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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Aug 11. 2023

20대 초반, 여행에 천만 원을 썼습니다.

금수저도 욜로족도 아니지만요


어릴 적 내 꿈은 넓은 세상을 구경하는 거였다. 돈이 많이 드는 꿈이었다. 그래도 스무 살 때부터 어떻게든 매년 여행을 갔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까지. 내가 20대 초반을 보내며 3년간 여행에 쓴 돈만 해도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돈이 많이 드는 꿈인 건 일찍이 깨달았는데, 이렇게까지 많이 드는 꿈인 줄은 미처 몰랐던 거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사람, 금수저나 욜로족 둘 중 하나겠군.





5천 원의 가치


십 대 시절부터 돈을 벌어 여행 경비를 혼자서 모았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에게 주어진 한 가지 행운은 꼭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다. 비록 금수저는 아닐지라도, 내게는 '양친 건강하시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혼자 벌어 혼자 쓸 수 있다'는 천혜의 환경이 주어졌다는 걸. 내가 번 돈을 나 혼자 쓴다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당연하지만은 않은 일이니까.


어쨌거나 나는 일찍이 제법 주체적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고, 열일곱부터 용돈을 받는 대신 항상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친구들이 학교에 있을 평일 오전, 나는 카페부터 전단지, 과외, 빵집까지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병행했는데 내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종일 서있느라 팅팅 부은 다리로 집에 돌아와 다시 공부하는 일을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반복했다.


덕분에 돈이 귀하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단돈 5,000원도 마구 쓸 수가 없었다. 당시 시급이 5천 원 정도였다. 그러니 5천 원을 쓴다는 건, 매장 바닥을 벅벅 닦던 나의 한 시간을 쓰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렇게 소중하게 번 돈을 아끼고 또 아낀 다음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모아뒀다.




'돈 드는 취미'가 없어요


천만다행으로, 나는 돈 드는 일에는 딱히 취미가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덕질을 하거나, 영화나 뮤지컬을 N차 관람하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하다못해 소설이나 웹툰을 결제해서 보는 취미도 없다.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지도 않고, 심지어 친구를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커피도 잘 마시지 않는다. 택시 타는 걸 싫어해서 교통비도 많이 쓰지 않는다. 술이나 담배도 딱히 하지 않아 자잘한 지출도 없는 편이다.


종종 책을 사는 게 그나마 가장 큰 지출이긴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려볼 때도 많고, 가끔 멋진 연주자가 내한할 때면 리사이틀을 감상하지만 그마저도 꼭 VIP석을 고집하는 정성은 없다. 주된 취미인 글쓰기와 음악 감상은 사실상 무료에 가깝고, 운동마저도 비싼 PT나 필라테스 대신 홈트를 하는 편이다. 쇼핑을 좋아하지만, 충동구매는 거의 하지 않는다.


덕분에 큰돈을 번 적은 없어도 버는 돈의 대부분을 저금할 수 있었다. 가끔 돈이 부족할 때면 공모전에 닥치는 대로 나가서 소박한 상금을 끌어모았다. 이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한 해를 보내다 보면 연말에는 여행을 갈 수 있을 만큼의 여유자금이 모여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년 12월마다 나를 위한 생일 선물로 여행을 택하곤 했다.


3년간 대략 천만 원을 썼으니 1년에 약 333만 원을 쓴 셈이고, 다시 한 달로 바꾸면 달에 27만 원 꼴이다. 즉, 나는 매달 27만 원의 돈을 모아서 연말마다 한 번에 털어내는 사람이었다. 내게 여행이란 힘들게 번 돈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쓸 수 있는 최고의 해방이었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창구였다.





다시 떠나야 할 순간


그렇게 20대 초반 내내 1년 단위로 돌아오는 연말 여행 루틴을 고수했으나, 이 역시도 코로나로 인해 종말을 맞는 듯했다. 지난해 하늘길이 열렸다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해외로 떠날 때도 나는 한국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쫓기듯 불안하게 다녀오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전쟁의 여파로 항공권도 물가도 배로 올랐는데, 그 값을 주고 고생을 배로 하게 될까 두려웠다.



결국 모두가 마스크를 벗을 때까지 나의 여행기는 잠정 중단되었다. 더 이상 코로나가 심각한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여행을 향한 그리움이 다시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리움이 차오를 때면 무작정 핸드폰을 들어 스무 살 무렵 지구 반대편에서 찍었던 사진을 수없이 돌려보았다.


사람 한 명 몫도 겨우 하던 시절이었다. 세상을 배우느라 바빠 너무 팍팍한 일상을 보낸 나머지, 여행을 가는 게 거의 유일한 희망이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못생기게 나왔다며 갤러리에 꽁꽁 숨겨두었던 사진마저도 지금 보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사진을 넘겨 보던 어떤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제는 정말 다시 떠나야 한다는 걸. 나는 과거의 나에게서 행복을 빌려오려 하고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300만 원을 썼습니다


그렇게 어디로, 어떻게 떠나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파리, 로마, 프라하처럼 이미 갔던 곳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또 갈 수도 있었다. 과장 조금 보태자면 그곳에서의 시간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아니, 그래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곳에 가는 게 우선 아닐까? 포르투나 두브로브니크, 산토리니는 어떨까. 물가가 싸다는 조지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여행을 하자고. 그렇게 몇 시간을 꼬박 앉아서 여행 계획을 마무리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코로나와 전쟁의 여파로 항공권 값이 오를 대로 올라, 비행기값에만 거의 200만 원을 써야 했다. 온갖 호텔 사이트를 뒤져서 숙소 몇 군데를 찾아 결제하고 나니 3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느라 후끈후끈 열이 나는 두 눈에 잠시 손을 올려두었다. 아직 정해야 할 것이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충 어림해 봐도 앉은자리에서 벌써 300만 원을 썼다. 맞다, 자유여행이란 이런 거였지. 한정적인 돈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 한정적인 시간을 팍팍 써야 하는 것! 오랜만에 마주하는 여행 준비의 생경함에 눈을 질끈 감고 노트북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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