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력이 없는 삶에 그리 큰 회의를 느껴본 적 없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법이니 달리지 못하면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면 되고, 병뚜껑이 안 열릴 때는 만능 오프너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잔뜩 하고 글을 잔뜩 쓰는 것'조차도 버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지속 가능한 운동을 찾기 시작했다.
나의 나약한 의지력
뻔한 이야기지만, 시작은 사이클이었다. 물리치료사인 친구가 '세상에 태어나 운동을 단 하나만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사이클!'이라며 강력히 추천했고, 마침 우리 집에는 행거의 역할을 하는 사이클이 하나 있었다. 이참에 구석에 놓인 사이클에게 다시 제 일을 찾아주기로 했다. 적어도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학원 등 '운동을 위한 어딘가'를 찾아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실내사이클은 가장 접근성이 높은 운동 중 하나다. 러닝머신보다 부피도 작고, 소음이 나거나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사이클의 장점을 되뇌어보면서, 드라마를 한 편 틀어놓고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드 한 편은 약 50분이었고, 그 시간 동안에는 좀 버텨볼 요량이었다. 드라마가 재미있으니 시간이 잘 가겠지.
하지만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나의 나약한 의지력이다. 드라마는 재미있지만, 사이클은 재미없었다. 드라마의 전개가 흥미진진해질수록 나는 스토리에 몰입했고, 페달을 돌리는 발은 느려졌다. 결국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그냥 불편하게 사이클에 앉아서 드라마 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아 봤지만, 다짐이 무색하게도 운동효과가 뚝뚝 떨어졌다. 움직이지 않는 두 발과 드라마의 반전에 놀라 떡 벌어진 입술만이 사이클 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동을 위한 당근과 채찍
그래도 내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유튜브로 뭐든 배울 수 있는 시대니까, 사이클을 부지런히 타게 만드는 영상도 있지 않을까? 검색 결과 '인터벌 사이클'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영상을 틀어둔 채로 사이클에 앉으면, 30초나 1분 단위로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도록 신호를 주고 동기부여도 해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TV로는 드라마를 틀어두고, 핸드폰에는 인터벌 사이클 영상을 틀어둔 채 사이클을 돌리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전개가 빨라질수록 두 발은 느려졌지만, 영상에서 시끄러운 알림 소리를 들려주는 덕분에 멈추지 않고 페달을 돌릴 수 있었다. 1분에 한 번씩 전속력으로 달리다 보니 운동효과도 수직상승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잘 알았다. 재미없는 운동을 꾸준히 붙들고 있을 정도로 의지가 강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운동을 향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뒷 내용이 아무리 궁금해도, 그 드라마는 사이클을 타는 중에만 볼 수 있는 걸로! 그래서 다음 화를 보고 싶다면 다음날에도 무조건 사이클을 돌려야만 했다.
이런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자극적인 드라마를 골랐다. 무려 시즌이 18개나 있어 한동안은 끄떡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속력으로 페달을 돌리려니 말랑한 허벅지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래도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약간의 진통제 역할을 해주었다. 나 자신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준 셈이다.
작심 3개월 성공기
효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극성 '안 움직여 인간'으로서 두 달 이상 꾸준히 운동해 본 경험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세 달을 채웠으니까. 하루에 한 편씩 보던 드라마도 어느새 시즌 5에 다다랐고, 석 달 정도 주 3회 이상 인터벌 사이클을 타고나니 아주 기본적인 체력이나 근력이 생기고 있었다. 물론 아직 정상 범위에 들어가려면 멀었지만.
남들이 보면 정말 별것 아닌 운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 움직여 인간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나는 기회만 된다면 누워있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며, 누워있어도 되는데 앉아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일도 누워서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 누워있는 것도 그냥 앉아있는 것도 아닌 채로, 무려 운동을 하기 위해 1시간을 꾸준히 비워둔다는 건 원래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처음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들였다는 건 나에게 굉장히 뿌듯한 사건이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전인류적 시점에서 인간이 달에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 큰 의미였듯, 바쁜 와중에도 석 달의 운동을 지속했다는 건 나의 관점에서 충격적인 일이었다는 뜻이다.
꾸준히 사이클을 탄 석 달은 '어쩌면 나도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라는 실낱 같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비록 운동의 즐거움을 찾지는 못했더라도, 그냥 드라마 보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더라도. 체력도 근력도, 의지력마저도 없던 나에게는 좋은 발판이 되어준 셈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 운동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는데...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