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방암 수술 후 항암화학요법 치료기
난 암환자를 가까이서 접해 본 적이 없다.
이제는 까마득한 대학원시절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에 대한 지도교수님의 연구가 있었으나 그 당시 난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 그리고 범죄 쪽에 더 에너지가 기울어져 있었기에 교수님께 데이터결과를 받아 통계처리를 돕고 완성된 논문으로 본 정도가 다였다.
마음챙김명상MBSR 결과가 좋구나. 뭐 그 정도였다.
그 시절 명상에 대해 큰 울림은 없었지만 지도교수님을 따라 꾸역꾸역 명상지도자과정까지 바쁜 시간 쪼개어 수료한 것은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 되뇐다(세상풍파에 찌들면서 내 마음 챙김에 큰 도움이 되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외래로 뵌 환자들의 경우 몇 있었던 것 같지만 모두 터널을 지나온 분 들이었고 찾아온 증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온 것은 아니었다. 가족력도 없고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없었다.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건너의 대상이라 아마 그분의 터널의 소식만 듣고 안부와 응원정도만 보낸 것 같다. 그랬던 것 같다.
그때 그렇게 모자라고 무심히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감히 가늠하기도 어렵고 어설픈 응원을 할 수도 없으니 그러했을 것이다.
직접 이 터널로 들어오게 되니 한발 한발 내딛는 모든 것이 생경하고 두렵다. 새로운 길이니 그저 배운다는 심정으로 이 발걸음을 조정하며 내 걸음보폭으로 만들어 옮겨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2차 항암화학요법은 1차와 비슷할 줄 알았지만, 같은 듯 다른 모습이다. 1차 때와는 달리 머리카락이 빠지는 중인데 한 번에 빠지는 게 아니다 보니 내 주변이 지저분해진다. 빠지는 머리카락은 모낭이 없어 앞뒤가 구분가지 않으며, 잡아당기는 족족 손에 걸린다. 매일 빠지는데도 아직 남은 머리카락이 하얀 두피 위에 옅게 펼쳐 있다. 3mm로 미리 자르지 않았다면 영화캐릭터 골룸의 형상이었을 것 같다.
열 손가락이 붓고 손가락과 손톱이 까매진다. 발가락도 덩달아 부어오른다. 내 경우는 어지러운 양상이 가장 힘든 사항이었는데 이는 1차 때와 비슷했다.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고 치료받은 이력이 있어 요양병원 담당주치의 선생님과 꾀나 열심히 상담하며 추이를 살펴보았다.
최근 5년간 건강검진 결과를 체크하고, 취약리스트를 추려보았더니 항암화학요법에서 무너지고 회복되는 순서가 이해되었다. 내가 나를 알아야 접근이 용이해진다.
증상 다음으로 신경 쓴 것은 식단이다.
항암전투일정은 정해져 있으니 싸움터에 내보내기 전에 재정비는 필수다. 솔직히 말하면 이전엔 ’마음관리‘에 편향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몸’에 집중하기로 했다. 안 하던 것을 해야 한다는 것. 기존의 습관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뭐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편이며 아침저녁은 집밥을 선호하며 나름 신경을 써왔다고 하지만 배달음식을 적게 먹었을 뿐이지 엉터리 수준이었음을 알기에 요양병원에서의 식단을 참고했다. 암병원에서 있었던 식이 교육 시 제언한 데로 난 그간 너무 육식위주였다. 가족 중 누구도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리 시 냄새난다는 이유로 어릴 적 늘 엄마가 밥상에 올려주었던 고등어는 내가 차린 저녁상에 올라간 적이 거의 없었다. 단백질은 거의 육류로 채웠는데 항암을 하니 돼지고기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육류가 아니더라도 생선이나 두부 위주로 손바닥만큼 매 끼니 섭취하라는데… 그렇다고 당장 생물을 사서 엄마처럼 해낼 재간은 없다. 인간이 어디 한 번에 바뀌겠는가? 냉동실에 얼려둔 제주산 간고등어가 있지만 자린고비마냥 내내 얼려만 두다 일정기간이 되면 폐기하고 있으니… 틀려먹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방법을 찾아야지!
유방암의 터널에 들어선 것을 자각하면서부터는 저절로 ‘왜’보다 ‘어떻게’를 더 부르짖고 있다.
어떻게 하지?
어느 날 요양병원 식단에서 나온 연어구이를 보고 ‘앗!’하는 소리와 함께 쿠팡앱을 열었다.
유레카! 뭔가 접해봐야 아이디어가 나온다니까!
생선이 늘 생물인 줄 알았는데 완제품이 있다! 아이들 먹이기 좋게 나온 조리식품이 있고, 그건 레인지에 돌려먹으면 된다는 제품을 찾았다!
그리하여 그간 쇼핑리스트에는 한 번도 담아본 적 없는 것들이 넣어지기 시작했다.
잡곡, 생선 등등…
내 장바구니에 이걸? 하며 담았지만 잘 쓰고 있는 몇 가지를 적어본다.
이 모두는 온라인으로 받았다. 난 후유증으로 어지러움이 지속되어 밖에 나갈 수 없었기에… 쇼핑의 즐거움인 직접 고르는 맛은 떨어졌지만 어쩌랴. 다음날 문 앞에 배송이 척하고 되는 세상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
1. 실리콘 찜기
과일도 껍질채 먹는 걸 좋아하고 야채도 생으로 먹기를 더 선호하지만 항암 이후 소화기 쪽이 약해져 되도록이면 익혀먹는 게 나을 것 같아 긴 사각형의 수분받침이 있는 찜기를 구매했다. 생선 한팩 뜯어서 넣고 여러 야채를 함께 넣어 소금 후추 창창뿌리고 레인지에 돌리면 끝! 육류에 비해 소화가 훨씬 수월하다. 실리콘 재질이므로 바로 씻고 열탕 소독하며 쓸 수 있어 깔끔하다.
