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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Sep 11. 2023

음-파하면 저는 숨을 언제 쉬나요?

'안 움직여 인간'의 운동 입문기


떨리는 마음으로 수영장에 간 첫날. "10시 초급반이요."라고 말하고서는 이름이 적힌 회원카드를 내밀자, 빨간 락커키가 내 손에 들어왔다. "회원님은 2층으로 가시면 돼요." 회원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았다. 지금껏 나를 회원님이라고 불러주는 건 11번가나 G마켓뿐이었으니까.





준비물이 이렇게 많다니!


수영장에 가려면, 수영복을 사야지. 그런 마음으로 수영복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수영복의 종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 하이컷, 미들컷, 로우컷, 3부, 5부... 심지어 브랜드도 엄청나게 많았다. 다양한 종류를 비교하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나는 쉬운 길을 택하기로 했다. 큰 규모의 수영용품점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비교하기를 포기하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무난한 남색 수영복을 담았다.


수영복만 사면 큰 산을 넘은 줄 알았는데, 수영은 생각보다 준비물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었다. 수모와 수경에다 수영 가방과 세면도구들, 안티포그액까지 사고 나니 10만 원을 금방 채웠다. 운동에 이렇게 큰돈을 써본 건 처음이었다! 이 돈을 생각해서라도 당분간은 꾸준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복이 택배로 도착한 날, 방 안에서 혼자 수영복을 입어본 나는 두 번의 충격을 받았다. 첫째로, 수영복이 이렇게 입기 힘든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 끈이 술술 풀리는 워터파크용 수영복과 다르게, 강습용 일체형 수영복은 입고 벗는 것 자체가 운동이었다. 등을 감싸고 있는 끈을 요리조리 피해 몸을 욱여넣고, 쫀쫀한 천을 있는 힘껏 끌어올려 겨우겨우 어깨끈을 걸칠 수 있었다. 둘째로, 이 정도만 입고 다른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치 속옷만 입고 외출하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모두가 이렇게 입고 있을 테니 괜찮다며 내 안의 유교사상을 다독이고, 수영가방에 짐을 넣었다.




탈의실의 살구빛 대화


10시 강습을 앞둔 수영장 여성탈의실은 중년의 회원으로 가득했다. 나는 유일한 20대로서 엉거주춤 탈의실 커튼을 비집고 들어갔다. 동네 미용실에서 얻은 참기름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할머님들 사이를 조용히 통과해, 소심하게 옷을 벗어 락커에 넣었다.


바로 그때, 나체의 회원 한 분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머, 학생! 새로 왔나 봐요?" 눈앞을 가득 채운 살구빛 형체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장 나버린 나는, 눈알을 굴리며 답했다. "네, 오늘 첫날이에요." 처음 만난 사람과 알몸으로 대화한 경험이 없어 당황스러웠지만, 이곳에선 살구빛 대화가 아주 당연해 보였다.


다시 조심조심 샤워실로 이동해 몸을 씻고 수영복을 입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수모를 쓰니, 거울 속에 갈갈이 삼 형제의 늦둥이 여동생이 보였다. 온몸의 군살과 굴곡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수영복을 입고 있자니 어디를 가리며 입장하는 게 좋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기도 전에 고비가 이렇게나 많다니.


바로 그때, 내 옆으로 형광 핑크색 야자수 무늬 수영복을 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갔다. 런웨이에 선 듯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좋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탈의실 문을 열었다. 특유의 수영장 냄새가 코를 훅 뚫고 들어왔다.




음-파하면 저는 숨을 언제 쉬나요?


첫날부터 멋진 수영법을 배우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멋지게 수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유아풀에 덜렁 앉아있자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회원님은 첫날이시니까, 여기에서 호흡 먼저 연습할 거예요." 나는 빨리 진도를 나가고 싶은 마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속에 고개를 넣고 음~ 소리를 내세요. 그럼 코로 물이 안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오면서, 파-" 선생님의 설명을 몇 차례 들은 나는, 큰맘 먹고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다. 늘 개헤엄으로 꼿꼿하게 수면 위를 고집하던 얼굴이 처음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음... 파- 음... 파-" 몇 번의 호흡을 반복하는데, 점점 숨이 차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상했다. 나는 음- 소리를 내며 물속에서 공기방울을 뿜었고, 파-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급하게 날숨을 뱉었다. 파-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시려 했더니 이상하게도 공기는 안 들어오고 물만 먹었던 것이다. 두 번 다 날숨만 쉬면, 나는 언제 숨을 들이마셔야 하지?


"선생님, 음- 할 때도 숨을 뱉고... 파- 할 때도 공기를 토하면... 저는 숨을 언제 쉬나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요, 저도 제가 이해가지 않아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나의 황망한 표정을 본 선생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시범을 보였다. "파- 강하게 내뱉고, 얼른 다시 숨을 들이쉬고 물속으로 들어가야죠. 지금까지 숨 안 쉬고 있었어요?" 나는 아가미도 없는 주제에 물속에서 자동으로 숨이 쉬어지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수영도 근력운동이 되나요


어느 정도 호흡을 연습한 뒤에는, 킥판을 잡고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은 1.4m 깊이였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키에는 제법 여유로웠다. "물을 무서워하지는 않으시죠?"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물을 무서워하는 분들이 많이 오시나요?"라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물이 무서워서 극복하려고 오시는 회원님이 반, 허리 아파서 오시는 회원님이 반. 운동하려고 오시는 분은 생각보다 드물어요!" 그러니 물에 대한 거부감만 극복한다면 실력이 금방 늘 거라고, 선생님이 나를 응원해 주었다.


"킥판 잡고, 무릎 쫙 펴고, 다리를 구부리면서 구르는 게 아니라 쭉 뻗은 채로 허벅지 힘을 써서 차는 거예요." 허벅지 힘을 쓸 계획은 없었는데, 큰일이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발차기를 하려니 근육 하나 없이 말랑한 다리가 금방 욱신거렸다. 하지만 수영 강습의 특성상 내 뒤에도 사람들이 줄줄이 회전초밥처럼 다가오고 있어서 쉴 새 없이 발차기를 해야만 했다. 수영은 유산소운동인 줄 알았는데, 나처럼 근육이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근력운동이었다.




50분의 강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 이 정도라면 접시까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영을 하고 나면 살이 빠지기는커녕 엄청나게 허기져서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된다는 '수영 괴담'은 정말 현실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양의 음식을 쏟아 넣은 나는, 이내 방으로 돌아가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낮잠 자기 좋은 정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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