또 이리 다채롭단 말인가!
이건 도대체 뭘 막으려고 하는 건가 싶은 내용이다.
어디까지나 부작용이니 나에게는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졸라덱스주사를 맞으러 암병원통합주사실에서 대기를 하며 찾아봤더니 AC항암치료만큼이나 이름값을 한다길래 마음의 준비를 했다. 주사실 친절한 간호사선생님도 바늘이 두꺼워 아플 거라 설명해 주었고, 피하지방에 주사하는 거라 배를 연신 조물조물해 준 뒤 주사를 뙇!
눈이 번쩍 뜨이는 통증이지만 ‘항암치료도 넘었는데’싶은 통증이다. 통증을 대하는 기준이 ‘항암치료’가 되어서인지 견딜만했지만 4주 후에 맞고 싶지는 않은 그런….
피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 한참을 지혈한 뒤 주사실을 나오며 4주마다 2년이니 이제 23번 남았구나 생각 들었고 무언가 묘한 소속감이 솟아 올라왔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오고 가는 발걸음에 애정을 담아야지 싶다.
암과의 여정을 ‘생활 습관 관리’ 차원에서 생각해서 그런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문제는 ‘회귀본능’이다.
매일 아침 복용할 타목시펜은 1825일 동안 동일시간을 유지하려면 몇 시가 적정한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지금이야 수술과 항암치료로 수면문제가 불거져 새벽에도 눈이 떠지지만 아침잠 많은 내가, 특히 주말에 몰아자기 선수인 내가…
주말 모닝 꿀잠을 5년간 반납할 생각 하니 뭔가 억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