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니 잠깐 걷자는 이야기를 들으면 난 항상 이렇게 답해왔다. "운동하자고? 이동하자고?" 내게 걷기란 늘 운동 아니면 이동이었다. 목적지 없이 그냥 걷는 산책은 절대 내 취향이 아니다. 만약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산책 같은 건 내 인생에 아예 없는 단어였을 것이다.'오운완'을 올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난 꿋꿋하게 '오운않'을 고집해 왔다.
가족이나 친구와 산책을 할 때면 항상 몇 걸음도 가지 못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갈 거야? 어디서 턴할 거야?" 그리고 답변 속 장소가 나올 때까지 지루한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겼다.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어서 목적지에 다다르길 기원하며. 걷는 것 자체에 취미가 없기도 했지만, 목적을 정하면 한시라도 지체 않고 가야 하는 급한 성격 탓에 앞만 보고 전진했다. 산책의 여유 같은 건 내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안 움직여 인간'의 역사
그러나 빠르게 전진하고픈 마음을, 근육 하나 없이 말랑한 몸이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햇빛을 받으며 10분만 걸어도 몸이 흐물흐물 녹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말랑할 거라면 차라리 슬라임으로 태어날 것을. 50대인 부모님보다도 체력과 근력이 안 좋은 20대 딸이라니! 이런 것도 신종 불효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흐느적흐느적 가족들을 따라 걸었다.
내가 처음부터 '안 움직여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어린 시절에는 나도 부모님을 지치게 할 만큼 뛰어다녔고 초등학생 때는 계주를 맡기도 했다. 체육 수행평가는 늘 A였고 체력장에서도 제법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의 단련에는 관심이 식어버렸다. 앉아서 책이나 읽고 글을 쓰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가능하면 언제나 앉아있거나 누워있자는 게 나의 신조였다. 심지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침대에서 책상까지 세 걸음인 최적의 칩거 환경에 놓이게 됐다. 방 앞에 바로 욕실이 있으니 세수를 하고 출근하는 데까지 스무 걸음이면 충분했다. 어떤 날에는 핸드폰에 뜨는 하루의 총 걸음 수가 1,000보도 되지 않았다! 진정한 '안 움직여 인간'으로 거듭난 셈이다.
내 몸은 지성을 담는 그릇
내 16년 지기 친구의 직업은 물리치료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도수치료를 하듯 내 어깨를 잡아보더니, 경악스럽다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휴일인데도 왜 환자를 만나고 있는 기분이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한 얼굴이었다.
"너 그거 알아? 내 환자 중에 30대 초반밖에 안 됐는데도 엄청난 커리어를 이룬 사람이 있어. 너처럼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만 하다가 실려오셨지. 갑자기 하반신 마비 증상이 생겨서!" 친구는 종일 일만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강조하며, 심각성을 더 자세히 파악해 보려는 듯 내 등을 꾹꾹 찔렀다.
"내 몸뚱이는 내 지성을 담는 그릇이라고..."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몸뚱이가 아니라, 지성이 충분히 담겨있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거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에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그릇이 깨지게 생겼는데도?" 그건 좀 곤란했다.
신체 나이 50대, 실제 나이 20대
얼마 뒤, 병원에서 피검사를 진행하고 상담을 받았다.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는 내게 중추신경계 이상이 의심된다고 했다. 당장 입원하거나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은 50대 이상의 체력을 가지고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권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으니 일을 줄이세요." 그리고선 젊은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영양제를 처방해 주었다. 당장 면역력을 올리지 않으면 40대부터 골골대며 살게 될 거라는 예언은 덤이었다.
이쯤 되니 나도 내 건강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눈 뜨면 일하고 새벽이 올 때까지 앉아있다가 노트북을 닫기가 무섭게 잠드는 그런 생활을, 하루 종일 앉아서 일만 하는 생활을 청산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 평생의 꿈인 '양평에서 자연사하기'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말로 일을 줄이고 그 시간에 운동을 좀 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나는 흐느적거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