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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여행 중 - 두 개의 창과 수만 개의 시선

4. 유방암 수술 후 항암화학요법 치료기

by Psyber Koo

집… 집이란 무엇일까?

뭐 하는 것도 그다지 없는데 어째서 매 순간 나는 ‘집에 가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까?

하루 중 대부분은 이곳을 떠나 있고, 들어와서 하는 것이라곤 고작 식사하기, 씻기, 고양이랑 놀기, 책 뒤적이기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실 사용 시간은 길어야 4, 5시간 남짓이다. 하루의 1/6을 보내는 게 고작인데 어째서 ‘집 값‘은 그리도 오르고 은행이 아니면 집을 얻을 수 없단 말인가?


삼 년 전 아이가 대학 진학으로 방을 비운김에 십 년 넘게 살던 복작이는 곳을 털어내고 조금 외곽에 위치한 큰길 앞에 산을 둔 곳으로 이사했다.

거실의 큰 창은 막힘없이 달리는 외곽도로와 산을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창은 도심을 볼 수 있어 마음에 쏙 드는 창을 가진 곳이다. 하지만 해 뜨면 나가고 해지면 들어오는 직장인의 삶이라 주말이 되어야 고양이와 함께 누워 ‘가을볕 고추 말리기’ 마냥 대자로 누워 이리저리 전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집순이는 주말에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방구석에 누워 산과 도심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찐 집순이’가 될 수 있었다.


항암치료에 들어가자 운신의 폭이 좁아져 주말집순이는 매일의 집순이가 되었고, 그날마다 다른 온기를 지닌 창햇살에 몸을 펼치고 후라이팬 위에 두부마냥 이쪽저쪽 뒤집어가며 멍하니 산 혹은 동네를 바라본다. 동네 어귀산이라 매일 등산객이 있어 창에 붙어 유심히 산을 바라보면 그때마다 하산하는 사람, 혹은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날에도 어김없이 올라가는 사람. 자전거를 가지고 내려오는 사람. 캄캄한 새벽 작은 등을 머리쯤에 키고 올라가는 사람.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로 저 산을 넘고 있겠지.

고양이처럼 창에 붙어 외곽도로를 빠르게 쌩하고 지나가는 차종 맞추기 놀이를 해보고 ‘무슨 음악을 듣고 있으려나’하며 답도 없는 문제를 푸는 내가 웃겨 괜스레 휴대폰을 꺼내 내 플레이리스트를 뒤적거려 본다.


해가 잘 들어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따뜻하고 밝은 거실은 막상 매일 사용자가 되어보니 눈부심이 심했고, 건조했다. 거실의 구석에 그늘이 생기는 곳에 독서자리를 만들기로 하고 쇼파를 이리저리 재배치했더니 시간에 따라 숨을 곳이 생겨 독서에도 그만이고 내 취향에도 딱 맞는 편안한 한 귀퉁이가 되었다. 이곳 대부분이 은행 것이지만 여기 요 귀퉁이는 은행담당자 앞에서 내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해를 피해 숨어 있고, 내 앞에는 해를 보는 것인지 나를 보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창의 햇살을 마주해 빛나는 고양이를 구경하는 맛도 제법 근사하다.

그러니 우리집 거실 뷰는 세가지.

산뷰, 도심뷰, 고양이뷰.

이중에서 최고는 당연히 냐옹이뷰!



햇살을 받으며 말리기를 하던 나는 이제 해를 피해 책을 읽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쇼파에 그늘이 생기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시선이 창을 향하면 그때마다 상이하게 다른 두 곳의 모습. 학교와 도심, 달리는 차와 산.

무릎 위에 책을 덮어둔채 수만 가지의 생각이 오간다. 내가 저곳에서 온 거라고? 과연 나는 저곳으로 갈 수 있을까?




나중에 알게 되었다면 너무 슬펐을 거라는 친구의 말에 아픔을 나누는 것에도 타이밍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아직 기쁨도 고통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내가 버겁다. 몸 근육이 솔솔 빠지고 있어 마음도 덩달아 따라가나?


달이 차들어가는 2월의 오후 2시.

며칠째 햇살에 봄내음 한스푼 담았음을 진심을 다해 최고조의 빛깔로 노래하는 시각.

그날도 아침부터 해가 좋았기에 이 정도면 봄조각을 직접 만나보면 어떨까 하여 몇 번에 걸쳐 시도해 봤지만 2번을 실패했다. 준비하는데(겨우 씻고 옷 입는데) 기력을 바쳐 문열 힘이 없었다. 이제 겨우…라는 말도 밍구시러워서 못 하겠다. 체력이 이정도 라니 허허.

그리고 마지막 도전. 막상 나가니 내가 창을 통해 본 햇살 길로 가려면 음지를 지나쳐야 했고, 바람에 꽁꽁싸맨 머리가 시려와 금새 발길을 돌렸다. 5분이 다였다. 그러나 5일을 아팠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올라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두통이 문을 두드리고 열이 올라온다. 반복하다 보니 어떻게 대처하는 게 효율적인 방법인지 대충 찾았다.

어서 먹고(밥 혹은 간식) 약 먹고 등을 바닥에 붙이기. 급작스런 한기에 발이 시리고 온몸이 떨리지만 잠을 청하기. 그렇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이 추위가 가시고 열이 내리길 기다리기. 한숨이라도 잠들 수 있기를 기도하기.

다행히 38도가 넘는 열은 없었기에 응급실로 갈 일은 없었다. 약물 부작용 중에 고열이 있는데 38도 가 넘으면 폐렴으로 진행될 수 있어 스스로 처치 말고 바로 응급실로 오라고 했기에 열 잡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지겹다. 벌써.

참기, 기다리기라면 표시 내지 않고 잘하고 오래 달리기도 제법 자신 있었는데 내가 변했나? 좀 달라졌나 보다.

항암치료는 두 번만에 지겨워졌다.

괜찮은 듯 다시 재생되고 되돌이표처럼 몰아쳐오는 이 고단함과 힘듦이 지겹다.

고통의 푸가는 언제 끝나는 걸까? 끝이 있기는 할까?

절대시간의 법칙은 내게도 적용되는 걸까?


명랑이고 힙이고 뭐고 됐고!

하루만 버텨야지.

딱 하루만 더.

어느덧 내일은 3차 항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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