2. 손발톱 영양제
원래 손발톱이 두껍고 잘 자라는 편인데 항암을 시작하자 뿌옇게 손톱 주변이 일어나고 까맣게 자란다. 이것도 부작용 중 하나라고 했다. 암병원에서 간호사님이 팁으로 알려준 올* 구매 1위 제품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주변에 허옇게 일어나던 발톱이 잠잠해졌다.
3. 아기용 헤어 & 바디 세정제, 아기용 로션
인간이 가진 가장 큰 감각기관 피부. 피부가 말도 못 하게 아프다. 껍질이 까진 것도 아닌데 들떠 있는 느낌이다. 머리 감을 때 손이 두피에 잘 못 닿았다가 소름이 끼친 적도 많다. 기존에도 비교적 순한 제품을 쓰고 있어 괜찮겠거니 했는데 항암 후 피부가 울긋불긋 해지길래 베이비라인으로 모두 바꾸었다.
4. 캡브라런닝
수술 후 가슴 및 겨드랑이 팔 쪽 근육이 캄브리아기 대륙처럼 몇몇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 같다. 재활의학과 협진 시 선생님은 수술을 위해 건드렸으니 당연하다며 아프다 느껴도 멈추지 말고 운동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힘들다. 철판을 두른 것 같은 무거움에 피부는 감각이 둔해져 있고 쥐포처럼 딱딱하게 말라있어 로션도 자주 발라주어야 한다. 기존의 속옷도 스포츠스타일이나 노와이어 제품이었지만 입으려니 모두 불편했다. 봉제선이 소재가 끼임이 아무튼 불편하다. 편하다 생각했건만 지금은 아니었기에 모두 넣어두고 뱀부나 모달 소재로 골랐다. 처음엔 몇 개만 샀는데 항암하고 오면 매일 밤 식은땀이 많이 나 위생을 위해 한번 더 구매해 매일 1-2장씩 갈아입는다.
5. 내 취향을 담뿍 품은 블루투스 스피커
부작용으로 인해 두세 시간 단위로 잠에서 깨는 일상인데 그러다 보니 새벽에 깨어 재수면에 들어서지 못한 채 멀뚱하게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 시간에 책과 음악 그리고 따뜻한 레몬차를 곁들이니 마음챙김명상이 따로 없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매번 사은품으로 받은 투박한 것만 써봤는데 나만을 위한 응원선물로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의 제품을 골랐더니 새벽명상루틴에 생기가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있는데 뭘! 했을 텐데. 허허.
6. 발지압용 홈트 제품
겨울이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해서 밖을 나갈 수 없어 답답하다. 몸이 좀 회복되길래 베란다에 있는 기존 실내자전거를 타봤는데 10분을 채우고 3시간을 앓았다. 평소 주 2회 한 번에 30분은 채웠는데 지금 내 몸은 예전이 아니니.
식사를 차리고 가볍게 청소를 하는 정도가 활동량의 전부라 하지가 붓는 것 같았다. 서서 10분 아니 5분이라도 걷고 싶어 발지압이 있는 매트를 샀다. 층간소음을 고려해 약간의 에어를 넣는 제품으로 구매했더니 올라가 균형을 잡는 것만 해도 운동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찌뿌드등하다. 온몸이 부어서 그렇겠지만 뾰족이 오돌토돌 지압제품을 쓰면 지금의 피부엔 무리가 되므로 돌기가 약한 것으로 선택했다.
언제나 기준은 ‘지금의 나‘이다.
7.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생오일이라고는 들기름, 참기름만 즐겼는데 과일 야채샐러드를 먹거나 통곡물빵을 먹을 때 생올리브유를 추천하길래 담아보았다. 아직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으나 나름 먹을 만하다. 추가로 선물받은 발사믹 오일을 함께 휙휙뿌리니 더 먹을 만 했다.
8. 면비니(수면용)
외출은 둘째치고 집에서 쓸 비니가 필요하다. 겨울이라 그런지 시렸다가 땀이 났다가 지 맘대로다. 체온유지를 위해 면으로 된 부드러운 비니를 4, 5개 구매했다. 면손수건이 있는데 사이즈가 제 각각이고 비니로 쓰는 방법을 잘 몰라 구매했다. 항암주사를 맞은 첫 주에는 이겨내느라 식은땀이 많이 나서 수면 시 목에 면손수건을 두르면 조금 쾌적하다. 민머리에 손수건이라니 부쩍 신생아가 된 기분이다.
9. (아직 바구니에 담겨 있는) 가열식 가습기
1차 항암 때부터 담아두긴 했는데 영 주문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관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2차 항암을 하니 코털도 빠져서 코안이 다 헐고 매일 피딱지가 쌓인다. 습도 관리가 필요한데... 수건 널기로 만족스럽지 못해 주저하는 중이다. 요양병원 퇴원하는 날 주문해야지!
식단은 가족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고르고 준비하고 다듬는 일이 좀 많은가. 신선도가 필요한 야채 과일 장보기는 짝꿍이 일임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일러주는 게 귀찮아 주방에 대해 한 번도 맡긴 적 없었는데 날이 갈수록 늘고 척척 잘 해내는 거 보니 대견하고 고맙다. 25년 우정을 향하는 우린 당도한 이 터널을 계기로 각자의 영역에서 나와 서로를 향해 조금씩 성장하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과거 육아때와는 다른 재질이다. 이 모든 경험을 귀하게 여길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