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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Sep 05. 2023

수영을 배울 수 없는 101가지 이유

'안 움직여 인간'의 운동 입문기



수영을 배워보면 어떨까? 마치 계시를 받듯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물놀이를 좋아하니까, 어쩌면 수영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어릴 적 놀이공원보다 워터파크를 선호하는 아이였다. 비록 겁이 너무 많은 탓에 워터 슬라이드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지만, 유수풀에서 둥둥 떠다니거나 너무 깊지 않은 곳에서 파도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동적인 활동을 싫어하는 나지만, 가끔씩 수영장에 갈 때면 항상 마음이 들뜨곤 했다. 어쩌면 수영장에 가는 건 헬스장에 가는 것만큼 힘겹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침 군에서 지어준 동네 스포츠센터에 수영장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집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마을버스도 잘 안 다니는 이 깡시골에 수영장이 생긴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어쩌면 이건 정말 수영을 시작해야 한다는 하늘의 계시일지도 몰랐다.




물론 이건 수영이 아닙니다


누군가 내게 "너 수영 잘해?"라고 물으면 나는 "수영장에서는 죽지 않을 수 있어."라고 답하곤 했다. 바다나 강에 빠지는 일이 생긴다면 영락없이 가라앉을 것이다. 물놀이와 수영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내가 수영장에서 주로 선보이는 것은 자유형도 평영도 아닌 개헤엄이었다. 발이 바닥에 닿으며, 파도가 치지 않는 상황에서만 활용 가능했다.


나의 최선은 바닥에 발을 딛지 않고 약 10미터 정도 이동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은 채 1초도 쉬지 않고 팔다리를 거세게 휘적거리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는 걸 감수해야 했다. 이 개헤엄은 아빠로부터 배운 거였다.


내가 어릴 적, 아빠는 나를 수영장에 띄워놓은 다음 5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가 아등바등 헤엄쳐서 다가가면, 나를 도발하듯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10미터는 그렇게 험난하게 쌓은 기록이었다.


열심히 헤엄치는 나의 모습


나는 물 자체를 무서워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만약 얼굴까지 물에 집어넣은 채 헤엄쳤더라면 10미터보다는 더 멀리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수경 착용을 거부하고 입을 앙 다문 채 꼿꼿하게 머리를 세우는 자세를 고수했다. 그러니 옆에서 보자면 마치 공을 물고 오는 리트리버처럼 보였을 것이다. 말 그대로 '개헤엄'이었다.




수영을 할 줄 알면 좋겠어


수렵채집과는 거리가 먼 현대인으로서, 평소 수영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딱히 나의 개헤엄에 아쉬움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생각이 바뀌게 된 건 5성급 호텔로 호캉스를 떠난 날이었다. 그 호텔에는 마치 영화에나 나올법한, 화려한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수영장이 있었다. 그 멋지고 화려한 수영장에서 입을 앙 다문 채 열심히 개헤엄을 치는 여자가 바로 나였다!


안타깝게도 그날은 평일 오전이었고, 수영장에는 오직 나와 안전요원뿐이었다. 몇 커플이 수영장에 찾아오긴 했으나 그들은 선베드에 누워 멋쟁이 인증샷을 찍은 다음, 물에 발조차 담그지 않은 채 보송한 모습으로 퇴장했다. 그래서인지 안전요원은 유일한 방문객인 나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겨우 이런 실력으로 시설과 시선을 모두 전세 낸 나도 부끄러웠지만,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고 우스꽝스러운 개헤엄을 지켜봐야 했던 그도 썩 달갑진 않았을 것이다.


본디 개헤엄이란 운동량은 적은데 체력 소모는 큰 기이하고 비효율적인 동작이었다. 다음번에 다시 이 수영장에 오게 된다면, 그땐 개헤엄이 아닌 진짜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력과 폐활량을 늘리는 데는 수영만 한 게 없다던데. 정말 그런지도 궁금했다.




수영장에 갈 수 없는 101가지 이유


그러나 당장 수영을 시작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과장 좀 해보자면 수영장에 갈 수 없는 이유가 101가지쯤 되는 것 같았다. 수영은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운동 중 하나다. 일단 수영장에 자주 가야만 하는데, 수영장은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학원만큼 흔하지 않다. 실제로 지도에서 수영장을 검색해 보면 어린이 전용인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수영복으로 인한 노출이 필수라는 점도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몸의 모든 굴곡이 드러나는 쫄쫄이를 입고 타인의 앞에 서는 게 달가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 같이 물에 들어가는 게 너무 더럽다며 꺼려하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 수영장 물 안에 실례를 할 수도 있고, 모두가 푸우-하며 입 속에 들어간 물을 뱉어내곤 하니 그리 깨끗할리는 없을 것이다.


가끔은 화장을 전혀 하지 않고 수영장을 오가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평소에 화장을 하지 않고 다니는 편이라 여기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초면인 사람들 사이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다 같이 모여 씻어야 한다는 점은 내게도 난관이었다. 어릴 적부터 대중목욕탕에 가 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렇게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가 그 어떤 운동도 시작하지 못했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일 가까운 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더라면 진작에 홈트를 꾸준히 실천했을 것이고, 혼자도 아니고 다 같이 헐벗고 있으니 대수는 아니겠다 싶었으며, 짚는 곳곳 세균 덩어리인 건 헬스장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로바로 몸을 씻을 수 있는 데다가 주기적으로 소독약을 푸는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물을 내가 먹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문제였지만, 리트리버 권법으로 입을 앙 다물고 이겨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원래 모든 성취에는 어려움이 뒤따르는 것 아니겠는가.




치열한 수켓팅의 현장


그러나 수영의 진입장벽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수영을 다니고 싶다는 나의 말에,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진짜? 등록하기 힘들 텐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가뜩이나 운동하기 싫은데 기껏 돈도 내고 시간도 쓸 결심을 했더니만, 이 이상의 노력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실제로 검색해 보니 '수켓팅'이 치열하다는 증언과 실패 후기가 넘쳐났다.


특히 강습 비용이 저렴한 공립 수영장의 경우 몇 개월을 기다려야 빈자리가 하나 나는 수준이라고 했다. 등록이 열리는 당일에 가장 먼저 찾아가 데스크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질 지어니, 미라클모닝은 필수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영장 앞에 줄을 서야 한다는 후기, 신청자가 너무 많아 결국 추첨을 통해 신규 강습 참가자를 뽑았다는 후기까지 그 난이도도 다채로웠다.


내가 운동하기로 마음먹은 것만 해도 미라클인데, 정녕 미라클모닝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단 무작정 수영장에 찾아가 등록일을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마침 초급반에 딱 두 자리가 남아있으며, 지금 바로 등록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이 없는 시골 동네라서 가능한 일인 듯했다. 손에 쥔 채 살까 말까 고민하던 하나 남은 가방을 누가 탐내는 것처럼 보이면 사고 싶은 마음이 더 샘솟듯이, 나 역시 얼떨결에 수영 초급반 강좌에 내 이름을 올리고 왔다. 아무래도 수영의 신이 나를 보우하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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