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없어. 이런 농담을 던질 때면, 몇몇 건강쟁이 친구들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아직 젊어서 그래..." 그리고 언제나 이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재미있는 운동을 좀 찾아보면 어때?" 팔팔하고 건강한 영혼들은 본인의 건강을 넘어, 나의 건강에도 진심이었다.
게다가 이 건강 전도사들은 아주 친절했다. 아마도 넘치는 체력 덕분에 이리도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재미있는 운동을 추천해 주었다. 그 진심에 탄복한 나는, 이내 '안 움직여 생활'을 청산하고 여러 운동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근력이든 체력이든 하나만 주십시오
무거운 물건을 척척 드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나도 근육쟁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피어올랐다. 아니, 그전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끝없이 펼쳐진 계단을 보고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는 일을 그만둘 수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체력이고 근력이고, 유산소고 무산소고, 내가 그런 것을 가릴 때인가. 그래서 '체력도 없고 근력도 없는 사람은 헬스를 통해 쉬운 유산소를 시작하고, 기본적으로 근육의 감각을 알아두는 게 좋다'는 친구의 조언을 잠자코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헬스장을 끊었다. 3개월에 12만 원이었다. 나는 아직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조차 잘 모른다는 점이 다소 마음에 걸렸지만, PT 가격표를 보니 갑자기 자립심이 샘솟았다. 통장 잔고가 내게 속삭였다. 이건 혼자 해내야 할 일이라고.
나는 프리랜서 생활의 장점을 백분 활용해 헬스장이 텅 비어있는 평일 낮 시간에 방문하곤 했다. 며칠 동안은 조용히 러닝머신만 탔는데, 어느 날 문득 궁금증이 생겨 근력 운동기구가 모여있는 코너에 입성했다. 혼자 기구 앞에서 얼쩡거리던 나를 발견한 트레이너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봐주겠다고 말했다. PT를 끊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다니 부끄러웠다. 아무래도 엄청난 영업왕인 게 분명했다.
"처음이니까 이만큼만 해보시겠어요?" 트레이너가 무게추를 훅 덜어내며 물었다. 나는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듯한, 그 순진무구한 미소에 보답하고자 괴상한 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겨우겨우 허벅지를 몇 번 움직였다. 트레이너가 내게서 멀어지면 슬쩍 무게를 더 덜어낼 생각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몇 번의 동작을 마치자 다른 기구로 나를 안내했고, 나는 슬라임처럼 흐물거리는 발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너무 친절한 사람이었다.
헬스장 혹사 사건
녹초가 되어 더는 못 하겠다는 나에게트레이너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라는 응원을 보내주었다. "선생님이 절 몰라서 그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렇게 무려 1시간 동안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나의 한 줌뿐인 근육을 혹사시켜야 했다. 내게 무료 PT를 제공해 준 트레이너는 마지막에 나를 인바디 기계에 세워놓고 근력이 엄청나게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충격받았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여기는 한국입니다'처럼 뻔한 이야기로 들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헬스장 계단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어쩌다 맹수의 눈에 띄어 이런 고난을 겪었단 말인가. 이게 효과가 있겠나, 싶은 강도로 운동을 해도 나약한 내 몸은 비명을 질러댔다. 이런 부위에서도 통증을 느낄 수 있는 건가. 20년 넘게 깃들어 산 몸이 이렇게 생경할 수 있는 것일까.
이번 생은 이미 그른 것 같았다. 근육쟁이 친구에게 "아무래도 나는 근육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자, 친구는 단호한 표정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육이 있지."라고 답했다. 하지만 말랑한 나의 팔을 만져보고는 "너는 그중에 거의 없는 편이고."라며 정정해 주었다.
작심삼일의 역사
운동을 결심하면서 한 가지 간과한 사항이 있었다. 나는 어제도 집에 있었고 오늘도 집에 있으며 내일도 집에 있을 집순이라는 걸. 헬스장에 가서 아령을 집어 들거나 러닝머신에 오르는 건 둘째치고 그냥 집밖으로 나가는 것, 게다가 엄청나게 하기 싫은 일을 위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준 것이다.
