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교 Aug 24. 2023

왜 하필 파리냐고 물으신다면

청춘을 간직하는 도시에서


'청춘을 간직하는 도시'에서


파리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고 싶다. 그 생각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젊은 시절을 파리에서 보냈다던 한 중년의 작가가 내뱉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파리는 변하지 않는 도시라서, 몇십 년이 지난 뒤에 돌아와도 언제든 자신의 젊은 날을 만날 수 있다고. 중년이 된 지금도 파리에 가면 여전히 20대 시절 거닐던 거리와 앉아서 책을 읽던 벤치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흘러가는 젊음을 붙잡고 싶다는 건 이룰 수 없는 꿈이겠지만, 변치 않는 도시에 내 시간을 일부를 맡겨두고 오는 것쯤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자 괜히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때부터 나에게 파리란 '청춘을 간직하는 도시'가 되었다.




낭만과 담배의 도시


스무 살 이후,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매년 여행을 다니며 10개국을 넘게 둘러보았다. 그중에서도 파리에는 두 번이나 갔었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파리는 작지만 볼거리로 꽉 차있는 도시여서, 두 번 다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돌아와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리의 매력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파리는 다녀온 사람들의 평이 현저하게 갈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낭만과 사랑의 도시라며 파리라는 이름을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누군가는 개똥과 노상방뇨의 도시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지하철은 고대 유물처럼 삐걱거리며, 공중화장실 같은 건 찾아보기도 힘들다고.


나는 전자의 사람이다. 내가 무던한 탓일지도, 지독한 낭만주의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파리의 길가도 지하철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개똥이나 노상방뇨도 딱히 마주친 기억이 없다. 오히려 길거리 흡연이 보편적인 도시라는 게 비흡연자의 입장에서 문제라면 문제였다. 파리 사람들은 담배를 주식처럼 피워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빵과 길빵의 도시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변하지 않는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과거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면 온갖 요란한 소리가 나는 돌길이라든지, 엘리베이터 대신 빙글빙글 펼쳐진 계단 같은 것들. 그런 불편함을 마주하다 보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1세기인데, 이렇게까지 안 변할 일인가?"라는 불평이 절로 튀어나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러한 파리의 모든 단점은 단 한 가지 이유로 상쇄되었다. 바로 음식이다. 한국에만 머물 때에는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감사함을 몰랐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매 끼니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인은 음식에 진심인 민족이다. 안부를 물을 때는 "밥은 먹었어?"라고 묻고, 누군가 재수 없게 굴 때는 "밥맛 떨어진다!"라고 말하며, 심지어 친구가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도 그냥 말리는 게 아니라,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말린다고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애국심을 배제하고 바라보아도 한식은 영양성분도 훌륭하고 맛도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미식을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 스위스에서 한 그릇에 2만 원을 주고 케첩맛이 나는 스파게티를 질겅질겅 씹으며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했었다.


반면 프랑스는 한국만큼이나 음식에 진심인 나라다. 아무 곳에나 불쑥 들어가 크루아상이나 파스타를 시켜도 대체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파리에서 머무는 내내 입이 즐거웠다. 음식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음식이 안 맞는 나라에서 지내는 건 고역이다. 장기여행으로 갈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이 공존하는 미식의 도시 파리는 내게 최적의 여행지였다.




에펠탑 너머의 나날들


모두가 그렇듯, 나 역시 파리에 처음 갔을 때는 에펠탑을 자주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철탑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각마다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조명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파리에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두 번째 여행에서는 '에펠탑 너머의 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버스킹을 하는 할아버지, 오스만 양식의 건물 사이로 스미는 햇살, 공원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영어로 된 간판도 메뉴판도 없는 골목길의 작은 식당에 들어가 가정식을 맛보거나, 기차에서 앞자리 강아지와 인사를 나누는 그런 나날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이 도시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만일 다시 파리에 오게 된다면, 이런 작고 소중한 여유를 더 많이 누리리라. 일정에 쫓기며 이 도시를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지는 않으리라. 파리를 떠나면서 꼭 그런 생각을 했었다.





몇백만 원을 써서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이유가 청춘을 간직하고 싶어서라니.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기어코 파리에 다시 가야겠다고, 그곳에 아주 잠시라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20대를 변하지 않는 도시에 두고 오기 위해서.




- 작가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 <열다섯, 그래도 자퇴하겠습니다> 구경 가기

   알라딘 | 교보문고 | YES24 



이전 02화 갑자기 파리에서 한 달을 살자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