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끊임없는 저질체력의 굴레에 빠져있었다. 운동을 안 하니 체력이 약한데, 체력이 약하니 운동하는 게 힘들었고, 그래서 운동을 안 했더니 체력이 점점 더 약해졌다. 게다가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종일 일하고 나면 운동에 쓸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무용 의자에 빨래처럼 널브러져서 씻으러 갈 체력이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준비한 체력이 소진되었습니다
첫 수영 강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린 배를 붙잡고 미친 듯이 식사를 쏟아 넣은 뒤, 다시 일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펼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평범한 식곤증과는 차원이 다른 졸음이 몰려왔다. 누군가 내게 마취총을 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분명히 글을 써야 하는데 뇌가 멈춰버렸다.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어제 잠을 설쳤던가? 왜 이렇게 졸리지? 그 순간 머릿속에 새로운 사실이 떠올랐다. 안 움직여 인간인 내가 오늘 무려 50분 동안 수영을 했다는 걸. 사실 말이 수영이지, 아직 제대로 된 영법을 배우지도 않은 상태였기에 물장구를 조금 친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내 몸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준비한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 오늘 영업 종료합니다!"
그렇게 전원이 꺼진 사람처럼 침대 위로 픽 쓰러져 낮잠을 잤다. 컹! 소리를 내며 다시 눈을 떴을 때는 3시간이 흐른 뒤였다. 잠을 잤다기보다는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오후 내내 글을 쓸 계획이었는데 허망하게 하루를 보내버렸다.
운동을 하면 뇌가 활성화되어서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원래 우리의 뇌와 몸은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사실 알고 보니 그건 이미 어느 정도의 체력과 근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최소한의 체력과 근력이 생길 때까지는 그저 종이인형처럼 팔랑거리며 하루를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이불속에서 차가운 물속으로
운동한 다음날은 언제나 눈 뜨기가 두려웠다. 꾸준히 운동하면 통증도 덜해진다지만,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안 움직여 인간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평소 근육을 거의 쓰지 않던 나로서는 각종 근육통에 대한 면역을 기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유산소라고 생각했던 수영은 사실 지구력과 근력을 고루 요하는 운동이었고, 첫 수영 강습 다음날에는 엉덩이와 다리가 욱신거렸다. 바퀴 달린 사무의자에 의지해 하루 동안 요양을 하고 나니 다시 수요일이 왔다. 수영하는 날이었다.
오전 10시 수영을 가기 위해서는 늦어도 9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수영복과 수건도 챙기고, 수영장까지 이동하고, 샤워도 해야 하니까. 당시는 겨울이었는데, 따뜻한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갈 다짐을 한다는 게 참 쉽지 않았다. 사실 야행성인 나에게는 9시 기상부터가 힘든 일이었다. 알람 울리는 소리에 눈을 뜨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늘 수영 가지 말까? 괜히 이불속에서 발가락을 한 번씩 꼼지락거려본다. 아, 이대로 잠들면 정말 포근하고 행복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해내야만 했다. 이미 수영에 필요한 준비물을 사는데 10만 원을 넘게 썼고, 수영장에 강습비 5만 원을 내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번에도 포기해 버리면 더 이상 내 인생에 운동이라는 가능성은 없을 게 분명했다. 땅에서든 물에서든 움직이는 버릇을 좀 들여야 했다. 그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끙 소리를 내며 힘겹게 두 발을 침대에서 먼저 빼내고, 수영장에 갈 준비를 했다.
내 몸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연한 얘기겠지만 수영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 다르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잡을 때까지 발차기와 손동작을 반복시키는 강사가 있는가 하면, 자세는 나중에 잡아도 된다며 일단 영법을 가르쳐주는 강사가 있다. 우리 선생님은 후자였다. 진도가 느리면 흥미가 떨어진다는 가르침 아래, 두 번째 날부터 바로 팔 동작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물에 뜰 줄 모르기 때문에 킥판을 꼭 붙잡은 상태였다.