무료 PT를 받았던 문제의 그날 이후 나는 친절한 트레이너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고, 3개월이 흐른 뒤에도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12만 원 중 대략 8만 원 정도는 헬스장에 기부한 꼴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나를 알아갈 수 있었다. 나는 헬스장에 나가 한 시간 운동을 하느니 12시간 동안 앉아서 일을 하는 게 훨씬 덜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뉘 집 5초가 이렇게 깁니까
비슷한 시기에 필라테스에도 도전해 본 적 있었다. '코어근육을 길러주니 하루종일 앉아서 글만 쓰는 너에게 딱!'이라는 친구의 추천 덕분이었다. 마침 원데이 클래스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근력과 자세 교정에 좋다 하니, 이참에 재미를 붙여보면 좋을 것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이 입장했다. 기구에 오르기 전 '간단한' 스트레칭을 먼저 진행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몸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자... 이제 골반을 열고~" 골반은 뼈인데, 열 수 있나? 주리를 트는 느낌인가? 필라테스 동작들은 자꾸만 내 능력치 이상의 움직임을 요구했다. 어쨌거나, 나는 최선을 다해 서툴게나마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했다.
헬스가 주는 고통이 직선형이었다면, 필라테스의 고통은나선형이었다. 이토록 조용하고 차분하게 땀을 비 오듯 흘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리 쭉 뻗고, 허리 숙이세요. 5초만 버틸게요. 1, 2 숨 깊게 들이마시고, 3~" 선생님은 초를 제대로 셀 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수업이 끝난 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역시나, 이것도 재미없어.
정말로 운동이 재미있나요?
내 주위 사람들은 주로 헬스 아니면 필라테스에 다녔다. 그게 가장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운동이니까. 하지만 두 가지를 다 경험해보고 나니, 운동의 즐거움에 관한 강한 의구심이 생겼다. 정말 이렇게 스스로를 고문하는 게 재미있다고? 다들 나처럼 죽을 만큼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몸은 하나뿐이며 이 몸을 평생 건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운동하기로 한 걸까? 사실은 '운동은 재미있는 것'이라며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비밀 세력이 있는데, 나는 그 음모의 대상자가 되지 못한 건 아닐까.
결국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운동하는 게 즐거운가요?", "정말로 재미있어서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답변의 비율이 거의 반으로 나뉘었다.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찌뿌둥해. 하고 나오면 얼마나 개운하고 상쾌한데!"라고 말하는 '운동 좋아 인간'들, "퇴근하고 오면 힘들어 죽겠지만, 진짜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해야지..."라는 '건강 걱정 인간'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안 움직여 인간'으로서 어떠한 동기로든 꾸준히 헬스장으로 향하는 그들에게 존경을 표했다.
아주 오랫동안 내가 만든 인간의 3요소 이론을 믿어왔다. 인간은 '운동 좋아', '건강 걱정', '안 움직여'의 세 부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부류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너무나 다른 본성을 타고나 계층 간 이동이 힘들 것이라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기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꾸준히 운동하던 몇몇의 '건강 걱정 인간'이 '운동 좋아 인간'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퇴근 후 인상을 팍팍 쓰며 녹아내릴 듯한 걸음걸이로 헬스장으로 향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오늘 토요일인데 뭐 해?"라는 질문에 "헬스장이지!"라며 쾌활한 답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뭐 하냐는 질문을 던지면 운동을 가고 있거나, 지금 하고 있거나, 운동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는 답변이 주류가 되었다.
나는 이때까지도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다. 즉, 건강 걱정-운동 좋아 진화는 가능하지만, 안 움직여-운동 좋아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태초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 그 자체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사회생활에 치이고 치이다 늦게 적성을 찾은 건 아닐까 생각했다. 반면 나는 학창 시절 악력 테스트에서 8kg이라는 수치를 기록해 선생님을 놀라게 한 모태 말랑인간이었다. 같은 반 여학생의 최고 기록이 30kg이었다는 점,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 거였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더더욱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으며, 못하는 건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중요한 사실은 일찍이 깨달은 뒤였다.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최대한 미뤄왔을 뿐. 나는 헬스나 필라테스 대신, 내 성향에 잘 맞는 운동을 다시 찾아 나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