"팔 구부리지 마시고 쭉- 돌려서 다시 킥판 잡으세요. 그리고 옆으로 고개 들어서, 파-! 다시 고개 숙이고..." 팔을 돌리는 사이에 얼른 숨을 쉬고 고개를 집어넣어야 했는데, 나는 이 동작이 연속적으로 되지 않아서 자꾸 삐걱거렸다. 호흡과 팔 동작 중 하나에 신경을 쓰면 나머지 하나가 잘 안 됐다. 팔을 잘 돌리면 숨 쉬는 걸 까먹어 컥컥거렸고, 웬일로 숨을 잘 쉬면 팔이 이상한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땅에 사는 포유류인 주제에 물에 오래 머물겠다는 게 욕심이었을까. 내 몸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팔에 스스로 머리를 얻어맞은 뒤 그런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이 우스꽝스러운 나의 동작을 관찰하더니 말했다. "고개를 옆으로 빼서 숨을 쉬어야 해요. 그리고 앞을 볼 생각을 하지 말고, 숨 다 쉬었으면 얼른 팍 들어가요! 앞을 궁금해하면 안 돼!" 한평생 앞을 보고 살아왔건만, 갑자기 앞을 궁금해하지 말라니! 물속에서 수경을 낀 채 바닥만 내려다보려니 답답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에 따르고 나니, 내가 나를 때리는 그런 기행은 더 이상 벌이지 않게 되었다. 남은 건 연습, 또 연습이었다.
여기에서 뛰어내리라고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더 이상 나 자신을 때리지도, 물을 먹지도 않은 채로 기본적인 자유형 비슷한 걸 흉내 낼 수 있었다. 물론 두 손은 킥판을 꼭 붙잡은 상태였지만. 이 킥판이 나의 생명줄 같았다. 앞서 밝혔듯 내가 킥판 없이 떠있을 수 있는 한계점은 격렬한 개헤엄과 체력 소진을 동반한 10m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제 킥판은 뒤에 올려두시고, 출발할게요." 선생님이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애착인형을 빼앗긴 강아지처럼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빌딩 위에서 그냥 뛰어내리라는 말 같았다. "그냥요? 이대로요?" 내 당황한 목소리에도 선생님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대로 킥판도 없이 출발하면 점점 가라앉아 물을 잔뜩 먹을 게 뻔한데. 그러나 저 멀리서 다른 회원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발을 구르고 출발했다.
'어? 나 지금 물에 떠있잖아!' 당시 내가 했던 생각은 딱 이거였다. 킥판도 없이, 격렬한 발차기도 없이 물살을 가로지르며 떠있었다. 뜰 수 없는 곳에 떠있는 듯한 느낌에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수영을 하고 있었다!
높고도 험한 25m의 벽
'수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대략 15m 지속됐다. 개헤엄보다 5m쯤 앞선 기록이었다. 그 이후로는 점점 몸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나는 레인의 중간에 잠시 우뚝 섰다. 너무 숨이 차서 도저히 끝까지 갈 수 없었다. 당시의 나는 지하철 계단도 쉬면서 올라가야 할 정도였으니, 지구력이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는 것에 가까운 상태였다. 25m 완주를 바라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옆에 있는 중급반 레인을 슬쩍 보니 쉬지 않고 끝에서 끝까지 질주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뒤를 돌아보니 다음 사람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충돌할 위기였다.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다시 물속에 머리를 푹 집어넣고 자유형을 시도했다. 가쁜 숨을 내뱉느라 음-파가 아닌 우우우우웅-푸하!에 가까운 호흡을 해야 했다. 그렇게 첫 자유형 25m를 경험했다.
겨우겨우 레인의 반대쪽 끝에 도착해 벽에 매달리자, 100m 달리기라도 한 듯 숨이 가빴다. 1.4m라는 깊이 탓에 숨 쉬는 게 더더욱 쉽지 않았다. 뒤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가라며 손짓하던 찰나, 선생님이 25m 거리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빨리 와요, 빨리 와! 쉬면 안 돼! 쉴 거면 돌아와서 쉬어요!" 나는 흐엉, 하는 물개 같은 소리를 내며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25m의 벽은 아주 높았다.
험난한 첫 자유형을 마친 뒤 귀가한 나는 또다시 점심을 흡입했다. 어쩜 이렇게 입맛이 싹 도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일을 하겠다며 방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켜기가 무섭게 기절하듯 잠들었다. 오늘치의 체력이 다 소진되어 또다시 방전된 것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후 7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